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미국의 대학생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기업 1위에 올라 있다. 미국의 비즈니스와 금융 역사상 최단기간에 가파른 고속성장을 구가한 인터넷 기업이다. 또한 미국 최대기업의 하나인 제너럴모터스(GM)와 맥도널드보다 기업가치 부분에서 더 높게 평가 받고 있다.
인터넷의 허리케인, 구글(Google). 구글의 고공행진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아마 그 끝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지난 2005년 9월,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컴스코어네트웍스는 구글이 전 세계 검색점유율의 57%를 차지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04년과 비교해볼 때 10퍼센트나 상승한 수치다. 구글에는 매일 전 세계에서 6천5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접속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35개의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구글은 이러한 수치에서 보듯 누가 뭐래도 단연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이다.
1998년 9월, 여자친구의 차고를 빌려 첫발을 내디딘 검색업체 구글은 불과 6년 뒤인 2004년 8월,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으며 화려하게 기업공개를 해냈다. 2005년 11월 구글의 주가는 400달러를 넘어섰다. 기업공개를 한 지 불과 6개월 만인 2005년 초 주가가 200달러로 솟구친 후 무려 두 배나 상승한 것이다.
미국의 데이빗 바이스(David Vice)와 마크 말시드(Mark Malseed)는 최근 출간된 ‘The Google Story(구글의 뒷 이야기)’에서 “구글의 성공 스토리는 정보혁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혁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며 “인터넷은 무한한 비즈니스 잠재력이 있는 분야”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오늘날 최고의 IT기업으로 발돋움한 구글의 태동과 성장에 얽힌 뒷이야기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바이스는 워싱턴포스트의 과학과 금융 전문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199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한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말시드는 작가로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해 보스턴헤럴드에 기고하고 있는 언론인이기도 하다.
성공은 야심적인 계획과 노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즐겨야 한다. 일에 대한 집착이 강해야 한다. 혁신도 따지자면 일에 대한 강한 집착이다. 오늘날 구글은 Disney와 General Motors(GM) 두 회사를 합친 것보다도 더 높은 시장가치를 자랑한다.
이 회사의 공동 설립자인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사업가 기질이 풍부한 야심가가 아니었다. 1998년 회사 설립 당시만 해도 특별히 이렇다 할 사업계획이나 전략 같은 것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졸업논문을 통해 검색엔진을 접하게 된 브린과 페이지는 그저 똑똑한 직원들을 모아놓고 재미있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든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스탠포드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시작
브린은 1973년 8월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그의 부모는 반유태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의 부모는 둘 다 전문직을 갖고 있었다. 모친은 현재 NASA의 Goddard Space Flight Center에서 과학자로 일하고 있으며 부친은 매릴랜드 대학(University of Maryland)에서 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학자 집안이다. 브린은 19살 때 부친이 몸담고 있는 매릴랜드 대학을 졸업하면서 수학과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우등상을 받았다. 그 후 스탠포드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페이지는 1973년 3월 미시건에서 탄생했다. 그의 부친인 칼 페이지는 미시건 대학(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최초로 배출한 컴퓨터 사이언스 졸업생이다. 부친은 페이지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익힐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했다. 그의 모친은 컴퓨터 분야 석사학위를 갖고 데이터베이스 분야 컨설턴트 일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미시건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다. 래리는 1995년 컴퓨터 엔지니어링 전공으로 미시건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에 스탠포드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브린과 페이지가 맨 처음 만났던 것은 1995년 스탠포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다. 두 사람은 모두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든 논쟁을 벌이길 좋아했기 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페이지와 브린은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지식에 관해서는 맞상대가 될 만한 적수라고 간주했다. 브린은 소리가 크고 외향적이었던 반면 페이지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간의 논쟁은 그 후 지금까지 내려오는 깊은 우정의 토대가 됐다.
