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화식물이라 불리는 속씨식물. 꽃 피는 식물로 구성된 단계통군으로 꽃 내에 씨방이 성숙해 열매가 된다. 가축사료와 탄소 흡수원의 중요한 원천으로 언제, 어디서 유래해 현재 다양한 식물군으로 자리 잡았는지가 과학자들에겐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다.

최근 스위스, 스웨덴, 영국, 중국 식물학자로 구성된 연구진이 새로운 연대 추정 방법으로 측정한 속씨식물 기원이 ‘쥐라기 또는 그 이전’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세계 식물학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가장 확실하다고 믿어왔던 화석 기록에 나타난 증거보다도 한참 빠르다. 논문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지에 실렸다.
다윈도 당혹…140년간 개화식물 기원 논쟁
개화식물 기원은 찰스 다윈(1809~1882)을 당황케 했다. 1879년 다윈은 그 시대 발견된 개화식물 화석에서 백악기 후기에 속씨식물이 다량 출현한 기록에 큐왕립식물원 이사였던 조셉후커(1817~1911)에게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수수께끼’라고 표현했다. 당시 백악기 이전의 속씨식물 화석은 발견되지 않던 시대였다. 개화식물이 백악기에 갑자기 폭발적으로 출현할 수 없었기에 점진적 진화를 주장하는 다윈에게는 끔찍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다윈은 백악기 이전 속씨식물 기원을 가설로 설정하고, 수분 매개자와 공진화 등 다양화된 속씨식물의 기원을 찾는데 애썼다.

백악기 이전 기원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로 지속됐다. 이 논쟁은 다윈 이후 140년 지나 첨단 과학 시대를 맞이한 현대까지 해결되지 못했다. DNA 염기서열 차이를 기반으로 한 분자연대측정에 따라 속씨식물 기원은 백악기 이전으로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고생물학자들의 논쟁은 이어졌다.
분자시계가 화석 기록과 다르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분자시계의 본질적 문제는 진화 속도에 있다. 1972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식물유전학자들은 속씨식물을 분자계통학적으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 계통도에서 나뉜 진화 속도율이 DNA 서열로 나타나는 진핵생물 분화율보다 훨씬 느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결과에 고생물학자들은 진화 시기 추정에서 분자시계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대 생태진화생물학과 브래들리 셰이퍼 교수는 “분자시계는 산타클로스와 같다. 모두가 그것을 믿고 싶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며 불신하기도 했다.
그나마 21세기 이후 백악기 이전 화석기록이 종종 발견되면서 분자연대측정 가설에 힘이 실렸다. 2013년 스위스 북부에 발견된 속씨식물 화분, 영국 옥스퍼드셔 쥐라기 지층 군에서 발견된 속씨식물 잎 등이 대표적이다.

논쟁 차이 줄이는 새 추정법 개발
최근 속씨식물 기원 연구는 화석 기록과 분자시계 사이의 차이를 해석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됐다. 과학자들은 초기 속씨식물은 햇빛 양이나 서식지 등의 지리적 생태적 제한을 받아 화석으로 보존이 어려워 암석 기록에 이질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 분자연대추정의 측정 오류 등을 예로 들면서 이런 차이점을 줄이려 했다. 가장 최근 연대측정법으로 ‘베이지안 추론’이 있지만, 이 방법은 화석 개수가 부족하면 추론이 제한되는 단점이 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화석 기록만으로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고, 유전자 분석도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견해다. 그들은 기존 측정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측정 모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백악기와 신생대에 걸친 1만 5000개 이상 속씨식물 화석을 분석해 분류 계통의 기원 연대를 추론하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 분자연대측정과 화석기록의 차이를 부르는 일명 ‘쥐라기 틈’을 재검토했다. 수집된 화석에는 야자나무, 난초, 해바라기, 완두콩 등 많은 식물이 포함됐다.

ⓒNature , doi.org/10.1038/s41559-020-01387-8
새 추론법은 부족한 속씨식물 정보에 대해선 측정이 어려운 기존 베이지안 방법을 개선했다. 넓은 범위의 시뮬레이션으로 198개 속씨식물 계열의 연령 범위를 추론. 부족한 표본 화석이 다윈이 추측한 백악기 이전의 기원에 가까운지 조사했다. 연구진은 이 방법을 ‘BBB(Bayesian Brownian bridge)’라고 소개했다.
BBB 추론법…속씨식물 기원은 백악기 이전이다
이 방법은 분류 계통의 기원이 되는 시간과 다양화 과정에서 이질성 양과 전체 샘플링 속도를 함께 추정할 수 있다. 연구진은 모델링을 통해 사용된 모든 화석 기록에서 기원 시간을 추정하고, 결합해 다시 간접 추정치를 얻었다. 시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실험체 속도를 가정해 측정하니 속씨식물 기원은 쥐라기와 트라이아스기 범위로 추정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추정되는 식물의 다양화 비율은 초기 속씨식물은 드물었고 천천히 진화한다는 다윈의 가설과 일치했다.

이번 논문 공동 저자이면서 스웨덴 예테보리대 크리스틴 베이컨 박사는 “화석 기록을 문자 그대로 읽어서는 기원을 직접 추정할 수 없다”며 “새로운 수학적 모델을 개발하고 컴퓨터 임의 추출방법을 사용해 해결해야 했다”고 말했다.
BBB 추론법은 게놈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 화석기록을 기반으로 했다. 고생물학자들이 신뢰하는 화석 기록을 사용한 추정 결과이면서 분자연대측정 결과인 속씨식물 기원이 백악기 이전 기원이라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연구진들은 기존의 속씨식물 기원 논쟁을 그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논문에 참여한 영국 브리스틀 대학 필립 도노휴 교수는 “우리 연구가 속씨식물 기원 논쟁을 종식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지만, 게놈 분석보다 화석 기록을 바탕으로 해석한 점에 이번 연구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큐왕립식물원 과학책임자인 알렉산드르 안토넬리 교수는 “개화식물이 육상생태계 대부분을 차지하는 초석이 된 시점을 이해하면 자연이 역동적임을 알 수 있다”며 “기후와 인간의 영향으로 미래의 식물종은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종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 정승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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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2-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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