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가 가까이 있는 ‘맥세권’이나 스타벅스가 가까운 ‘스세권’을 거주지로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슬세권’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슬리퍼를 신고 편의점이나 여러 식당, 쇼핑몰을 갈 수 있을 만큼 편의시설이 잘돼 있는 곳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인 호모종도 집 주변에서 여러 종류의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슬세권’을 선호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역대 최장 기간 고기후 시뮬레이션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은 300만 년에 걸친 인류 조상의 ‘주거 선호 지역’을 찾아내고, 이 결과를 12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300만 년이라는 역대 최장 기간의 기후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고, 이를 방대한 고고학 자료와 결합한 결과다.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분류되는 호모종은 지난 300만 년 동안 여러 차례의 빙하기와 간빙기를 겪으며 진화해왔다. 그러나 초기 인류가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자연환경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여 살아남았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 식량 자원의 근간이 되는 식생 환경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했다.
우선, 연구진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과거 300만 년의 기온, 강수량 등 기후 자료를 생성하여 기후 기반 식생 모델을 구축했다. 이 시뮬레이션 정보를 유럽, 아시아의 유적지와 화석 등 3,232개의 방대한 고고학 자료에 대입해 호모종 서식 지역의 생물 군계(biomes) 유형을 11가지로 분류했다. 생물 군계란 기후 조건에 따라 지역을 구분할 때, 그 기후 지역에 분포하는 식물과 동물 군집 모두 포함하는 최상위 생물 군집을 말한다. 열대우림, 아열대, 사바나, 초원 등으로 구분된다. 이어, 각 호모종이 선호한 생물 군계를 특정했다.
인류 조상은 점점 ‘제너럴리스트’가 됐다
약 200~3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출현한 초창기 호모종(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하빌리스)은 초원과 건조 관목지대 등 개방된 환경에서만 살았다. 비유하자면 이들은 ‘스페셜리스트’였다.
이후 약 180만 년 전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은 유라시아로 이주하면서 그전의 인류가 살지 않았던 냉대림과 같은 숲 지역까지 거주지역으로 선호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다른 환경에 적응했다는 의미다. 심지어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사막 지역에도 살 수 있었고,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빙하가 덮인 유라시아의 건조하고 추운 툰드라 지역에 거주했다. 도구의 활용과 사회성 등 여러 사회적 기술들을 발전시킨 덕분이다.
약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인류의 직계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태 환경을 선호하는 ‘제너럴리스트’로 발전했다. 덕분에 다른 호모종이 개척하지 못한 사막과 툰드라와 같은 가혹한 환경에서도 살 수 있었다.
연구진은 각 호모종이 특히 선호한 생태 환경이 있었는지도 분석했다. 그 결과, 생물 군계의 다양성이 증가한 지역에 거주지자 밀집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호모종이 다양한 식물과 동물 자원이 가까이 있는 ‘모자이크식 자연환경’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악셀 팀머만 IBS 기후물리 연구단장은 “우리가 점심을 먹을 때 차를 몰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식당이 몰려 있는 지역 안에서 해결하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인류 조상도 다양한 생태가 있는 곳에서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엘크 젤러 IBS 기후물리 연구단 학생연구원은 “식생이 인류의 거주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찰스 다윈 시절부터 내려오는 정설이지만, 이를 데이터를 통해 전 지구적 규모로 규명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다양성이 인류 조상의 사회 문화적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었음을 명백한 증거로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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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05-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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