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에이치엘바이오 이홍기 대표
우리가 매일 보는 소변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고대부터 소변을 치료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제로 ‘소변 요법(Urine therapy)'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기록에도 남아 있으며, 현대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BC 470 ~ BC 410)와 고대 로마의 의사 플리니(서기 23 ~ 79)의 저서에도 등장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소변을 마시거나 피부에 바르는 방식으로 피부병과 감염 치료에 사용했으며, 심지어 신체 해독에도 활용했습니다. 이는 소변에 포함된 미네랄과 다양한 성분들이 건강에 이롭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소변 요법의 실제 효능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 현대의학에서는 널리 사용되거나 권장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대신, 오늘날 과학자들은 생명공학 기술을 통해 소변에 들어있는 줄기세포를 추출하고, 이를 이용해 신장 질환을 치료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소변에 있는 줄기세포는 어디서 나왔을까?
2008년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의 연구진들은 우리가 매일 배출하는 소변 속에 인체의 다양한 세포들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포들의 기원은 어디일까요?
연구자들은 여성 환자의 소변에 함유된 줄기세포를 분석하던 중, 놀랍게도 남성의 Y 염색체를 발견했습니다. 이 여성은 과거에 남성의 신장을 이식받은 이력이 있었으며, 이식된 신장에서 나온 세포가 소변으로 배출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이 세포들이 신장에서 주로 발현되는 특정 단백질 마커(PAX2, PAX8, Synaptopodin, Podocin 등)를 발현한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고, 이를 통해 소변에 존재하는 줄기세포가 신장에서 기원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이러한 줄기세포들은 요(尿)유래 줄기세포(Urine-derived Stem Cell, UDSC)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노폐물로 인식하던 소변에서 손쉽게 신장의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재생의학에서 큰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변에서는 간단한 절차로 여러 번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골수나 지방조직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하는 기존 방법에 비해 환자에게 고통이나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요유래 줄기세포는 신장을 구성하는 다양한 세포들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특화되어 있어, 신장 관련 질환에 매우 유망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성신질환은 어떤 병인가요?
신장은 우리 몸에서 혈액을 걸러 노폐물과 과도한 물을 제거하고, 전해질과 산-염기 균형을 조절하며, 혈압을 유지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만성신질환(Chronic Kidney Disease, CKD)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신장이 점차적으로 손상되어 기능을 잃어가는 질병으로 당뇨병과 고혈압이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당뇨병 환자의 높은 혈당은 신장의 세포들과 혈관을 손상시켜 신장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고, 고혈압은 사구체의 작은 혈관에 높은 압력이 가해져 신장의 필터링 기능을 약화시킵니다. 신장의 기능이 저하되면 노폐물과 체액이 몸속에 쌓이게 되어, 부종(몸이 붓는 증상), 피로,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겪게 되고, 심장 질환이나 뇌졸중 같은 다른 합병증의 위험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전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만성신질환의 가장 큰 문제는 증상이 초기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 점입니다. 초기에 손상이 시작되더라도 신장은 상당 기간 동안 그 기능을 유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질병이 꽤 진행된 후에야 문제를 인식하게 됩니다. 이때는 이미 신장의 기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라 치료가 어렵죠. 심각한 경우, 말기신부전(End-Stage Renal Disease, ESRD)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 경우 신장이 거의 모든 기능을 잃게 되고, 환자는 투석이나 신장이식 외에는 생명을 유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만성신질환 환자는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10명 중 1명 꼴로 발병하는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의 치료법들은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원인 질환을 관리하여 질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합병증을 최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새로운 치료제의 개발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요유래 줄기세포가 만성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우리 연구진은 요유래 줄기세포를 이용해 만성신질환의 진행을 멈출 수 있는 근본적인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요유래 줄기세포를 만성신질환 치료에 사용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요유래 줄기세포가 신장 기원의 줄기세포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이 줄기세포가 Klotho라는 단백질을 다량으로 분비해 신장 보호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 신장 기원의 줄기세포
신장이 손상된 후에도 초기에 상당 기간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내재된 재생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유래 줄기세포는 이러한 재생 메커니즘을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장의 사구체에서 노폐물을 여과하는 역할을 하는 다리세포(Podocyte)나 세뇨관 상피세포가 손상되었을 때, 요유래 줄기세포는 이러한 세포들로 분화하여 신장 조직을 재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요유래 줄기세포는 신장에서 자체적인 힐링 메커니즘을 담당하던 세포이기 때문에 신장 조직에 더 친화적이고 특화된 재생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성이 높습니다. 즉, 신장을 복구하고 재생시키는데 적합한 재료가 될 수 있는 셈이죠.
