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인어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디즈니 애니메이션만 봐도 그렇다. 여기에 등장하는 바다의 마녀 우르슬라는 인어공주 에리얼이 ‘다리를 얻는 계약’ 조건으로 목소리를 탐낸다. 결국 “이 물 밖에서 살려면 무엇을 바쳐야할까? (What would I give if I could live out of these waters?)”라며 아름답게 노래하던 에리얼이 내놓은 건 역설적이게도 목소리였다.
그런데 전설, 동화에서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된 인어의 목소리가 실제로는 물고기의 방귀소리 혹은 뼈를 긁는 소리와 유사할 것이라는 가설이 등장해 관심을 모은다.
Under the sea, 많은 소리가 공존하는 곳
바다 속은 다양한 소리들로 가득하다. 해양생물들이 내는 소리, 지구의 진동이 전달돼 나는 소리, 수면 밖 소음이 수중으로 굴절돼 발생한 소음 등이 매우 떠들썩하게 차 있다.
올해 초 BBC가 북극해양음향연구소의 발표를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극지방에는 ‘얼음의 노래’, ‘우주에 있는 듯한 바다표범의 소리’, 인간의 탐사를 위해 발생하는 지진파 소음 등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녹음된 극지방의 소리는 50여 개이며,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남극로스해물범, 게잡이물범, 밍크고래, 외뿔고래, 혹등고래 등의 소리가 담겨 있다.
독일 헬름홀츠 해양생물다양성 연구소에 제라인트 리스 휘태커(Geraint Rhys Whittaker) 박사는 “극지방에서 녹음된 소리는 사람들에게 꽤 생소할 것”이라며, “바다 속, 특히 극지방에서 나는 소리는 상상을 바탕으로 한 경우일 때도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새우 집게가 만든 큰 소리, 고래 입술이 내는 노래
해양동물들이 내는 소리는 매우 흥미롭다. 달갑지 않은 인공소음을 제외하면 바다에서 들리는 소리는 살아있는 해양생태계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실제로 바다 속에는 산호, 성게, 게부터 거대한 혹등고래까지 짝짓기와 먹이찾기, 이동, 무리짓기를 위해 각각의 종마다 고유한 소리를 낸다.
수심 100m 이내에 사는 딱총새우는 큰 집게발을 벌렸다 닫을 때마다 “따닥따닥”하는 충격음을 낸다. 이 종은 몸길이가 고작 4㎝에 불과하지만 집게로 거대한 소리를 내 지구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생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이 소리는 집게발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방울이 분사되는 ‘캐비테이션(cavitation, 진공방울 파괴 현상)’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고래, 돌고래, 바다표범 및 기타 해양 포유류는 종마다 내는 소리도 다르고 방법에도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은 공기를 몸 안에서 순환시키는 일종의 공기재활용 시스템으로 소리를 낸다. 고래는 인간의 후두와 유사한 조직을 진동시켜 수중에서 ‘노래’와 비슷한 리듬과 복잡한 음계를 내는데, 최근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페테르 마센(Peter Langkjær Madsen) 교수 연구팀이 그 비밀을 밝혀냈다.
마센 교수는 올해 3월에 열린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연례회의에서 고래는 코 주변에 있는 ‘음성 입술(phonic lips)’을 진동시켜 소리를 낸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고래가 해수면 압력의 100배나 높은 바다 깊이 들어갈 때 폐가 갑자기 수축하면서 공기가 입속 작은 근육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고래가 소리를 낼 때는 근육 주머니의 밸브형 기관이 잠시(1/1000초) 열리면서 압축돼 있던 공기가 콧속으로 강하게 분사되는데, 이 때 음성입술을 진동시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또한, 연구진은 진동하는 음성 입술이 다시 다물어질 때는 매우 강력한 소총이 발사될 때 발생하는 정도의 ‘딸깍’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바다의 ‘인싸’, 인어는 방귀로 의사소통?
한편, 오드리 루디(Audrey Looby) 플로리다 대학교 해양생물학 박사는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물고기들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소리를 낸다고 전했다. 뼈 구조를 두드리거나 문지르는 행동을 한다거나, 근육을 사용해 드럼을 치듯 내부 기관을 진동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마는 두개골 꼭대기를 머리 뿔에 두드려 딸깍 소리를 내면서 짝짓기 신호를 보낸다.
루디 박사는 일부 물고기는 ‘방귀’를 통해 소통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부 물고기는 뒤쪽으로 공기를 내뿜어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류 특성상 몸 측면에 물의 진동을 감지할 수 있는 세포를 가지고 있어 ‘방귀 듣기’에 특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루디 박사는 바다의 ‘인싸(외향적이고 인기 많은 사람)’ 인어는 많은 수중 생물들과 소통하기 위해 어류, 해양포유류의 구조를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인어는 하반신이 어류 형태이기 때문에 몸의 공기 공급 장치를 재활용하여 방귀를 뀌거나, 이빨과 두개골을 마찰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인어가 실재하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연구를 진행할 수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재슬린 싱(Jasleen Singh) 노스웨스턴대학교 박사 후 연구원은 루디 박사의 가설을 소리와 청각의 차이로 설명하기도 했다. 싱 연구원은 실제로 인어가 존재하고, 그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소리를 낸다는 가정을 해도 그 소리는 명확하게 들리지 않거나 사람이 그 소리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많은 동화작가들은 인어가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하는 장면을 종종 묘사하곤 한다. 하지만 동화 속에 의인화된 캐릭터들과는 달리 해양생물은 ‘사람의 소리’와는 다른 소리로 의사소통하기 때문이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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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08-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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