브린과 페이지는 모두 교수 아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도 학계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업가로 변신하게 될 운명은 박사논문에서 시작됐다. 브린의 지도교수 모트와니(Motwani) 박사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에 대해 써보라고 제안했다.
1990년대 중반 당시 전혀 정리가 되지 못한 인터넷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 검색엔진은 WebCrawler나 Lycos, Magellan, Infoseek, Excite, HotBot 등이었다. 다른 두 명의 스탠포드 졸업생인 제리 양(Jerry Yang)과 데이빗 필로(David Filo)도 이러한 작업에 뛰어든다. 그들은 수작업으로 일일이 검색어를 정리하여 알파벳 순서로 디렉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는 나중에 가서 Yahoo의 모태가 됐다. 모트와니 교수는 브린에게 검색을 하는 데 이것말고도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페이지도 AltaVista 검색엔진을 사용하면서 검색결과에서 나타나는 링크에 주목했다. 이로부터 얼마나 많은 정보가 얻어질 수 있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월드와이드웹(WWW)을 자신의 데스크톱 컴퓨터에 모두 다운로드 하겠다는 야심적인 마음을 먹었다. 그는 스파이더라는 이름의 자동 소프트웨어를 통해 모든 웹사이트를 방문하여 각 웹 페이지에서 콘텐츠를 다운로드 하도록 했다. 예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페이지는 한 가지 이론을 만들어냈다. 학술논문에서 항상 다른 논문을 인용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링크가 다 각기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페이지는 중요한 웹사이트에 대한 링크가 아무도 찾지 않는 웹사이트 링크에 비해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가장 많은 수의 링크를 갖는 웹사이트가 그렇지 못한 사이트보다 더 중요하다는 논리에 따라 일정한 랭킹 시스템을 정립했다. 그는 이런 링크 랭킹 시스템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PageRank라고 명명했다.
1997년 초에 브린과 페이지는 이 PageRank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박사학위 논문을 공저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또 BackRub이라는 이름의 초보적인 검색엔진을 만들어내서 웹 페이지와 연결하는 링크를 분석하는 데 활용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은 인터넷 최초의 랭킹 시스템을 개발해냈고 이는 나중에 가서 정보검색을 할 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됐다.
브린과 페이지는 이렇게 만들어진 검색엔진에 뭔가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이고자 했다. 이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데 며칠을 허비하면서 숱하게 많은 이름을 끄집어냈다가 버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마침내 이들의 친구 중 하나가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검색하여 정리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googolplex(10의 100승)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이 이름은 괜찮긴 한데 단어를 Googol로 약간 줄이는 것이 낫겠다는 결정이 났다. 그러나 페이지가 이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할 때 자판을 잘못 쳐서 Google로 낙착이 되고 만 것이다. 허리케인 Google.com은 이렇게 탄생했다.
회사 설립 1년 전인 1997년까지만 해도 브린과 페이지는 Google.com을 그저 박사학위 논문 프로젝트의 일부로만 간주했었다. 이들은 따라서 이 검색엔진을 스탠포드 대학의 학생과 교수, 그리고 친구들에게 얼마든지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Google.com의 인기는 입소문을 통해 급속하게 높아지기 시작했다. 대학은 구글 기술을 특허 출원하기로 결정했다. 또 대학당국은 서버 파워를 늘려주기 위해 이들에게 1만 달러라는 자금을 대주기도 했다.
