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융합연 승격 본격 첫발…기초·원천에서 실증 기반으로 전환

[과학과 기술 인터뷰대담]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초대원장

글 : 류준영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 차장(과학과기술 편집위원) 

ⓒ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취임 후 반년 동안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조직 정비, 기관운영계획서와 연구사업계획서 등을 작성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작년 11월 취임한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초대원장은 ‘지난 반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연구자는 자신이 맡은 연구과제에 맞춰 적절한 움직임 혹은 제스처를 한다. 때론 나서고, 때론 물러서는 식이다. 지난 20여 년 핵융합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유 원장은 세계적으로 커지는 핵융합에너지 개발 중요성에 따라 연구소의 독립법인화를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지난 이야기를 압축하면 대략 이렇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1996년 1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의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으로 시작해 2005년 10월 KBSI 부설기관인 국가핵융합연구소로 설립됐다. 이후 작년 5월 법 개정을 통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으로 독립법인화 자격을 얻었고, 같은 해 10월 임시이사회에서는 유석재 당시 소장을 초대원장으로 선임했다.

유 원장은 최근 「과학과기술」과의 인터뷰에서 먼저 ‘원팀 플레이’를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우리 직원들의 열정과 힘을 모은다면 어떤 문제에 봉착하든지 충분히 돌파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다만 준비가 돼 있냐는 물음은 계속된다. 능력에 맞는 간판인지 의구심도 적잖다. 유 원장은 이에 대해 “핵융합에너지 전문연구기관 역할을 한층 더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앞으로 핵융합에너지 연구개발의 무게 중심이 기초·원천 연구에서 실증을 위한 핵심기술 연구개발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새 출발은 기존 연구과제의 관리가 아니라 새 전략·비전의 제시에서부터다. 유 원장은 앞으로 두 마리 토끼 사냥에 나선다. 연구원은 이른바 ‘인공태양’이라 불리는 KSTAR(초전도핵융합연구 장치)를 통해 세계 최초 고성능플라스마운전(H-모드) 성공(2010), H-모드 70초 연장(2016), 난제였던 플라스마 경계면불안정현상(ELM) 억제(2021) 등 지속적인 성과를 내왔다. 작년에는 KSTAR로 세계 최초 1억 ℃ 초고온 플라스마를 20초 이상 운전하는데 성공하면서 이 내용이 ‘과학기술 10대 뉴스’ 중 하나로 선정됐다.

유 원장은 “핵융합 후발 주자인 한국에 있어서는 엄청난 성과”라고 평가하며, “오는 2025년까지 1억 ℃ 이상에서 초고온 플라스마 300초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R&D 추진 전략에서는 ‘가상연구환경구축’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R&D 리스크를 줄이고 핵융합에너지 실증을 가속화하겠다는 복안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우리나라 대표로 미국, 중국 등 6개국과 함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이터) 를 짓고 있다. 2007년 건설을 시작해 2025년까지 완공 하는 목표로 과학기술계의 최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다.

유 원장은 “임기 중에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전기에너지 생산 실증을 위한 핵융합 실증로 건설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적기에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출범과 더불어 유석재의 존재를 재확인받기 위해 필요한 건 ‘액션’이다. ‘리액션’ 이 아니다. 관리를 넘어 능력과 실력을 보여줘야 할 타이밍에 와 있다. 그래야 연구소란 옛 허물을 진짜 벗을 수 있다.

유 원장은 “핵융합 커뮤니티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남은 임기 동안 기획안의 내용에 따른 연구개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 다. 이어 “제3, 제4 도약을 위해 가야 할 핵융합에너지 개발이라는 길은 어느 누구도 아직 끝까지 가 본 적이 없던 길”이라며 “우리는 단순한 연구개발이 아니라 미래의 에너지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소명감으로 연구에 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승격·출범, 연구개발 주도권·추진력 강화

Q. 국가핵융합연구소의 마지막 소장이자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첫 번째 원장으로 취임하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우리나라도 이제 법적으로 핵융합에너지 전문연구기관을 보유하면서 핵융합에너지 실현을 위한 연구개발 선도국으로 거듭날 수 있게 돼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핵융합 에너지 선도국으로서 본격적인 첫발을 내딛는 데에 선봉의 깃발을 들게 돼 정말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Q.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기존 연구소와 무엇이 달라졌나요.

