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비건(vegan) 전성시대다. 비건이란 원래 채식주의를 의미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의류나 잡화처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모든 아이템에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는 행위로 적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옷이나 구두 등에 흔히 사용하던 가죽조차 동물성 원료라는 이유로 일절 사용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비건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비건 아이템이 요즘 들어 유행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바로 ‘비건 자동차(vegan car)’다. 비건 자동차란 내장재로 천연가죽을 사용하지 않고 인공가죽이나 식물로부터 유래한 원료를 사용하는 등 친환경적으로 제조된 자동차를 가리킨다.
비건 유행에 따라 비건 자동차도 등장
비건 자동차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에 사용되는 소재로는 강철과 탄소섬유, 그리고 플라스틱 등이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동물성 원료인 천연가죽이 의외로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 사례로는 운전자와 동승자가 앉는 시트나 핸들의 휠 겉면, 또는 운전석 대시보드(dashboard) 등이 있다. 특히 고급차일수록 천연가죽 사용량은 많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세계적 브랜드의 자동차 제조사가 출시하는 고급 차들에는 평균적으로 12마리 정도의 젖소가죽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동물윤리가 강화되고 있고, 축산업에 의한 환경오염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건 자동차의 등장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비건 자동차가 단순히 동물성 원료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 자동차라는 주장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의 양이 상당하므로, 이를 줄이면 지구온난화도 지연시킬 수 있어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에 따르면, 4마리의 소에서 나오는 메탄가스의 양이 자동차 한 대에서 나오는 양과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건 자동차의 핵심 개념은 자동차에 사용된 소재부터 만드는 과정, 그리고 주행 시 지구환경에 해를 끼칠만한 요소가 전혀 없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천연가죽 대신 합성가죽이나 식물성 소재로 만든 을 사용하여 자동차 실내를 꾸미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는 글로벌 완성차 제조업체인 B사의 자동차 내장재가 꼽힌다. 내장재로 사용되는 아열대성 식물인 케나프(kenaf)는 재배할 때 이산화탄소와 이산화질소 흡수력이 매우 높고 기존 플라스틱 소재보다 가벼워서 친환경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전기차 제조업체인 T사는 시트 뿐만 아니라 핸들의 휠에도 일절 가죽을 사용하지 않은 자동차를 출시하여 눈길을 끈 바 있다. 이 외에도 국내 완성차 업체인 H사의 경우도 사탕수수와 나무, 그리고 화산석 등의 천연 재료를 내장재 소재로 사용하여 제조하고 있다.
내장재에 사용하는 인공가죽 소재도 다양
그렇다면 자동차 내장재에 사용되는 인공가죽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공가죽 원료는 상당히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화학원료로 가공하는 합성가죽과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단백질 가죽, 그리고 버섯 균사체로 제조하는 버섯 가죽 등이 대표적인 제품들로 꼽힌다.
인공가죽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합성가죽의 경우는 천연가죽과 비슷한 질감을 내기 위해 화학원료를 가공하여 만든다. 사용하는 화학원료로는 PVC(Polyvinyl Chloride)이나 TDI(Toluene Disocyanate) 등이 주로 사용된다.
TDI는 폴리우레탄의 원료로써 합성가죽을 만드는 핵심 재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화학원료로 만든 합성가죽이 천연가죽에 비해 환경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오산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천연 동물가죽은 합성가죽보다 2배 이상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에 단백질 가죽은 첨단기술인 3D 프린팅을 통해 제조하는 인공가죽으로서, 과정이나 원료 모두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소재로 이루어져 있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단백질 가죽을 3D 프린터로 출력하여 비건 자동차 개발에 도움을 주고 있는 업체는 뉴욕의 바이오 전문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실험실에서 배양한 단백질 콜라겐을 이용하여 천연가죽과 유사한 인공가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주목할 점은 단백질 콜라겐 분자의 이중 나선 기본 가닥을 취해 특정 서열을 대체하면 다양한 가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기술을 바탕으로 해당 스타트업은 진짜 천연가죽과 흡사한 인공가죽을 만들 수 있었다. 단백질 가죽은 내구성과 강도, 그리고 촉감도 등이 진짜 천연가죽과 거의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버섯 가죽은 가장 최근에 개발되었지만, 기존 천연가죽과 다를 바 없는 품질과 제작 및 폐기 과정이 모두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공가죽이다.
실제로 버섯 균사체로 만든 가죽은 천연가죽 생산에 필요한 물의 1% 정도 만으로 생산할 수 있고, 폐기할 때도 자연 분해되기 때문에 인공가죽 제품 중에서도 가장 친환경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균사체(mycelia)란 백색의 솜털 또는 실오라기처럼 보이는 곰팡이의 몸체를 말한다. 버섯은 곰팡이의 일종이기 때문에 다른 곰팡이들처럼 이런 균사체를 기초로 자라게 된다. 특히 동물로부터 천연가죽을 얻고자 할 경우 해당 개체가 일정한 크기로 성장해야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균사체는 몇 주 만에 성장하게 되므로 천연가죽보다 생산효율도 훨씬 더 높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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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7-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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