“모든 과학자들은 사실 글쓰기 능력자다.”
“국내 과학 인력과 자금 수준은 높다. 이제는 과학자들이 소통할 때.”
“과학이 방송가의 새로운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일 2021년 한국생물공학회 추계학술대회가 한창 진행되던 경주화백켄벤션센터에서 국내 과학문화의 현황과 과제를 점검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과학자, 과학 저술가, 과학 탐험가 등 내로라하는 과학소통 전문가들이 온라인으로 모인 ‘과학문화 특별 세션’ 현장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먼저 세션의 좌장을 맡은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이 ‘과학문화 확산을 위한 공공의 역할, SC’을 주제로 발제를 시작했다.
발전하는 ‘과학’과 그렇지 않은 ‘시민’, 어떻게 간격 좁힐까
이 관장은 “모든 일에는 ‘사람’과 ‘돈’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라며 국내 과학계의 인력과 자금을 고찰했다.
그에 따르면, 국내 과학 인력과 기술개발비는 모두 훌륭한 수준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SCI 논문 수. 1981년 전체 274편에 그친 SCI 논문은 2019년 69,218편에 달해 40여 년 새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아졌음을 증명한다. 세계에서도 10위권의 높은 성적이다.

자금 역시 세계적 수준이다. GDP 대비 정부 R&D 투자에서 우리나라는 무려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이 관장은 그러나 “‘과학’의 영역에선 이렇게 끊임없이 발전한 반면, ‘시민’의 영역은 그렇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조사한 결과, 2018년 기준 국내 성인의 과학에 대한 이해도는 41.3%에 그치고 있다. 청소년은 더 심각해 34.4% 수준이다.
직업으로서의 과학자 역시 그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2009년 청소년 장래희망에서 4위를 차지했던 과학자는 2019년 기준 13위에 머물고 있다. 이 관장은 “과학자는 이제 더 이상 예전 같은 ‘꿈의 대상’이 아니”라며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이 과학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강조했다.
“과학소통, 과학자와 대중만의 것 아냐”
이 관장은 이어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활동할 수 있는 과학자의 4가지 길을 제시했다. 저술, 강연, 방송, 과학관이다. 그는 과학자이자 유명 대중 저술가 또한 박물관 관장으로서 두루 활동한 자신의 내역을 예로 들며, 다양한 소통의 방법을 소개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과학자의 소통 대상이 대중에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관장은 “과학자는 관료, 정치인, 시민, 기업과 전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는 과학을 계속하기 위해 당연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시민의 지지를 받아야 연구를 이어갈 수 있고, 연구를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많은 과학자가 글쓰기에 도전하고, 좌절하는 까닭
이은희 과학책방 갈다 이사 역시 “현대 과학자는 골방 속 천재 재능이 아니라 지본주의 비즈니스맨의 자질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며 소통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과학 저술가로서 여러 권의 도서를 집필한 이 이사는 특히 ‘과학자의 글쓰기’에 주목했다. 텍스트는 모든 소통의 기본이 되는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이사는 “그림이나 방송 같은 수단에 비해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고자 하는 과학자 대부분이 저술가로서의 길을 원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과학 저술가의 길은 생각보다 험난하다. 이 이사는 그 과정을 과학자 소통의 5단계 모델로 표현하며, “놀람→열정→분노→좌절→포기의 단계를 밟는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놀람’은 ‘대중들과 과학자 간 눈높이가 너무 다름’에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 놀람은 곧 ‘내가 할 이야기가 많다’는 열정으로 이어지지만, 대중들의 무반응에 분노하고 곧 좌절하게 된다는 분석. 특히 과학 대중 활동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면서 결국엔 포기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과학자가 가진 글쓰기의 힘!
그러나 역설적으로 모든 과학자는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이사는 “20세기 초 하버드대에서 미국의 명문들을 분석해 찾아낸 '힘 있는 글쓰기(Power Writing)' 패턴이 과학자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라 전했다. 그 교집합은 ‘논문’이다.
일명 오레오(OREO) 법칙이라 불리는 이 기법은 먼저 결론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결론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 다음, 근거를 제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결론을 한 번 더 강조하면 독자들에게 간결하면서도 힘 있게 주제를 전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은 과학자들은 일상적으로 작성하는 논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이사는 “논문 역시 ‘결론’을 먼저 표현하고, 그 뒤 ‘도입’ 부분에서 결론을 뒷받침하는 이유와 배경을 밝힌다. 그다음 실험 ‘결과’를 그 근거로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실험결과에 대해 ‘논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과학자들은 이미 힘 있는 글쓰기 패턴을 숙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는 이에 더해 “과학자들은 확실한 소재, 즉 연구 분야를 갖고 있기에 자신만의 글쓰기에 유리하다”며 “다만 전문용어 사용으로 생기는 언어의 괴리를 꼭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과학, 새로운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1호 과학 탐험가인 문경수 플레이랩스 대표는 예능 및 다큐멘터리를 활용한 과학문화 활동에 주목했다. 그는 탐험,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을 전달하는 여러 사례를 소개했다.
대표적 사례가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이다. “과학의 시선으로 제주도를 알리겠다”는 사연 내용을 통해 효리네 민박에 출연하게 된 문 대표는 “덕분에 영상 매체의 영향력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문 대표는 촬영 준비를 하면서 제주도의 과학자들과 사전 답사를 진행하는 등 제주의 자연 과학적 가치를 연구했다. 휴양지로만 알려졌던 제주도의 과학적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그의 바람대로 제주도의 새로운 면모에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뻔한 제주도 여행에 신선한 레파토리로 자리 잡게 된다. 문 대표는 “무엇보다도 제주도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전달된 것이 뜻깊은 일”이라고 부연했다.

이런 방송 출연을 통해 문 대표는 과학문화 콘텐츠의 확장 가능성을 강하게 느끼기도 했다. 먹방, 여행 등 기존의 방송 소재가 식상해져 가면서, 수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과학이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과학이라는 콘텐츠는 국경이 없는 소재로서 OTT 서비스에도 잘 어울리는 소재”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런 가능성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과제가 하나 있다. 늘어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 수요 대비 부족한 공급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문 대표는 “현재 과학에 대한 대중이나 문화계의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라며 “많은 과학자들이 소통에 참여하고, 협업에 나선다면 과학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청한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21-10-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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