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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현정 리포터
2023-08-17

‘향기’가 불러온 추억? 향기는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돼 6개월 간 2시간씩 향기에 노출된 노인의 인지기능 226%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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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중략)...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 명문장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주인공이 홍차 향기를 맡으면서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된 순간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 작품은 냄새가 기억을 어떻게 되살리는지를 생생하고 풍부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해, 이런 무의지적 기억을 작가의 이름을 따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르게 됐다.

실제로 후각은 다른 어떤 감각 신호보다 뇌에 저장된 기억이나 그 기억과 관련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월등하다고 알려진다. 때문에 후각이 뇌에 미치는 영향, 후각과 인지작용에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뇌바이오 연구센터 연구진은 향기가 노인들의 기억력을 향상시켰다는 실험 결과를 <Frontiers in Neuroscience>에 발표했다. 이른바 ‘향기요법’으로 불리는 이 실험은 후각을 강화하는 것으로 뇌 건강 및 뇌 기능을 향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프루스트 효과 ⓒwikimediacommons

 

향기요법으로 노인의 인지 능력 향상돼

후각은 뇌 활동을 조절하고 인지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후각능력을 통해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정신분열 및 알코올 중독 등 약 70여 가지의 신경정신 질환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UCI 연구진 역시 이전 연구를 통해 중증도 치매환자에게 일정 기간 동안 하루에 두 번, 최대 40가지의 냄새에 노출시키면 후각 능력이 향상되면서 기억력, 언어 능력이 향상되고 우울증이 완화되는 실험 결과를 얻은 바 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전 실험 조건과 환경을 변형하여 현실성 있는 결과를 얻기로 결정했다.

마이클 레온(Michael Leon) 신경생물학 및 행동학 교수는 “노년기에 접어드는 60세부터는 후각과 인지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관련 장애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지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매일 수십 여 개의 향수병을 열고 닫으면서 냄새를 맡는 행동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연구진은 이번 실험을 치매 예방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이전 실험과 연계하되 보다 간단하고 쉬운 접근 방법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향기요법이 노인의 인지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 ⓒGettyImagesBank

‘향기요법’으로 이름 지어진 이 실험은 기억력 장애가 없는 60~85세 남녀 43명을 강화그룹, 대조그룹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두 그룹 모두 7개의 디퓨저와 천연 오일이 든 카트리지를 제공했지만, 강화그룹에게는 최대 강도의 카트리지를, 대조그룹에게는 소량의 오일을 제공했다. 그러고 대상자들이 6개월 간 매일 잠들기 전에 디퓨저에 오일을 넣고 수면을 취하도록 했으며, 디퓨저는 2시간 동안 활성화되었다.

실험결과 연구진은 강화그룹의 인지기능의 향상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두 그룹 모두 청각언어학습테스트, 즉 일반적으로 기억력 평가에 사용되는 단어 목록 테스트를 시행했는데 강화그룹의 인지기능이 대조군에 비해 22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fMRA도 동일한 결과가 도출됐다. 강화그룹의 뇌스캔 이미지를 확인해 보면 갈고리섬유다발(uncinate fasciculus)에서 개선된 결과가 관찰됐다. 갈고리섬유다발은 측두엽에 저장된 연상기억이 전두엽의 의사결정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즉, 사람이 기억한 것을 떠올려 표현하는 프로세스를 담당하는데, ‘향기요법’을 통해 이 부분의 기능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청각언어학습테스트에 대한 결과. 연구진은 반복측정을 통한 공변량 분석으로 그룹 간 유의미한 차이를 얻었다고 밝혔다. ⓒFrontiers in Neuroscience

후각능력 상실과 인지 기능 저하는 밀접한 관계

연구진은 기존 연구결과를 언급하며 후각능력이 인지 기능 저하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후각을 상실하면 뇌 회백질 부피 및 조직 두께가 줄어들고, 정보처리 역할에 이상이 생겨 결국 인지능력 저하를 동반한다.

이미 많은 연구가 후각 상실이 알츠하이머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한 바 있다. 지난해 미국 시카고대학교 이비인후과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급격히 후각을 잃은 사람은 뇌 수축 변화가 더 확실하게 나타나 치매에 걸릴 위험이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옥스포트대학교를 주축으로 한 연구진이 ‘UK 바이오뱅크 데이터’에서 코로나19 완치자의 뇌 영상 자료를 확인한 결과 뇌 영역의 회백질이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코로나19가 후각상실을 동반하고, 이러한 증세가 결국 인지기능 저하 및 치매를 발현시킬 수 있다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마이클 야서(Michael Yassa) UCI 교수는 “안경과 보청기로 시각·청각 장애를 치료 및 보조하는 것과는 달리 후각 상실에 대한 적극적은 조치는 없다.”고 말했다. 향기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데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는지, 후각능력과 인지 기능의 밀접한 상관관계가 밝혀진 지 아주 오래 됐음에도 이를 활용한 치료방법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을 우려한 말이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이 인지기능 저하 및 기억 장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 많은 연구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3-08-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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