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생명과학·의학
권예슬 리포터
2024-11-08

건강 좌우하는 숨은 지배자, 혈관은 ‘주요’ 장기다 혈관내피세포 종설 논문 …건강 ‘게이트키퍼’ 기능하는 혈관 역할 재조명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 뇌, 망막, 심장, 간, 뼈, 부신 모세혈관의 현미경 사진. 모세혈관은 위치한 장기에 따라 다른 형태와 특성을 갖는다. ©Science

우리 몸에는 78개의 장기가 있다. 그중 우리에게 익숙한 장기는 뇌, 심장, 폐, 위, 간처럼 소위 학창 시절 ‘주요 장기’라고 배운 몇 가지에 불과하다. 동맥, 정맥, 모세혈관 등 혈관도 장기로 분류된다. 교과서에서 배운 혈관은 혈액을 순환시켜 몸이 제 기능을 하도록 ‘돕는’ 통로다. 즉, 주요 장기에 딸린 수동적 기관으로 여겨진다.

혈관은 생명을 위협하는 거의 모든 질환에 결정적으로 관여한다. 뇌졸중은 뇌 질환이 아니라 뇌 손상을 일으키는 혈관계 질환이다. 심장 마비도 심장 질환이 아니라 심장 손상을 초래하는 혈관 질환이다. 혈관이 없으면 종양은 미세한 크기 이상 자랄 수 없고, 전이될 수도 없다. 산모와 태아를 위협하는 임신 합병증인 ‘전산증’ 역시 혈관 분화가 교란되어 발생한다.

이 밖에 당뇨, 비만, 관절염 치매 등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만성 질환도 혈관 기능 장애에 의해 발생한다. 하지만 사망 통계 등을 보면 혈관계의 기능 장애가 인간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장기 따라 형태와 기능 달라지는 혈관

혈관은 정말 수동적 기관일까.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장과 헬무트 아우구스틴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교수는 2017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장기별로 달라지는 모세혈관의 특징을 정리한 리뷰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세계 각국 과학자들이 혈관의 비밀을 풀어낸 논문 500여 편을 총괄 분석한 결과였다.

 

▲ 모세혈관의 5가지 형태. 혈관내피세포 사이의 틈, 가림막의 형태에 따라 물질 이동 양상이 달라진다. ©Science

모세혈관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혈관내피세포’가 결정한다. 혈관내피세포가 각종 혈관 유전자들의 발현을 조절해 모세혈관의 모양과 기능을 구성한다. 각 장기가 분화하며 고유의 형태와 역할을 갖춰갈 때 모세혈관 역시 그 안에서 형성된다. 즉, 모세혈관은 각 장기에 적합한 최적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형태를 발달시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규명한 모세혈관의 형태는 5개. 혈관내피세포 사이의 틈, 가림막의 형태에 따라 물질이 이동 양상이 다르다. 모세혈관의 모든 형태를 규명했지만, 모든 기능이 규명된 건 아니었다. 모세혈관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혈관내피세포를 더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했다.

 

혈관을 다루는 새로운 관점 제시

7년 만인 지난 9월 6일 두 저자는 생명과학 분야 권위지인 ‘셀(Cell)’에 또다시 리뷰논문을 발표했다. 혈관의 생애 전 과정과 새롭게 밝혀진 혈관의 기능 등 202편의 논문을 추가로 분석한 결과다.

우선 혈관 생애 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혈관이 기존 정설과 달리 능동적 조절자 역할을 한다고 제시했다. 전통적으로 혈관내피세포는 주변 자극에 의해 혈관 긴장성 및 혈액 응고 조절, 물질교환 등 기능을 발휘하는 ‘반응적 세포 집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 혈관내피세포는 단순한 반응적 세포가 아니라 ‘지시적 신호 전달’을 통해 장기의 발달, 재생, 성숙을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 혈관내피세포는 혈관 형성과 유지, 혈압 조절, 응고 조절 등 기본적 역할뿐 아니라 장기와 대사 기능을 지시하고 조절하는 주요 역할을 수행한다. ©Cell

또한, 혈관내피세포가 각 장기 및 혈관 종류에 따라 특화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단일 세포 수준에서 규명했다. 가령, 뇌와 근육의 혈관내피세포는 혈관의 장벽을 형성하여 몇몇 물질을 제외하고는 혈관 내외부로 물질 이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신장에서는 작은 분자, 액체 등의 물질만 이동할 수 있도록 필터 역할을 하는 혈관이 발달한다.

더 나아가 두 저자는 노화의 주요 원인으로도 혈관을 주목했다. 혈관내피성장인자(VEGF) 신호전달이 불충분해져 혈관 퇴화(조직 내 모세혈관 분포가 적어지는 현상)를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조직 기능 저하와 관련된 다양한 노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 암, 당뇨, 비만, 치매 등 다양한 만성질환과 혈관내피세포 기능 장애 사이의 연관성도 규명했다.

고규영 단장은 “과거 혈관 연구는 심혈관 생물학, 종양학, 노화 연구 등 개별적 분야에서 분절돼 다뤄졌기에 통합적 접근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며 “이번 논문은 혈관을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인식하는 ‘혈관과학(Angioscience)’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성과로 전신 건강과 질병, 노화의 핵심적인 메커니즘으로서 혈관의 역할을 재조명했다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저작권자 2024-11-08 ⓒ ScienceTimes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발행인 : 조율래 / 편집인 : 김길태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길태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