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랑의 묘약’, 이성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페로몬 향수 등 타인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한 도구는 큰 관심을 얻는 소재다. 뇌에 자기장 자극을 가하는 것으로 감정을 조절하고, 행동 변화까지 유도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낯선 새끼를 둥지로 데려와 돌보는 모성애가 생기게 하거나, 식욕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성을 가진 나노입자로 쥐의 행동 조절
뇌 속 신경세포(뉴런)는 우리은하에 있는 별의 수만큼 많다. 다수의 신경세포로 구성된 뇌 회로는 신경세포보다도 많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은 다양한 신경회로가 통합돼 나타난다. 이 복잡한 뇌에서 특정 회로를 제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뇌 속에 딱딱한 칩을 심는 대신 비침습적으로 회로를 제어하려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 연구단이 선택한 방법은 자기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IBS 나노의학 연구단은 자기장을 이용해 뇌의 특정 신경세포를 무선으로 활성화하는 ‘나노 자기유전학’ 분야를 열었다. 나노 자기유전학은 자성을 가진 나노 크기의 입자를 이용한다. 이 입자는 특정 자기장을 가했을 때 약 2pN(피코 뉴턴‧1조 분의 1뉴턴) 크기의 에너지를 낸다. 우리 몸에서 세포 내부 이온 농도를 조절하는 막 단백질인 ‘피에조-1’은 약 1~5pN 세기의 힘에 감응하여 열린다.
뇌 신경세포 표면에 자성나노입자를 부착하고, 자기공명영상(MRI) 장비와 비슷한 크기의 자기유전학 장치를 가동하면 피에조-1 이온 채널이 개방되며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 선행 연구에서 연구진은 나노 자기유전학으로 쥐의 행동 변화를 이끌고, 운동 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복잡한 뇌 속에서 특정 뇌 회로만 정밀하게 제어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특정 뇌 회로만 자유자재로 제어
계속된 연구 끝에 연구진은 차세대 자기유전학인 ‘나노-MIND’ 기술을 완성하고, 그 연구 결과를 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에 발표했다. 이전 기술과 가장 큰 차이는 원하는 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회로만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동물의 감정, 사회성, 동기부여 등 고차원적인 뇌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
나노-MIND 기술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몇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도전장을 내민 감정은 ‘모성애’다. 연구진은 우리 안에 어미가 아닌 쥐 두 마리와 새끼 쥐들을 함께 뒀다. 성체 쥐 중 한 마리에게는 모성애를 담당하는 전시각중추의 뇌 회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나노자성입자를 삽입했다. 자기유전학 장치를 가동하자 단독 행동을 이어가고 있는 대조군과 달리, 나노-MIND 기술로 자극한 성체 쥐는 우리 속 어린 쥐들을 자신의 둥지로 데려오는 등 돌봄 행동이 4배 이상 증가했다.
이어 연구진은 인류의 난제인 ‘다이어트’를 위한 단서도 찾았다. 실험쥐 두 마리 중 한 마리에게만 나노-MIND 기술로 식욕과 관련된 외측시상하부의 동기부여 뇌 회로를 자극했다. 동기부여 회로의 억제성 뉴런을 활성화하자 쥐의 식욕과 섭식 행동이 2배 이상 증가했다. 반대로 흥분성 뉴런을 활성화하자 쥐의 식욕과 섭식 행동이 2배 이상 감소했다. 이어 고지방 먹이를 제공한 비만 쥐에게 나노-MIND로 식욕을 억제하자 총 식이량은 50%, 체중은 약 10%, 지방세포의 무게는 약 50% 감소하는 효과도 봤다.
연구를 이끈 천진우 단장은 “우리 연구진은 나노-MIND 기술로 원하는 뇌 회로를 선택적으로 활성화해 고차원적 뇌 기능을 양방향으로 조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자기장으로 특정 뇌 회로를 자유자재로 조절한 경우는 세계 최초로 뇌과학의 차세대 플랫폼이 될 기술”이라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 yskwon0417@gmail.com
- 저작권자 2024-07-18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