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가 1만 년 걸려 풀 문제를 단 몇 분 만에 풀어낸다는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한 경쟁이 뜨겁다. 유럽과 미국이 축적된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이 분야를 선도해왔고, 다른 국가들은 후발주자로서 격차를 좁히기 위해 힘쓰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연구진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양자컴퓨터 기반 기술을 제시했다. 원자 하나를 양자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로 이용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작아질 수 없는 큐비트다. 빠르면 5년 뒤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큐비트로 구성된 ‘국산 양자컴퓨터’ 개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자컴퓨터의 핵심 큐비트(QUBIT)
컴퓨터의 연산 기본 단위인 비트는 0 또는 1의 값을 가진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큐비트(양자비트)가 기본 단위로 0과 1의 중첩 상태로 연산을 수행할 수 있어 정보 저장량과 연산 속도 등 성능이 기존 컴퓨터보다 월등히 높다. 일례로, 구글은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릴 계산을 구글의 양자컴퓨터 ‘시카모어’로 200초 만에 풀어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위해서는 0과 1의 값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는 즉, ‘양자중첩 및 얽힘’ 현상을 유지하는 큐비트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초전도접합, 이온트랩, 양자점, 양자위상상태 등을 이용한 다양한 큐비트가 제시됐다. 하지만 양자정보과학 분야의 역사가 짧은 만큼, 어떤 종류의 큐비트가 최선일지 현재로서는 답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큐비트의 집적도와 신뢰도 등 성능을 높이는 공학적 연구와 함께 기존 큐비트의 약점을 보완할 새로운 양자 플랫폼을 구현하는 기초과학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고체 표면 위에 놓인 단일 원자의 양자적 특성을 연구하는 분야를 선도해왔다. 뾰족한 탐침으로 표면 위 원자를 조작하고 특성을 관측하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에 주파수를 이용해 원자의 자기적 상태를 연구하는 전자스핀공명(ESR)을 결합한 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바 있다. 이번에는 이 기술을 이용해 개별 원자 속 전자의 스핀을 큐비트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 연구 결과를 6일 세계 최고 권위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회전하는 막대자석에 정보 저장
원자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로 구성된다. 모든 기본입자는 ‘스핀’을 가지고 있다. 스핀은 일종의 회전하는 작은 막대자석에 비유할 수 있는데, 스핀의 극(N극, S극)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0과 1의 값을 표현할 수 있다.
IBS 연구진이 제시한 전자스핀 큐비트는 얇은 절연체(산화마그네슘) 표면 위에 여러 개의 티타늄(Ti) 원자들이 놓인 구조다. 연구진은 먼저 주사터널링현미경의 탐침을 이용해 각 원자를 다른 원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정확하게 배치했다. 이후 센서 역할을 할 원자에 탐침을 두고 원거리에 놓인 여러 원자의 스핀 상태를 제어하고,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이 큐비트 플랫폼을 이용해 양자컴퓨터의 핵심인 논리 연산인 ‘CNOT’ 게이트를 구현했다.
이번 연구의 공동 교신저자인 박수현 IBS 연구위원은 “우리 연구진은 2017년 네이처(Nature)에 게재한 연구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비트를 구현한 적 있는데, 이번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큐비트를 구현했다”며 “더 나아가 원자 단위에서 복수 큐비트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도 성공했다”고 말했다.
현존 큐비트의 단점 보완
지금까지 개발된 큐비트는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 구글과 IBM이 도입한 초전도 큐비트는 연산 속도가 빠르지만 ‘양자 결맞음’ 시간이 짧다는 단점이 있다. 양자 결맞음은 양자가 같은 파동으로 움직이는 현상으로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한다. 또 초전도 큐비트는 각 큐비트의 크기가 1㎟ 정도로 커 다수의 큐비트 구성에 제약이 있다. 초전도 큐비트와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이온트랩 큐비트는 원자의 이온을 큐비트로 활용하는 만큼, 이온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또 개별 큐비트는 연산 속도가 빠르지만 2개 이상만 되도 연산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번에 개발된 전자스핀 큐비트는 지금까지 개발된 큐비트 플랫폼 중 크기가 가장 작다. 이번 연구에서는 3개의 큐비트로 구성된 플랫폼 구현까지만 성공했지만, 이론적으로 계산했을 때 수백만 개의 큐비트로 구성해도 크기가 1㎟가 되지 않는다. 초전도체 등 특정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다른 플랫폼과 달리 다양한 원자를 큐비트의 재료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또, 큐비트 간 정보 교환을 원자 단위에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정보를 저장하고 연산하는 성능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5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연구성과 설명회에서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은 “전자스핀 큐비트는 아직 ‘기술’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고, 앞으로 성능을 개선해나가는 추가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야 한다”면서도 “양자컴퓨터 분야 후발주자였던 한국이 신개념 양자컴퓨터 구현에 있어서는 선도주자로 앞장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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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10-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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