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5년 전 Apo지단백 E(APOE) 변이 유전자인 ApoE4가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위험요소로 밝혀진 바 있다. 이 유전자는 환자의 퇴행성 뇌신경질환을 12배까지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에는 국내 연구진(이건호 조선대 의생명과학과 교수)이 4500명의 알츠하이머병 환자 유전체를 조사한 결과 ApoE4 유전자가 동양인에게서 치매에 걸릴 확률을 서양인보다 50% 이상 높인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변형 유전자가 왜 그렇게 위험한지는 그동안 분명하게 규명되지 않았었다. ApoE4 유전자가 생성하는 ApoE4 단백질이 있으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가 뇌에 축적된다. 하지만 이 덩어리만으로는 뇌세포를 죽이거나 기억 상실과 정신착란 같은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적인 증상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ApoE를 치료 타겟으로 삼아야
최근 미국 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 의대 연구진은 ApoE4의 존재가 다른 알츠하이머 관련 단백질인 타우(tau)의 독성 엉킴으로 인한 뇌 손상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ApoE 단백질이 없으면 타우 단백질의 엉킴도 뇌세포에 거의 해를 끼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발견은 ApoE를 타겟으로 삼으면 현재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는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뇌 손상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홀츠먼(David Holtzman) 신경과 주임교수는 “일단 타우 단백질이 축적되면 뇌가 퇴화된다”며, “우리가 발견한 것은 ApoE 단백질이 있을 때 그것이 타우의 독성 기능을 증폭시킨다는 사실로서 이는 ApoE 수치를 낮추면 질병의 진행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20일자에 발표됐다.
ApoE 전혀 없으면 뇌 손상 안 일어나
알츠하이머병은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한 명에게서 발생하며, 타우 병증(tauopathies)이라 불리는 질병군의 가장 흔한 예다. 이 질병군에는 직업적으로 머리에 충격을 받는 프로 권투선수와 축구선수를 괴롭히는 만성 외상성 뇌증과 다른 여러 신경 퇴행성 질환이 포함된다.
홀츠먼 교수와 논문 저자인 대학원생 양 쉬(Yang Shi) 팀은 ApoE 변이체가 타우 병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독성 엉킴을 형성하는 사람의 타우 돌연변이체를 가지고 있는 실험용 쥐를 연구했다.
이들은 자체 ApoE 유전자가 없는 쥐를 활용하거나 혹은 그 유전자를 인간의 ApoE 3개 변형 유전자인 ApoE2, ApoE3, ApoE4 가운데 하나로 대체했다. ApoE4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더욱 흔한 ApoE3 유전자를 가진 대다수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킬 확률이 높고, 반대로 ApoE2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이 질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험용 쥐가 자라서 9개월이 되자 인간 ApoE 변이체를 가진 쥐들은 광범위한 뇌 손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와 내후각 피질(entorhinal cortex)은 위축됐고, 체액으로 채워진 죽은 세포가 있는 공간은 더 넓어졌다. ApoE4가 있는 쥐가 가장 심각한 신경 퇴화를 나타냈고, ApoE2를 가진 쥐가 가장 적게 나타났다. ApoE가 전혀 없는 쥐는 실제로 아무런 뇌 손상이 없었다.

ApoE4가 뇌에서 염증 부추겨
또한 ApoE4를 가진 쥐의 두뇌에 있는 면역세포들은 ApoE3를 가진 쥐의 면역세포들보다 훨씬 강력하게 염증을 일으키는 일련의 유전자를 활성화시켰다. ApoE가 결핍된 쥐의 면역세포는 매우 미약하게 활성화되었다.
홀츠먼 교수는 “ApoE4는 더 심한 염증반응을 부추기기 때문에 다른 변이형들보다 더 심한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보이고, 이는 상처를 유발하는 염증일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나 ApoE의 모든 형태, 심지어 ApoE2까지도 타우가 응집돼 축적될 때 어느 정도 해로울 수 있으므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뇌에 ApoE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ApoE가 타우에 의해 유발된 신경 손상을 악화시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 대 빌 실리(Bill Seely) 박사와 협동연구를 했다. 실리 박사는 지난 10년간 알츠하이머병 이외의 타우 병증으로 사망한 79명의 부검 표본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각각의 뇌에 손상이 있는지를 조사하며 ApoE 유전자 변이형을 찾아 기록했다. 그 결과 ApoE4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사망 당시에 이 유전자가 없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초기 환자 뇌에서 ApoE 줄이면 알츠하이머 진행 막아”
ApoE 유전자가 생성하는 ApoE 단백질은 콜레스테롤을 혈류를 통해 체내로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매우 드물게 이 기능성 ApoE 유전자가 결여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콜레스테롤치가 너무 높아 이를 치료하지 않으면 젊은 나이에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수 있다. 그러나 뇌에 ApoE가 없어도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ApoE는 일차적으로 간과 대식세포에 의해 생성되며 뇌의 성상세포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홀츠먼 교수는 “뇌에 ApoE가 없어도 별다른 문제 없이 생활하며 좋은 인지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때 정상적인 뇌 기능에는 ApoE가 필요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결과는 뇌에서 ApoE를 감소시키면 이미 타우 엉킴이 축적된 사람들에게서도 신경 퇴행을 느리게 하거나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 치료법은 아밀로이드 베타나 혹은 타우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아직까지 질병 치료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 하고 있다. 홀츠먼 교수에 따르면 ApoE를 타겟으로 삼은 치료법은 아직 시도된 적이 없다.
홀츠먼 교수는 “알츠하이머 초기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뇌에서 ApoE를 감소시키면 신경 퇴행 진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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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9-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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