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나라 프랑스를 대표하는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Escargot)’를 17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도 먹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왕립문화유산연구소(Royal Institute for Cultural Heritage in Brussels) 연구원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보더 동굴에서 달팽이를 불씨에 데운 흔적이 발견됐다고 Quaternary Science Reviews에 보고했다. 이 같은 흔적은 달팽이를 먹기 시작했다는 기존의 증거보다 훨씬 더 이전의 것으로 고대의 식생활과 기후, 서식지 등의 후속 연구에 유의미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달팽이 요리 흔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공동생활 유추 가능해
왕립문화연구소((IRPA-KIK)의 마린 보이치에작(Marine Wojcieszak) 박사는 보더 동굴에서 발굴된 껍데기 조각의 방사성탄소 분석을 통해 약 16만년~17만년 전에 달팽이를 불에 데워 먹은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가 영양분을 인식한 고대인의 식생활뿐만 아니라 공동생활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린 박사는 보더 동굴에서 발견된 흔적들이 고대인의 협동적 사회행동을 입증하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17만년 전 남아프리카 지역의 호모 사피엔스는 그룹 내 일부가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며 비교적 크기가 큰 육지 달팽이를 수집해 보더 동굴로 가져와 공유했다. 수렵·채집에 나서지 않은 나머지는 나이나 부상으로 인해 이동성이 낮은 그룹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린 박사는 “달팽이는 먹기 쉽고 단백질 함량이 높아 단단한 음식을 잘 씹지 못하는 노인과 어린 아이들에게 중요한 음식이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이 연체동물을 소비한 시기를 수천 년이나 앞당겼다. 지금까지 달팽이를 먹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는 아프리카에서 약 4만9천년 전, 유럽에서 3만6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보다 먼저 약 16만 4천년 전에 인간이 홍합, 삿갓조개 등 어패류를 먹었다는 증가가 발견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약 17만년 전에 영양가를 인식하고 달팽이를 조리해 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이와 관련하여 남아프키라대학의 제라르디노(Antonieta Jerardino) 고고학 교수는 약 16만 년 전에 인간이 두뇌 활성화를 위해 홍합, 삿갓조개 등 어패류를 섭취했다는 이전의 주장이 과장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 시기에 달팽이를 집중적으로 소비한 원인이 기후, 서식지 변화에 따라 다른 음식의 가용성이 낮아졌기 때문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고대인의 달팽이 요리법
요리 연구가들은 달팽이가 고단백 고칼슘의 영양가 높은 식재료라고 평한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달팽이 요리는 고대 로마부터 중세·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부 특권층만 즐기는 궁정요리로 전해진다. 현대에는 고급 요리의 대명사가 돼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도 에피타이저로 즐긴다.
장준우 요리 칼럼니스트는 달팽이 자체가 특별하거나 폭발적인 맛을 내지 않는 식재료이기 때문에 소스에 힘을 주어 조리한다고 말했다. 특히 가장 유명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달팽이를 껍데기와 불리해 삶은 후 다시 껍질에 넣고 버터와 파슬리 소스를 얹어 구워내는 방식으로 조리한다. 고소한 버터와 허브향이 밴 에스카르고는 산뜻한 로제와인이나 향이 좋은 부르고뉴 와인과 곁들여 입맛을 돋운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요리법이 없었던 고대에도 달팽이는 좋은 식재료였고, 그들만의 ‘요리법’으로 조리해 먹은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발굴한 퇴적층에서 나온 27개의 달팽이 껍질 조각의 화학적 특성을 관찰하여 ‘호모 사피엔스식 달팽이 요리법’을 알아냈다.
동일한 현대 아프리카 달팽이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몇 개의 조각을 제외하면 200°~550°C에 가열한 것과 일치하는 열 노출 징후가 껍질의 아래쪽 부분에서 나타났다. 대표적 징후는 껍질에 생긴 미세한 균열과 까맣게 그을린 자국이다. 또한, 녹말이 많은 덩굴 식물 줄기와 함께 굽거나 또는 별도로 구워 곁들여 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왕립문화연구소(IRPA-KIK)의 이번 연구는 ‘고고학 연구의 보고’라 불리는 보더 동굴(Border Cave) 유적 분석에서 나온 결과다. 남아프리카 서쪽에 위치한 보더 동굴은 선사시대부터 석기시대 수렵·채집인의 생활 및 생태계를 측정·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다. 연구진은 보더 동굴 발굴 작업을 통해 고고학 연구에 발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 김현정 리포터
- vegastar0707@gmail.com
- 저작권자 2023-06-29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