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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우울증: 아내와 남편이 함께 극복해야 할 여정 새 생명 탄생의 기쁨 뒤에 드리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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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우울증

대체로 지나고 보면 ‘출산’은 부부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로 여겨진다. 새 생명의 탄생은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큰 어려움도 함께 찾아온다.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주변 환경, 폭발적인 아기의 울음소리, 부족한 수면시간 등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산후우울증(Postpartum/peripartum depression)'이다. 

산후우울증은 단순 ‘산후 우울감’과는 다른 문제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산후 우울감’은 분만 후 2주 이내에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반면 ‘산후 우울증’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욱 악화되어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 전문적인 치료를 필요로 한다.

온갖 어려움에도 책임감 하나로 버티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부모를 위해서 산후 우울증을 겪는 아내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이 상황에서 남편이 느끼는 어려움, 그리고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아내의 관점 - 갑작스러운 변화의 고통

신체적 변화와 호르몬의 폭풍: 출산 후 여성의 몸은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9개월 동안 아기를 품었던 몸은 갑작스럽게 텅 빈듯한 느낌이고, 호르몬 수치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출산 직후 급감하면서 여성의 기분과 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마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기쁨, 슬픔, 분노, 불안이 예고 없이 찾아오고,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없다. 또한 출산 과정에서 겪은 신체적 트라우마도 무시할 수 없다. 자연 분만을 한 여성들은 회음부 통증, 질 손상, 회복 과정의 불편함 등을 경험했으며, 제왕절개를 한 여성들은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심각한 통증과 불편함을 겪었다. 이러한 신체적 고통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여성은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역할은 기존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Getty Images

아기가 태어나면서 여성은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역할은 기존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Getty Images

정체성의 혼란과 상실감: 아기가 태어나면서 여성은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역할은 기존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직장인, 아내, 친구, 딸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던 여성은 이제 '엄마'라는 역할에 압도당하고 있다. 이전의 자아는 어디로 사라진 것 같고, 자신의 욕구와 필요는 항상 아기의 것 뒤로 밀려나 있다. 이에 "나는 이제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돈다. 또한,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은 깊은 상실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경력이 중단된 여성들은 사회적 고립감과 함께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사회는 여성에게 '완벽한 엄마'의 이미지를 강요한다. SNS에는 항상 미소 짓는 엄마와 행복해 보이는 아기의 모습이 넘쳐나고, 주변에서는 "아이를 위한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전달된다. 이러한 사회적 압박은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더욱 크게 만든다. 또한, 매 순간 아기의 요구에 즉각 반응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여성을 옥죄고 있다. 모유 수유가 잘되지 않거나, 아기가 계속 울 때, 또는 단순히 육아 방식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마다 자책감이 밀려온다. "난 왜 이렇게 나쁜 엄마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신생아의 불규칙한 수면 패턴은 엄마의 수면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Getty Images

신생아의 불규칙한 수면 패턴은 엄마의 수면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Getty Images

수면 부족과 만성 피로: 신생아의 불규칙한 수면 패턴은 엄마의 수면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2-3시간마다 깨어나는 아기를 돌보면서, 여성은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없다. 이러한 수면 부족은 단순한 피곤함을 넘어서 신체적, 정신적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집중력이 저하되고, 판단력이 흐려지며,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 나거나 울음이 터져 나오고, 때로는 완전한 무감각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현상들은 악순환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면서 아기를 돌보는 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이는 다시 자책감과 우울감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고립과 소통의 단절: 출산 후 여성의 일상은 완전히 변화한다. 이전에는 직장 동료들과 소통하고, 친구를 만나고,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했지만,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집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루 종일 아기와 단둘이 있으면서, 성인과의 의미 있는 대화가 거의 없어진다. 더욱이 주변 사람들은 주로 아기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아기는 어때?", "아기가 잘 자니?", "아기가 먹는 건 어때?" 등의 질문이 이어지지만, 정작 엄마의 상태를 진심으로 물어보는 사람은 드물다. 이러한 소통의 단절은 더 깊은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


