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룡들은 꽃을 본 적이 없다. 공룡은 대략 2억 5천 년 전쯤 나타나 2억여 년 가까이 번성하며 살다가 6천5백만 년 전후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들이 지구에 나타난 것은 대략 2억 년 전쯤이다.
식물의 역사
물론, 100년을 살면 오래 사는 인간에게 2억 년은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다. 그럼,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보자. 태양계에 지구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 46억 년 전 쯤이고, 지구에 생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대략 38억 년전쯤이다. 얼마 후 원시 식물이 나타나 번성하면서 엽록체를 가진 식물들이 태양 에너지와 이산화탄소, 물을 이용해 당분을 합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부산물로 나온 산소가 공기 중에 많아지면서 이 산소를 마시며 대사 하는 동물들이 다양하게 진화하게 되었다.
초기에 지구에 살던 식물들은 주로 물속에 사는 조류 종류였다. 그러다가 습한 땅이나 썩은 나무 등에 살며 포자로 번식하는 선태식물들이 생겨났다. 우산이끼나 솔이끼와 같은 이끼류가 대표적이다. 이후 역시 포자로 번식하지만 뿌리, 줄기, 잎 등의 형태를 가진 유관속식물인 양치식물이 진화해 나왔다. 고사리와 같은 것이다.
이후 씨앗으로 번식하는 식물이 등장한 것은 대략 3억 년 조금 전의 일이다. 겉씨식물이 먼저 나타났고, 우리가 떠올리는 꽃을 가진 속씨식물은 그로부터 1~2억 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나타났다. 종합하면 30여 억 년 식물의 역사에서 길어야 2억여 년 되었을 속씨식물의 등장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현재 육지 위에 번성한 식물 중 속씨식물이 9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지에 발표된 논문은 속씨식물이 그동안 점점 더 다양해지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고 보고했다. 특히, 열대 우림에서보다 온대와 냉대기후에서 그 다양성이 더 커져왔다고도 했다. 이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속(genera)’을 기준으로 87.4퍼센트의 속씨식물과 100퍼센트의 겉씨식물을 아우르는 유전자 데이터를 비교분석한 결과다. 총 22,277종의 식물이다.
계속 번성해 온 속씨식물들
연구진은 속씨식물의 다양성을 ‘새로운 종이 분화되는 비율(speciation rate)’과 새로운 종과 멸종된 종을 모두 감안해 살아남은 ‘순 다양성 비율(net diversification rate)’ 두 가지로 측정했다. 이 모두에서 다양성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는데, 특히 두 번의 폭발적인 증가가 있었다. 한 번은 쥐라식 말기인 1억 5천여 년 전에서 백악기 중기인 1억여 년 전 사이인데, 이때는 아마 지구에 새로 등장한 속씨식물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지배적인 계통으로 자리 잡는 시기였을 것으로 해석했다. 이는 남아있는 화석과 꽃가루 기록과도 일치하는 결과이기도 하다고 연구진은 설명한다.
이후, 백악기 중기부터 신생대에 이르기까지 속씨식물의 다양성 증가 속도는 잠시 주춤하는데, 이때는 전지구적 기후변화가 있어 온도가 낮아지면서 열대우림과 흡사한 지역이 줄어든 시기이다. 꽃을 피우지 않는 다른 식물종의 다양성이 크게 감소한 시기이기도 하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라 절멸하는 종이 있었고 속씨식물들을 위시한 다른 종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적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신생대에 들어선 뒤에 속씨식물의 다양성은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때는 ‘백악기-고진기 대량절멸’이 일어난 이후의 시기이기도 하다. 새를 제외한 모든 공룡들이 멸종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동식물종이 화석기록에서 사라진 시기인데, 아마도 대량운석이 지구와 충돌하는 사건과 같이 순식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 때문에 지구의 환경이 갑자기 변해버린 시기로 해석되는 때다.
이후 속씨식물의 다양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해 지금까지 계속 증가추세를 보여오는데, 특히 온대 및 냉대기후에 적응한 종들의 다양성이 열대우림에 적응한 종들보다 더 크게 증가해 왔다. 이 시기는 지구에는 점차 온대 및 냉대 기후의 지역이 늘어난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연구진은 대량멸절 이후 생존경쟁이 느슨해진 시기 동안 속씨식물들이 빠르게 다양성을 증가할 수 있었고, 특히, 새로운 생태 유형인 온대와 냉대에 적응하게 된 종들의 다양성이 계속 높아진 것으로 해석했다.
거듭하는 지구의 변화를 살아남아 꽃들의 시대를 만들어낸 속씨식물들의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가중되는 이 시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계속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 한소정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23-11-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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