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바다, 가까운 바다와 먼 바다.
바다는 항상 움직이고 있고 그 움직임은 파도와 조류, 해류가 대표한다. 그러나 바다에 가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파도뿐이다. 바닷가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보면서 바다는 항상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만, 그 파도가 전부이다. 조석(tide)이 우세하다는 서해안에서 조수간만의 차이로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보며 움직이는 바다를 ‘생각하며’ 느낄 수 있지만, 그냥 느껴지는 파도와는 무언가 차이가 있다. 해류도 과학 시간에 배우지만 책에서 배운 해류를 바닷가에서 직접 보고 느낄 수는 없다. 해류는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면 해류를 따라 돌고 돌아 우리나라에 몇 년 후에 도달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라는 뉴스 보도에서 듣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실감할 수 없고,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바다는 지구 바닥에 고여 있는 ‘많은 물’ 정도로 볼 수 있지만, 그 그릇이 너무 크기 때문에 위치와 시간에 따라 다른 힘을 받고 그 차이로 다른 움직임(흐름)을 보인다. 그 다른 움직임을 나누어 보자.
어떤 자연현상을 나누려면 무엇보다도 기준이 필요하다. 바다의 움직임을 나누는 대표적인 기준은 보통 추진력(推進力)으로 해석되는 힘(driving force)이다. 바다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설명하면 되지만, 달리 직역하면 “기동력(起動力)”이 된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시동(始動)을 거는’ 행동을 떠올리면 된다.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아 차가 움직이도록 하는 힘이 기동력이다. 그런데 바다에서는 그 기동력이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가지 기동력에서 대표를 골라내고 그 힘으로 다양하게 움직이는 바다를 소개한다.
바람이 일으키는 파도, 풍파(wind waves)
가장 대표적인 기동력이 바람이다. 바람이 바다 표면을 미는 힘이라고 할까? 그 미는 힘을 전단 응력(shear stress)이라고 한다. 미는 힘(전단 응력)을 이론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관측과 실험으로 축적된 풍속과 파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경험 공식을 이용한다. 그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파도이고, 그 파도가 모든 방향으로 전파되면서 바다의 출렁거리는 움직임이 발생한다.
이 움직임은 매우 불규칙적이지만 대략적인 주기 관점에서 보면 2~3초에서 20초 범위에 있다. 바람이라는 기동력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파도, 전문용어로는 풍랑, 파랑(wind wav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바람으로 만들어지는 파도는 파고에 따라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잔잔한 파도는 평화로움을 느끼게 하고 정서적인 안정을 주지만 태풍 또는 강풍으로 인한 높은 파고는 우리를 무섭게 한다. 놀이시설에서는 적절한 파도를 만들어서 가상 바다를 즐기기도 한다. 파도는 이래저래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짧은 시간’의 움직임이다.
너무나도 규칙적인 조석. 임진왜란 시기의 ‘물 때’도 예측
다음 기동력은 매우 규칙적이고 천체 운동으로 발생하는 만유인력이다. 질량을 가지는 두 물체 사이에는 인력(잡아당기는 힘)이 존재하지만 지구의 바다 움직임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두 천체는 달과 태양이고, 각각의 인력 비율은 이론적으로 100:46 정도이다. 태양, 지구, 달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지구 바다에 작용하는 힘이 시간과 위치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그 차이로 바다가 움직인다. 그 움직임을 조석(tide, tidal wave)이라고 한다. 조석의 수평 움직임은 조류(潮流, tidal current), 수직 움직임은 조위(潮位, tidal elevation)라고 하며 보통 ‘물 때’라는 시간으로 예측이 된다. 그 움직임이 해저지형의 영향을 받아 어디서는 증폭이 일어나고 어디서는 변형이 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조석이 바닷가에서는 매우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발생한다.
