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은 우리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 질긴 힘줄로 뼈와 연결돼 있어 오므리거나 펼 때마다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근육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것은 신경이다. 인공지능의 조정을 받는 로봇처럼 근육 역시 신경의 조정을 받으며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신경과 관계없이 근육이 위축되는 병이 있다. 근육위축병(muscular dystrophy)에 걸리면 중추신경계나 말초신경계에 전혀 손상이 없는데도 근육이 위축되고 점차 쇠약해진다.
이 불치병의 원인이 최근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신생아에 치명적인 근육위축 원인 밝혀내
31일 ‘사이언스’, ‘가디언’ 지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대학교 사우스웨스턴병원(University of Texas Southwestern Medical Center)에서 사냥개를 통한 동물 실험을 통해 근육위축병의 원인을 밝혀냈다고 보도했다.
개와 같은 큰 포유동물을 대상으로 근육위축병의 원인을 밝혀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과학자들은 추가 실험을 통해 근육위축병의 원인이 완전히 밝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수년 내 근육위축병의 일종인 듀켄씨근이영양증(DMD, duchenne muscular dystrophy)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DMD는 2~5세 사이 아이들에게서 보행 장애가 발생한 후 근력 저하 현상을 보이다가 나이가 들면서 심근과 횡경막 위축 증상을 보이는 병이다. 이로 인해 심장‧호흡기 질환이 유발돼 대부분의 환자가 30세 이전에 사망한다.
신생 남아 3500명당 한 명의 비율로 발생하고 있는데 유독 남아에게만 질환이 발생하는 이유는 염색체의 수 때문이다. 남아의 경우 성 염색체인 엑스 염색체(X chromosome)가 하나 밖에 없다.
때문에 돌연변이 유전자로 염색체 기능이 손상될 경우 대체할 염색체가 없다. 반면 여아는 엑스 염색체가 2개다. 때문에 하나가 손상되더라도 나머지 하나로 그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여아가 성장해 아이를 출산할 경우 돌연변이 유전자를 전수해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수 년 내 사람대상 임상실험 가능해”
과학자들은 DMD를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에 근세포막 세포골격단백질의 일종인 디스트로핀(dystrophin)이 결핍돼 있다고 판단해왔다.
사우스웨스턴 병원 에릭 올슨(Eric Olson)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상화하기 위해 태어나면서부터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개를 대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 기술을 적용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란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잘라낸 후 유전체 교정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해 문제가 된 유전자를 잘라낸 후 건강한 유전자로 교체해 엑스 염색체의 기능을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대상이 된 것은 근육위축병을 앓고 있는 다리가 짧고 몸집이 작은 사냥개 비글(beagle) 2마리다.
연구팀은 엑스 염색체에 건강한 유전자를 주입하기 위해 약 20조에 달하는 무해한 바이러스를 동원했다. 그리고 6주가 지난 다음 살펴본 결과 위축됐던 다리 근육세포의 60%가 정상화돼 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8주 후 다리 근육을 분석한 결과 결핍됐던 디스트로핀 함량이 적게는 3%에서 많게는 90%까지 보충돼 있었다. 심장과 횡경막 근육 세포에서는 디스트로핀 함량이 58~92%까지 복구돼 있었다.
연구팀은 현재 여러 유형의 혈액순환을 통해 돌연변이 유전자를 건강한 유전자로 교체할 수 있는지 여부를 타진하고 있는 중이다. 올슨 교수는 “무해한 바이러스를 주입한 후 정맥을 통해 심장과 횡경막 근육을 복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스웨스턴 병원 연구팀은 근육위축병에 걸린 사냥개를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후속 연구에서 치료 효과가 입증될 경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슨 교수는 “개를 대상으로 한 이 실험에서 매우 신속히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하며 “향후 연구에서는 이 유전자가위 치료법의 안전성 지속성이 함께 입증돼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환자들로부터 큰 반향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환자 단체인 MDU( Muscular Dystrophy UK)의 케이트 애드코크(Kate Adcock) 회장은 “그동안 불치병으로 여겨져 왔던 근육위축병 치료에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애드코크 회장은 이어 “연구 대상이 동물에 국한돼 있고, 실험 기간이 짧았음에도 유전자편집 기술을 통해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 개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며 향후 거시적인 차원의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 aacc409@naver.com
- 저작권자 2018-08-31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