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별세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류 멸망을 원하지 않는다면 200년 안에 지구를 떠나라’는 말을 남겼다. 현재와 같은 환경오염과 온난화 추세, 인구 증가, 자원 고갈 추세 등을 고려하면 언제가는 지구에 종말이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높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천문학자들은 지구 이외의 외계에서 인간이 거주할 만한 행성이 있는지를 열심히 찾고 있다. 과학기술이 더욱 발달하면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오염된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새로운 인류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과학자들이 우주에서 심혈을 기울여 찾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물이다. 물은 생명체의 근원으로서 물이 존재하면 생명체가 있을 수 있고, 또한 인간의 이주 가능성도 점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만 많다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외계 행성 가운데 물병자리에 있는 적색 왜성 트라피스트-1(TRAPPIST-1)이 있다. 이 별은 태양에서 40광년 거리에 있는 엄청나게 추운 별로, 목성보다 약간 크지만 질량은 훨씬 더 크다. 이 별이 행성계에서 특별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별 주위를 도는 7개의 행성 때문이다. 다른 어떤 외계 행성계에서 발견된 것보다 더 많은 숫자다. 더욱이 트라피스트-1 행성들은 지구만한 크기에 지구와 같은 육지가 있어 행성 형성과 잠재적인 거주 가능성을 연구해 볼 수 있는 이상적인 대상이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지구 및 우주 탐험대학 케이먼 언터본(Cayman Unterborn), 스티븐 데쉬(Steven Desch), 알레한드로 로렌조(Alejandro Lorenzo) 박사팀과 밴더빌트대의 나탈리 힌켈(Natalie Hinkel) 박사는 특히 물 구성과 관련해 이 별들에서의 거주 가능성을 연구해 오며 천문학 저널 ‘네이처 천문학’(Nature Astronomy)에 최근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트라피스트-1 행성의 저밀도는 물이 있어야 가능
트라피스트-1 행성들은 흥미롭게도 무게가 가볍다. 질량과 부피를 측정한 결과 암석보다 밀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사한 다른 많은 저밀도 세계에서 이같이 밀도가 낮은 구성은 대기 가스로 조성됐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지구과학자인 언터본 박사는 “트라피스트-1 행성들은 질량이 너무 작아서 밀도 부족을 보충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가스를 보유할 수 없다”며, “비록 가스를 붙잡아 둘 수 있다 하더라도 밀도 부족을 보충할 수 있을 만한 양이라면 이 행성들을 훨씬 부풀어 보이게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이 행성계의 저밀도 구성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물이 풍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현상은 전에 예견된 적이 있고, GJ1214b 같은 더 큰 행성들에서 볼 수 있었다. 지구과학자와 천문물리학자로 구성된 학제간 공동연구팀은 이 행성들에 얼마나 많은 물이 존재하고,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지구 대양 수백개 합친 ‘물 천지’
연구팀은 트라피스트-1의 조성을 확인하기 위해 언터본 박사와 로렌조 박사가 개발한, 최첨단 광물 물리학 계산기를 활용하는 독자적인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엑스플렉스(ExoPlex)라 불리는 이 소프트웨어는 개별 행성의 질량과 반경에 국한되지 않고 별의 화학적 구성을 포함해 트라피스트-1 행성계에 대한 모든 가능한 정보를 결합했다.
별의 구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한 많은 데이터는 힌켈 박사가 개발한 하이페이셔 카탈로그(Hypatia Catalog)라는 데이터 세트로부터 수집됐다. 이 카탈로그는 150개가 넘는 문헌자료에서부터 대규모 저장고에 이르기까지 태양 인근에 있는 수많은 별들의 자료를 병합해 놓은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자료 분석을 통해 상대적으로 ‘건조한’ 내행성들(그림에서 b와 c)은 질량의 15% 미만에 해당하는 물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참고로 지구의 물은 지구 질량의 0.02% 정도 된다. 또 트라피스트-1의 외행성(그림에서 f와 g)들은 질량의 50% 이상에 달하는 물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구의 대양 수백 개와 맞먹는 양이다. 트라피스트-1 행성의 질량은 계속 보정되고 있어 이 비율은 현재 추정치로 간주되나 일반적인 경향은 분명하다.
아이스 라인의 안팎
논문 기여 저자이자 애리조나주립대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데쉬 박사는 “우리가 처음으로 보는 것은 엄청난 물이나 혹은 얼음으로 뒤덮인 지구 크기의 행성들”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 얼음이 풍부한 트라피스트-1 행성들은 ‘아이스 라인’(ice line)보다 그들의 주성(host star)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발견했다. 트라피스트-1을 포함한 모든 태양계의 아이스 라인은 물이 얼음으로 존재하고 따라서 행성에 부착될 수 있는 별과의 거리를 말한다. 아이스 라인 안쪽에서는 물이 증기처럼 존재해 부착되지 않는다. 연구팀은 분석을 통해 트라피스트-1 행성들이 아이스 라인을 넘어 주성으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형성되었다가 주성과 가까운 현재 궤도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행성시스템과 다른 시스템에서 행성들이 상당한 내부 이동을 한 많은 단서가 있으나 이번 연구는 행성의 조성을 활용해 이동 사례를 확실하게 보여준 첫 번째 사례다. 이와 함께 어떤 행성이 아이스 라인의 안과 밖에서 형성되었는지를 확인해 얼마나 많은 이동이 이뤄졌는지도 처음으로 정량화할 수 있었다.
트라피스트-1과 같은 별들은 생성 직후 가장 밝다가 점차 흐려지기 때문에 아이스 라인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마치 눈 내리는 밤에 마당에 지펴 놓은 모닥불이 차츰 스러지면서 마른 땅과 눈 덮인 땅의 경계가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행성이 안쪽으로 이동한 정확한 거리는 언제 형성되었는지에 달려있다. 데쉬 박사는 “행성이 일찍 형성되었을수록 주성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얼음을 많이 만들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성들이 얼마나 오래 전에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가정을 하기 위해서는 행성들이 현재 떨어져 있는 거리보다 적어도 두 배는 더 안쪽으로 이동했어야 한다.
“좋은 게 너무 많아도 탈”
우리는 물이 생명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흥미롭게도 트라피스트-1 행성들은 생명을 유지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물을 가지고 있다.
힌켈 박사는 “지구에서 보듯 생명체는 물로 구성돼 있고 생존하기 위해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행성에 액체 상태의 물이 있으면 생명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물 천지이거나 물 위에 어떠한 지표면이 존재하지 않는 행성은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구화학적 혹은 원소적 주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결국 우주에서 가장 흔한 별인 트라피스트-1과 같은 M-왜성이 이 항성을 도는 행성들이 있을 가능성은 있으나 엄청난 양의 물로 인해 오히려 생명이 존재하기에 부적합하고, 특히 대기에서 관측할 수 있는 신호를 창출할 수 있는 생명체가 충분하지 못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힌켈 박사는 “좋은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히려 좋지 않다는 고전 속담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따라서 트라피스트-1 행성들에서 생명의 증거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얼음이 많은 행성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리고 계속적인 생명체 탐색에서 어떤 종류의 항성과 행성을 찾아야 하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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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3-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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