반복 주기는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으로 24시간 50분이고, 조금 더 긴 시간인 달의 공전주기로 보면 29.5일이다. “매우 규칙적”이라는 의미는 조금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규칙적인가는 천문학적 시간 규모로 본다. 수천, 수만 년 동안 지구와 달, 태양의 위치(궤도)가 지금처럼 그대로이고, 지구 해저지형과 육지와 만나는 해안 지형이 그대로 라면 조석에 의한 물 때는 변함이 없다는 얘기이다. 현재 우리나라 남해안의 조석 관측 자료를 이용하면 임진왜란 시기의 어느 달, 어느 날 물 때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구에서 발생하는 자연현상 중에서 가장 예측이 잘 되는 자연현상이다. 물론 천문학적 정보를 이용한 달, 지구, 태양의 상대적인 위치 계산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바가 없다. 천문학과 해양학은 조석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연결된다.
먼 바다의 해류. 작은 차이로 만들어지는 거대한 '바다 흐름'
다음 기동력은 먼 바다의 거대한 규모로 움직이는 해류를 일으키는 힘이다. 이 기동력은 바람을 일으키는 “기압경도력”에 대비하여 바다의 “수압경도력”으로 설명이 된다. 경도(傾度)는 “기울어진 정도”, 수학적인 용어로는 수압의 위치에 따른 차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판단하는 ‘미분’으로 정의되는 숫자이다. 바다에서도 기압 차이로 수면 고도(SSH, sea surface height) 차이가 발생한다. 더불어 수온과 염분 차이로 발생하는 밀도로도 수압 차이가 발생하고 그 차이로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해류가 만들어진다.
해류 기동력을 바다 표면으로 한정하여 보면 계절에 따라 일정한 풍향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부는 바람이 우세한 기동력이 된다. 일단 바다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운동 법칙이 적용된다. 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표층 해류와 심층의 거대한 순환 흐름이 따로 또 같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더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흐름이 바다를 무대로 만들어진다. 쿠로시오 해류, 대마난류, 동한난류, 북한한류 등이 우리가 많이 들어 본 해류 이름이다.
해류 연구는 해양 연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조석과는 달리 불규칙한 변동 특성과 크고 작은 흐름의 영향으로 장기간의 예측은 평균적인 흐름 수준을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아주 어려운 연구영역이다.
또 다른 바다 흐름, 쓰나미 등등...
이상이 대표적인 바다 흐름이지만 또 하나의 ‘무서운’ 일시적인 흐름, 쓰나미(tsunami, 津波)를 소개한다. 이 쓰나미는 기동력이 해저 지진이지만 사람이 느끼는 것은 바닷가 포구 또는 나루터(津)인지라, '진(津) 파(wave)'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저에서 지각이 급격하게 융기하거나 침강하는 경우 발생하는 파도로 주기는 약 30분 - 2시간 정도로, 지각 변화가 발생한 지점에서 에너지 손실이 거의 없이 모든 방향으로 전파된다. 수심이 깊은 바다에서는 항공기 속도로 전파된다. 대략적인 전파속도는 이론적으로 √gh가 유도된다. 여기서 g는 중력가속도(9.8 m/s²), h는 수심(m)이다. 수심 4,000m 조건에서 전파속도는 200m/s, 시속으로 환산하면 720km 이다.
쓰나미는 지진이 기동력이기 때문에 지진 예측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일단 어디에선가 쓰나미가 발생하면 사람이 사는 바닷가에 도달하는 시간과 파고를 신속하게 알려주고 대피를 안내하는 것이 현재의 대처 방법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알려주면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그 예보를 위한 지진 해일 감시 시스템과 예측 시스템이 모든 바닷가에 준비되어 있지는 않다.
바다에는 또 오랜 기간 불어대는 강한 바람으로 만들어지는 흐름, 폭풍해일이 있다. 그리고 파랑이 만들어내는 파생 흐름으로 연안류, 이안류, 해향(海向) 저류(undertow) 등이 있고 선박이 만들어내는 흐름, 표면 장력으로 만들어지는 아주 작은 잔잔한 물결이 있다. 시간 규모와 공간 규모가 다르지만 크고 작은 다양한 흐름이 바다를 다양하게 꾸며주고 있다. 탁 트인 공간(open space)으로 대표되는 바다에서 여러 가지 흐름을 일으키는 ‘힘’의 세계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즐기길 바란다.
-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조홍연 책임연구원
- 저작권자 2023-12-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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