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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객원기자
2014-01-14

미신일까? 자연일까? 애니미즘(animism)展, 일민미술관에서 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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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animism)은 사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이다. 과학적 진보가 찬란한 현 시대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은 그런 미신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우리 삶 깊숙이 함께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3월 2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애니미즘’ 전시회는 ‘과학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애니미즘이 왜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시물을 통해 ‘애니미즘’ 개념으로 오늘날의 현대성도 돌아보게 하고 있다.

▲ '애니미즘'展이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일민미술관

사실 ‘애니미즘’전(展)은 2010년 벨기에에서부터 시작됐다. 베를린, 뉴욕 등 세계를 순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중국 선진 지역에 이어 아시아권에서 두 번째다. 유럽에서 하던 그대로 작품을 배치한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애니미즘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시각적으로는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연구자들과 함께 조사해서 이번 전시회에 포함시켰다.

그래서 한국적 자료와 이야기들을 볼 수 있고, 외국 작품들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비교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애니미즘 전시회 자체의 매체가 다채롭다는 점도 독특한 부분이다. 브라운 모니터, 디지털 프로젝터, 영사기, 회화, 곤충 자료 등이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애니미즘’에 대한 질문, 제1전시실

이번 전시회에서는 46점의 작품이 3개의 전시실에서 배치되어 관람객들과 만나고 있는데, 그중 제1전시실에서는 25점이 전시되고 있다. 먼저 들어서면 지미 더햄의 ‘롯의 아내도 이해했으니, 과거를 회상하기만 하면 화석화와 퇴적작용이 일어날거야’라는 다소 긴 제목의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보자마자 설핏 웃음을 띠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이 대상이기도 한 자연적인 돌이 마치 음식처럼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석화된 빵, 햄, 감자 등을 통해 이 전시회가 유물적 신앙적 이야기가 아닌 애니미즘을 둘러싼 개념을 다루고 있는 전시회임을 선언하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 Candida Höfer, Ethnologisches Museum Berlin III, 2003. Courtesy die Künstlerin ⓒCandida Höfer

칸디다 회퍼의 ‘민속 박물관’ 시리즈도 눈에 띈다. 이율배반적 모습들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민속 박물관은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유물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첨단 장비들이 필요하다. 특히 유물을 다루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신적 요소가 가득한 유물이 있는 방에서 보호복을 입고 유물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과연 그 보호복은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인지’ 아니면 ‘혹시나 모를 유물에 남겨진 유해물질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작가는 애니미즘이라는 키워드의 양면성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월트 디즈니의 ‘엉터리 교향곡: 해골춤’과 렌 라이의 실험영화 ‘투살라바’ 영상도 의미가 있다. 과거 TV라는 뉴미디어가 다룬 콘텐츠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란 사실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 이런 콘텐츠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사진이 나오던 초기에 한때 유령사진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미신적 요소를 없애기 위한 과학이 결국 미신적 요소를 보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애덤 아비카이넨’의 ‘천연 자원 관리국의 범죄 현장 조사서’ ⓒ일민미술관

이동엽의 ‘서울시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은 사자와 호랑이를 촬영한 사진이다. ‘창’을 통해 보고 보여지는 관계와 그 힘에 주목한 이 작품은 예로부터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맹수들이 이제 창 안에 갇혀 살기와 신령함을 잃어버린 채 그저 구경거리로 전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미신의 경계에 대한 물음, 제2·3전시실

14점이 전시된 2층으로 들어서면 한쪽 벽 가득 채운 대형 회화작품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애덤 아비카이넨의 ‘천연 자원 관리국의 범죄 현장 조사서’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일부러 3개월간 한국에 머물며 이 작품을 완성했다. 청계천과 을지로를 돌아다니며 봤던 철공소들이 인상적이었는지 그곳 기계를 덮던 천을 가지고 와서 3개월간 대화를 나눴다. 한마디로 작가 자신이 무당 혹은 애니메이터가 되어 철에 생명을 부여한 셈이다. 그리고 광목 천에 녹슨 철의 느낌이 가득한 안료를 사용해 회화 작품에 담았다.

시간이 소요되지만 안제라 멜리토풀로스와 철학자인 마우리지오 라자라토가 공동 작업한 ‘배치’와 ‘입자들의 삶’은 꼭 보기를 권한다. 펠릭스 가타리는 들뢰즈와 함께 유명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가이자 생태주의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서구의 이분법적인 시각을 어떻게 해석할까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애니미즘을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놓은 것이 이 작품이다.

▲ 이번 전시회는 인쇄물,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민미술관

3층 전시장에서는 7점을 볼 수 있다. 특징적인 작품으로는 구동희의 ‘언더 더 베인: 아이 스펠 온 유(Under the Vein: I spell on you)’라는 작품이다. 영상작업물인 이 작품에서는 수맥을 찾는 도구를 가지고 호수를 돌아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 호수는 구청 직원이 제어만 하면 물이 사라져 버리는 인공호수이다. 수맥 따위는 있을 리 만무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맥 도구를 들고 방향성 없이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해학이 느껴진다.

‘비(非)인간적인 권리’도 영상물이다. 에콰도르는 헌법 사상 처음으로 법의 주체로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도 포함시켰다. 바위, 산, 바다 등에 기본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애니미즘을 헌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파울로 타바레스는 인터뷰, 자료화면을 통해 ‘자연의 권리’ 인정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평행’이라는 작품도 재밌다.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인 하룬 파로키가 게임 속 자연의 발전사를 영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20여 년 전에는 점과 선으로만 표현됐던 자연들이 알고리즘과 시뮬레이션의 발전으로 어떻게 재현이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바닷물이 처음에는 픽셀을 이용해 파란색 점으로, 이후 거품을 만들고 물의 흐름까지 정교하게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가상 속의 자연이지만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정교한 모습 속에서 컴퓨터 속의 자연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듦으로 해서 생명과 비생명의 차이를 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애니미즘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김연희 객원기자
iini0318@hanmail.net
저작권자 2014-01-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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