남편의 관점 - 침묵, 보이지 않는 고통

무력감과 혼란: 남편은 아내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 전에는 웃음이 많고 활기찬 아내가 이제는 눈물을 자주 흘리고,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지, 아니면 더 심각한 문제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아빠가 되는 것이 처음인 남자는 어떻게든 아내를 돕고 싶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그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 같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억울함과 소외감: 남편 역시 아버지라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해야 하지만, 그의 감정과 어려움은 종종 무시된다.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밤에는 아기를 돌보느라 수면 부족에, 낮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사회 활동에 부담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아내를 더 도와야 한다", "아내가 힘들 때 더 이해해 줘야 한다"는 조언만 반복한다. 남편의 노력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의 희생과 고통은 간과된다. 이러한 편향된 시선은 남편에게 깊은 억울함과 소외감을 안겨준다.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편향된 시선은 남편에게 깊은 억울함과 소외감을 안겨준다. ©Getty Images

편향된 시선은 남편에게 깊은 억울함과 소외감을 안겨준다. ©Getty Images

아내와의 관계 변화: 출산 전 부부는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지만,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모든 초점이 아기에게 맞춰진다. 아내는 항상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있고, 소리를 지른다. 남편과의 친밀한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 성관계는 물론이고, 단순한 대화나 스킨십도 매우 줄어든다. 남편은 이런 변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동시에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제 그저 돈을 벌어오고 집안일을 돕는 존재로 전락한 건가?"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힌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을지 불안해한다.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상황: 지금은 이전보다 많이 달라진 사회라고 하지만, 남성은 전통적으로 강인함과 독립성을 요구받고 있다. 즉,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은 기본이며, 자신의 감정적 어려움을 표현하는 것은 약함의 징표로 여겨진다. 특히 아내가 더 힘든 상황에서는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기대로 인해 남편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한다.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어렵고, 전문적인 도움을 찾는 것은 더욱 생각하기 어렵다. 이러한 감정의 억압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중시킨다.

 

출산 후 우울증의 치료와 회복

전문적 도움의 중요성: 출산 후 우울증은 단순한 기분 저하가 아닌 전문가의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한 심각한 상태이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 상담사는 개인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치료는 상담 치료(인지행동치료, 대인관계 치료 등)와 약물 치료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약물 치료의 경우, 모유 수유 중인 여성에게도 안전한 항우울제가 있으므로, 전문의와 상담 후 적절한 약물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치료를 통해 많은 여성이 증상의 완화를 경험했고,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부부 간의 열린 소통: 출산 후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있어 부부 간의 솔직한 대화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아내는 자신의 감정과 어려움을 숨기지 않고 표현해야 하며, 남편은 비판 없이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남편 역시 자신의 감정과 고충을 솔직히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서로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부부는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출산 후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있어 부부 간의 솔직한 대화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Getty Images

출산 후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있어 부부 간의 솔직한 대화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Getty Images

현실적인 기대 설정: 완벽한 부모, 완벽한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부는 자신들에게 현실적인 기대를 설정하고, 작은 성취와 진전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집이 조금 지저분하거나, 가끔 인스턴트 식품을 먹을 때, 때로는 아기가 울어도 즉시 반응하지 못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태도는 자책감과 죄책감을 줄이고, 스트레스 수준을 낮출 수 있다. 부부는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더 자비로운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지원 네트워크 구축: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출산 후 우울증을 겪는 부부에게는 특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가족, 친구, 이웃, 육아 도우미 등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수용해야 한다.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부모들과의 연결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부모 지원 그룹에 참여하면, 자신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질적인 조언과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자기 돌봄의 실천: 출산 후 우울증 극복을 위해서는 아기 돌봄 못지않게 부모인 자신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충분한 휴식, 균형 잡힌 식사,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운동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필수적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만의 시간'을 허용해야 한다. 아내가 혼자 산책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시간, 남편이 취미 활동을 즐기거나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건강한 부모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재충전 과정이다.

 

결국 함께 이겨내는 여정이다

출산 후 우울증은 아내만의 문제도, 남편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부부가 함께 직면하고 극복해야 할 도전이다. 시간이 지나면 호르몬 균형이 회복되고, 아기가 성장하면서 상황이 나아질 수 있지만, 적극적인 치료와 상호 지원 없이는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출산 후 우울증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점이다. ©Getty Images

중요한 것은 출산 후 우울증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점이다. ©Getty Images

중요한 것은 출산 후 우울증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많은 새로운 부모들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상태이며, 적절한 도움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부부가 서로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출산 후 우울증은 끝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성장하고 더 깊은 이해와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 나감으로써, 부부는 인생의 어떤 도전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04-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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