A. 부설기관인 국가핵융합연구소의 틀 안에서 핵융합에너지 연구개발을 주체적이고 선도적으로 추 진하는 데에 여러 가지 법적·제도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수행의 주체와 법적 책임의 주체가 분리돼 있는 경우에는 정책적 결정이 더욱 보수적으로 이뤄져 실제적인 연구개발 추진력이 매우 저하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핵융합에너지 연구개발과 같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추진이 필요한 거대 과학기술 분야는 주도적으로 연구개발을 이끌어 가는 구심체 역할을 할 전문연구기관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한국 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승격·출범으로 수행의 주체와 법적 책임의 주체가 일원화되고 주도적인 구심체 역 할이 가능해져, 우리나라 핵융합에너지 연구개발이 더욱 효율적으로 확대·추진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기에너지 생산 실증 위한 핵심기술 적기 확보

ⓒ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Q. 취임사에서 ‘실증’을 유독 강조했습니다.

A. 핵융합에너지 개발 단계는 크게 4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핵융합 연료를 고성능 플라스마 상태로 장시간 유지 제어하는 기술 확보 단계, 두 번째는 ‘핵융합 연소’ 검증, 즉, 핵융 합에너지가 대량 생산되는 ‘스스로 유지되는 핵융합’ 가능성 검증 단계, 세 번째는 대량 생산된 핵융합 에너지의 전기에너지 전환을 실증하는 단 계이며, 네 번째는 상업적으로 대량 전력 생산이 가능한 핵융합발전소 건설 운영 단 계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KSTAR(한국형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를 통해서 해결하게 되고, 두 번째 단계는 국제핵융합실험로인 ITER 를 통해서 해결될 것입니다. ITER는 작년 7월에 본격적인 장치 조립이 시작돼 두 번 째 단계가 가시권 안에 들어오고 있으며 ITER를 통한 두 번째 단계의 검증은 2035 년에서 2038년 사이로 계획돼 있습니다.
ITER가 두 번째 단계의 검증을 완료하면 세계적으로 세 번째 단계의 시작인 핵융합 실증로 건설이 급 물살을 탈 것입니다. 그런데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핵심기술이 사전에 확보 돼 있어야 합니다. 즉, 대량 생산된 핵융합에너지를 통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음을 실증하기 위 한 핵융합 실증로 건설에 필요한 핵심기술들이 이미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는 KSTAR와 ITER 사업을 통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으므로 연구개발의 비중은 전기에너지 생산 실증 을 위한 핵심기술을 적기에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로 옮겨 가야 앞으로 핵융합에너지의 실현이 원활 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올해 가장 큰 안건은 핵융합 실증로 건설에 필요한 핵심기술 확보가 적기에 이루어지기 위한 연 구개발 기획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이 기획을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핵심기술 연구개발 기반 구 축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고성능 플라스마 장시간 유지 제어 기술 2025년까지 300초 달성 목표

Q. 향후 KSTAR 관련 운영 계획과 추진 목표가 궁금합니다.

A. KSTAR 연구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기반으로 앞서 언급했던 핵융합에너지 개발의 첫 번째 단계인 고성능 플라스마 장시간 유지 제어 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며, 2025년까 지 300초 달성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현재 핵융합에너지 개발에 주류로 자리를 잡고 있는 토카막 장치는 외부에 설치된 전자석에 의한 자기장과 내부의 플라스마 전류에 의해서 유도된 자기장의 조합으로 플라 스마를 가두기 위한 최적의 자기장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플라스마 전류가 장시간 유지되도록 하는 플라스마 전류 구동 기술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장치의 개발이 필요하며, KSTAR를 활용한 혁신적인 기 술과 장치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ITER 장치의 운전뿐 아니라 플라스마 붕괴를 막는 기술, 경계면 불안정현상(ELM)의 물리적 해석 및 제어 방법, 핵융합로 내부에서 플라스마의 안정적 운전 시나리오 확 보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핵융합 실증로 운전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도 KSTAR를 적극 활용 할 계획입니다.