박사과정 논문이 구글을 만들어
그러나 브린과 페이지는 구글에 대해 여전히 별 희망을 걸지 않고 있었다. 이들에 있어 구글은 아직도 학위논문 프로젝트였으며 약간의 상업적 잠재가치가 있는 상품에 불과했다. 이들은 PageRank 기술과 검색엔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들은 AltaVista와 Excite, Yahoo 등 회사의 대표를 만나면서 자신들의 기술을 100만 달러에 사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러나 검색엔진 업체들은 모두 그런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Yahoo의 공동설립자 David Filo는 두 사람에게 박사과정을 잠시 그만두고 검색엔진 상업화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을 해줬다. Filo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전히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둘은 구글 사용자들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기술들을 개발하는 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결국 브린과 페이지는 구글을 제대로 성장시키려면 학교를 그만두고 자금을 받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교수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금지원을 받기 위해선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을 만나봐야 할 것이라고 이들에게 조언을 해줬다. 벡톨샤임은 팔로알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업가로서 Sun Microsystems의 공동설립자이자 몇몇 성공적 기업의 엔젤 투자가로도 이름난 인물이었다. 벡톨샤임은 브린과 페이지를 만난 후 이들의 아이디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두 젊은이가 달랑 파워포인트 자료만을 갖고 온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이 되는 소프트웨어 제품을 내놓은 것에 대해 호감을 가졌다. 벡톨샤임은 솔직하게 두 사람 앞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이건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보는 정말 그럴듯한 아이디어다. 내가 적극 지원해주겠네.”
브린과 페이지는 뜻밖의 호의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벡톨샤임은 당황해 있는 두 사람에게 당장에 수표 한 장을 써줄 테니 이 돈으로 새 컴퓨터를 몇 대 사라고 제의했다. 그런 다음 나중에 만나서 자신이 투자의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를 구체적으로 얘기해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벡톨샤임은 두 사람에게 회사를 정식으로 등록시켰는지 조차도 묻지 않고 Google Inc.라는 이름으로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써줬다. 이 금액은 별다른 생각도 없이 그저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숫자를 써넣은 것이었다고 그는 나중에 털어놓은 바 있다.
브린과 페이지는 이 같은 엄청난 신뢰의 표시에 대해 어쩔 줄 몰라 하며 버거킹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투자유치 성공을 축하했다. 두 사람은 Google을 정식 회사로 등록하고 이 이름으로 은행계좌를 개설할 때까지 2주 동안이나 이 수표를 자신의 책상서랍 속에 고이 보관해 놓았다. 얼마 가지 않아 벡톨샤임이 투자를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 다니던 다른 투자자들도 구글에 투자 의향을 밝혀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100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초기에 펀딩하는 데 성공했다. 구글 시대를 예고하는 순간이다.
페이지와 브린이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은 제대로 된 검색을 할 수 있으려면 알고리즘이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과거 어떤 검색엔진에서도 써본 적이 없을 정도의 막대한 컴퓨팅파워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구글의 검색 결과가 좋은 이유는 단순히 링크나 검색어 수만이 아니다. 구글은 우수한 검색 결과를 내놓기 위해 다른 요인들까지 고려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장래의 성공 비결은 검색 소프트웨어와 방법론을 향상시키며 동시에 컴퓨팅파워까지 최대한으로 높게 끌어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다.
회사 설립 이후부터 브린과 페이지는 구글에서 일하는 모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최소한 20%의 업무시간(일주일에 하루)을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소비하라고 요구했었다. 브린과 페이지는 그런 식의 정책이 똑똑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방식의 원칙은 두 사람 다 일주일에 나흘 강의를 하고 하루는 연구에 몰두하는 교수 집안에서 자라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원들에게 일의 20%는 자기 마음대로
이와 같은 장점이 잘 나타난 것은 Google News에서다. 이는 인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Krishna Baharat에 의해 개발됐다. 자신의 20% 시간을 활용해 그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일정한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를 통신사나 신문사에서 몇 차례나 반복 보도하는지에 따라 그 중요도를 판단하여 중요한 뉴스는 페이지 위쪽에 올라가도록 만들었다. 그런 결과 각 사용자의 거주지역과 선호도에 따라 다르게 편집이 가능한 뉴스 페이지를 제공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는 온라인 쇼핑몰 가격비교 서비스인 Froogle이다. 이 또한 맨 처음 20%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구글 회사 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브린과 페이지가 별도의 개발팀을 구성하도록 하여 개발이 본격화됐던 바 있다.