또한, 우리 연구진은 신장 손상을 유도한 동물모델에서 정맥투여(IV)된 요유래 줄기세포가 다른 조직 유래의 줄기세포에 비해 신장 손상 부위로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호밍 능력( Homing effect)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줄기세포가 손상된 조직을 찾아가는 호밍 능력은 마치 몸 안에서 길을 찾아가는 GPS와 같습니다. 줄기세포는 손상된 곳에서 방출되는 화학적 신호를 감지하고, 그곳으로 이동하여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게 됩니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요유래 줄기세포가 다른 줄기세포에 비해 신장에 더 직접적이고 특화된 치료 효과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2) 신장 보호 단백질 Klotho의 분비 능력
Klotho 단백질은 처음에 항노화 기능을 하는 단백질로 알려졌습니다. 이 단백질의 이름은 흥미롭게도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되었는데, ‘클로소(Clotho)’는 인간의 수명을 상징하는 실을 잣는 여신 중 하나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클로소가 잣는 실을 통해 인생의 시작과 수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Klotho 단백질은 1997년 미국 텍사스 대학의 마코토 쿠로오(Makoto Kuro-o) 교수가 처음 발견했으며, 노화를 억제하고 수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 유전자에 클로소 여신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후, Klotho 단백질은 신장 보호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Klotho는 주로 신장의 세뇨관에서 분비되며, 신장에서 칼슘과 인의 대사를 조절하고, 산화 스트레스를 줄여 신장 세포를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특히, 최근 연구에서는 만성 신질환(CKD)과 같은 질병이 진행될 때, Klotho 수치가 감소하면 신장의 재생 능력이 저하되고, 섬유화와 염증이 가속화되어 신장 기능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것으로도 보고되었습니다.
우리 연구진은 이러한 Klotho 단백질이 다른 줄기세포에서는 거의 발현되지 않는 반면, 요유래 줄기세포에서는 분비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이를 통해, Klotho가 줄기세포에서 많이 분비되면 신장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더욱 강화된 신장 보호적 효능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신장 손상을 유도한 마우스의 신장 피질(Renal Cortex)에서 Klotho 단백질의 발현이 감소지만, 요유래 줄기세포를 투여하자 이러한 Klotho 단백질의 발현이 정상에 가깝게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요유래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계 최초 임상시험을 수행중입니다.
㈜이에이치엘바이오 연구진은 이러한 요유래 줄기세포의 우수한 신장 특이적 치료적 능력을 바탕으로, 만성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고자 케이디스템(KDSTEM)이라는 자가 요유래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해 왔습니다.
케이디스템은 환자의 소변에서 안전하게 추출한 자가(Autologous) 요유래 줄기세포를 대량 배양한 후, 정맥 내로 투여하여 손상된 신장 조직을 재생하고, 만성 신질환의 진행을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요유래 줄기세포를 배양할 때, Klotho 단백질의 발현을 증가시켜 신장 보호 기능을 극대화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우리 연구진은 케이디스템의 비임상 시험에서 생체 내 안전성을 입증하였으며, 다양한 만성신질환 동물모델에서 사구체의 여과 기능을 회복시키고 손상된 신장 조직을 재생하는 효능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만성신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1상 시험을 승인받았으며, 현재 실제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 중입니다.
케이디스템 임상시험은 환자의 소변으로부터 얻은 요유래 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법을 만성신질환 환자에게 적용하는 최초의 사례입니다. 우리 연구진은 이번 임상시험의 성공을 통해, 케이디스템이 투석이나 신장이식 같은 기존의 치료법을 대체할 수 있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치료제가 만성신질환 환자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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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11-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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