‘디지털 트윈’ 접목 내년 하반기에 초기 수준 ‘가상 KSTAR’ 선보일 것

Q. 가상 핵융합 실증로 건설 기반 구축과 가상 KSTAR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 가상 핵융합 실증로는 단순히 핵융합 실증로의 기하학적 형상을 가상화한다는 것보다는 기능적 인 것도 포함하고 있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형상뿐 만 아니라 기능 면에서 실제 장치와 거의 같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가상물리시스템(Cyber-physical system)을 구현하여 핵융합발전소 수준에서의 운전 및 유지·보수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려고 합니다.
디지털 트윈 수준으로 가상화하기 위해서는 현실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가진  KSTAR 장치가 있어서 디지털 트윈 수준의 가상 KSTAR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현실 의 KSTAR와 가상의 KSTAR를 통해 생성된 현실 데이터와 가상 데이터를 상호 검증해 디지털 트윈 수준 에 이르게 되면, 가상 ITER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실 ITER로부터 생성된 데이터로 가상 ITER 데이터를 검증하여 디지털 트윈 수준의 가상 ITER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가상 KSTAR와 가상 ITER의 확장을 통해 현실의 핵융합 실증로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가상 핵융합 실증로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는 정부의 지원으로 가상 KSTAR를 만들고 있으며, 내년 이맘때쯤에 초기 수준의 가상 KSTAR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핵융합 장치와 같은 거대 장치를 실제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인적·물적 자원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일단 건설이 되고 나면 돌이킬 수가 없게 됩니다. 즉, 매우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또 설계 단계에 있어서도 실제로 구현해 보지 않고서는 나타나지 않는 문제점들을 놓치거나 과잉 설계로 인해 건 설비용이 불필요하게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가상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면 설계를 최적화할 수 있고, 나아가 이 설계에 따라서 가상 장치를 건설해 봄으로써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 장치 건 설 후 운전 단계에서 지속적인 사이버 물리 시스템(CPS) 수준의 운전 모니터링을 통해서 문제 발생 조짐 과 원인을 정밀 분석하여 사전 예방조치와 원격 유지보수가 가능하므로 장치 운전과 작업의 위험성을 최 소화할 수 있습니다.

Q. 핵융합 연구의 후발주자였던 한국이 KSTAR를 성공시키면서 ITER도 한국의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A. 맞습니다. KSTAR 설계 초기에 초전도 도체 소재의 선택에 대 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KSTAR 건설을 완료하고, 안정적으로 운전을 해오며 현재는 세계 최고 성능 을 지닌 초전도핵융합실험장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ITER에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KSTAR 성공 사례를 보고 KSTAR에서 사 용하고 있는 초전도 도체와 같은 소재로 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ITER 전체 공정율 73.4%… 2035년경 ‘핵융합 연소’ 검증

ⓒ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Q. ITER은 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 ITER는 핵융합 강대국인 한국, 미국, EU,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7개국이 참여해 프랑스 카다라쉬에 건설하고 있습니다. 7개 회원국은 ITER 건설을 위한 현물과 현금 8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초대원장 동일 지분을 분담하는데, 45.46%를 담당하는 EU를 제외하고 나머지 6개국이 9.09%씩 동일하게 부 담합니다. 현재 전체 공정율은 73.4%를 달성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단지 9.09%의 투자만으로 핵융합에너지 개발의 두 번째 단계인 핵융합에너지가 대량 생산되는 ‘스스로 유지되는 핵융합’ 가능성 검증 단계를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장치 건설의 공학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추후 핵융 합 실증로 건설 능력 확보에도 크나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좌)KSTAR (우)프랑스로 출하한 핵융합연의 ITER 진공용기 두 번째 섹터 ⓒ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Q. 핵융합에너지는 한국판 뉴딜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미래 에너지원으로 생각하기에는 우리에게 너무 먼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A. 이것은 한국판 뉴딜에서 성과를 보여 주어야 하는 기간과 관련 있다고 생각됩니다. 수년 내에 우 리 일상에서 핵융합에너지가 사용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 관점에서는 당연히 핵융합에너지가 한 국판 뉴딜에 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핵융합에너지가 사용되는 시기는 빠르면 2050년대입니 다. 그러나 핵융합에너지 개발의 변곡점은 ITER를 통하여 ‘핵융합 연소’를 검증하게 되는 2035년경입니 다. 즉, ‘핵융합 연소’ 검증이 되고 나면, 그 이전에 핵심기술이 준비된 나라는 핵융합 실증로 건설을 즉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 시장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2035년까지는 이제 15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핵융합에너지는 막연하게 우리에게 너무 먼 미래의 에너지가 아니라 지금부터 진지하고 심각하게 준비해야 하는 가시권 안에 들어와 있는 에너지입니다.

Q. 핵융합에너지가 미래 무한청정 에너지원이 되기 위해서는 핵융합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가장 큰 관문 이 남아 있습니다. 이 부분부터는 ITER 회원국마저 협력하지 않고, 국가별 연구를 전개한다고 들었는데요. 치열 한 국가별 경쟁이 예상되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A. 대량의 핵융합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ITER와 전기생산 실증을 하게 되는 핵융합 실증로 사이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에 해당하는 핵심기술들이 있습니다. 현재 정부와 함께 이 기술들을 확보하 기 위한 연구개발에 관한 기획을 추진 중이며, 올해 안에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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