구글은 핵심 상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개발해내고 있다. 2004년 4월 1일 구글은 온라인 사용자들에게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이메일 서비스인 Gmail을 선보이겠다는 발표를 했다. Gmail 어카운트 사용자들은 모두 1기가바이트 분량의 저장공간을 할당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Microsoft가 제공하던 저장공간의 500배, Yahoo의 250배에 해당되는 엄청난 것이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 발표가 만우절 농담이 아니냐고 반신반의했지만 머지 않아 이것이 구글에서 제공할 진짜 서비스라는 것을 알게 됐다.
구글이 이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에 화면 오른편에 유료광고를 내겠다는 언급을 하자 비난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사회운동단체들이 이런 관행이 개인정보 침해라고 들고 일어나자 구글은 회사 이미지 면에서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Gmail의 운영방식에 익숙해짐에 따라 그런 오해는 불식됐고 자연스럽게 논란은 해소되기 시작했다.
구글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또 다른 분야는 웹 검색 결과에서 포르노 사이트를 걸러내는 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그 전부터 구글을 이용하여 포르노 검색을 하고 있었고 회사는 그런 검색을 단속하지 않고 있었다.
구글은 섹스와 관련된 광고를 판매함으로써 일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동시에 회사는 검색 결과에서 의도치 않게 포르노 링크가 나타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최근 구글은 주류, 인신공격, 담배, 총포류, 마약, 화약 등과 관련된 광고는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는 사회에서 어떤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회사의 입장 천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브린과 페이지는 자신들이 직접 나선 협상을 통해 Yahoo를 제치고 AOL Europe의 사업을 따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Microsoft의 빌 게이츠 회장이 장래에 윈도가 어떻게 구글을 따돌리고 정상의 지위에 오를지에 대해 연설을 할 때마다 구글은 큼직큼직한 신상품개발로 게이츠 회장을 놀라게 했다. 2004년 가을 Microsoft는 자사에서 새로 개발한 검색엔진이 인터넷에서 50억 개의 문서를 인덱스로 정리함으로써 구글의 정리 문서 40억 개 기록을 깼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Microsoft의 보도자료가 나가기 몇 시간 전에 구글은 자사의 인덱스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난 80억 페이지라고 공개했다. Microsoft는 한마디로 체면을 다 구긴 셈이었다.
구글이 이뤄놓은 이노베이션 분야에서의 성과는 눈부실 정도다. 2004년 10월 구글은 데스크톱 검색 기능을 내놓았다. 이는 사용자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유형의 정보를 손쉽고도 비용 한 푼 들이지 않고 검색할 수 있는 매우 편리한 기능이다.
다음에 또 구글은 위성 맵핑과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내놓았다. 그 직후에는 TV 프로그램의 자막 텍스트에 근거한 비디오 검색 기능과 핸드폰이나 PDA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한 검색 기능까지 선보였다. Google Suggest는 사용자가 검색 키워드를 입력하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검색 토픽을 제시해주는 기능이다.
Google Scholar는 과학학술지, 논문 요약본, 전문기술보고서 등을 검색할 수 있는 도구다. 구글은 주가와 택시, 날씨 등을 검색할 수 있는 방법도 내놓았다. Google Earth는 컴퓨터 사용자들이 지구 상공 어느 지점에서든 3차원으로 지구 이미지를 볼 수 있게 하는 도구다. 그 후에 구글은 Google Earth와 유사한 기술을 활용하여 달 표면을 탐색할 수 있는 방법까지 내놓았다.
구글의 성장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폭발력을 갖고 있다. 허리케인 구글이 야후를 비롯해 심지어 MS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The Google Story’는 말한다. “인터넷은 대단한 가능성이 있는 비즈니스다. MS에 도전할 상품은 금세기에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설립한 지 10년도 안 된 구글이 그러한 생각이 맞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혁신적인 사고가 필요한 거다.”
- 김형근 편집위원
- 저작권자 2006-07-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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