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뇌는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잠들기 전 하루 동안의 경험을 정리하고 필요 없는 정보를 걸러내며, 중요한 기억을 강화한다. 이러한 수면 중 기억의 재구성은 학습 능력,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창의적 사고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연구들은 수면이 생리적 회복을 넘어 기억의 형성과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수면 중 나타나는 특정 뇌파와 신경 활동이 어떤 기억을 저장하고, 어떤 기억을 삭제할지 결정짓는 중요한 메커니즘임이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수면은 단순한 "쉼"을 넘어 우리의 두뇌가 학습과 기억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렇다면 수면 중 기억은 어떻게 재구성될까.
최근의 기억은 NREM 수면 상태에서 저장
미국 코넬대학교 신경생물학 및 행동학 연구팀은 비급속안구운동(Non-REM, NREM) 상태에서 수면 미세구조가 과거와 최근의 기억을 구분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수면 중 나타나는 특정 뉴런의 활동 패턴과 동공 크기의 변화가 기억의 정리와 분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뇌가 기억의 혼합과 간섭을 방지하고, 최근의 기억을 최적화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에 대한 여러 연구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게 됐다.
사실 많은 연구자들이 해마에서 오래된 기억들이 동시에 재활성화되면서 새로운 기억과 기존 기억 간 간섭을 어떻게 방지하는지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대표적인 성과로 기억을 간섭 없이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기억 재활성화 과정을 무작위로 섞어서 진행하는 방법이 제안된 바 있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수면의 시간적 미세구조가 특정 하위 상태에서 서로 다른 유형의 기억을 재활성화하도록 돕는다는 가설도 있다.
코넬대학교 연구진은 이러한 기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용 쥐의 해마 뉴런 활동을 정밀하게 기록하며 수면 중 기억재생 과정의 특징을 관찰했다.
기억 재생의 시간적 분리 메커니즘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근 경험에 대한 기억재생은 NREM 수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NREM 수면은 뇌가 깊은 휴식과 복구 작업을 수행하는 비급속안구 운동 상태, 즉 동공이 수축된 상태다. 이때 해마의 CA3, CA1 영역에서 샤프웨이브 리플(sharp-wave ripples)이 발생한다.
이는 기억 공고화와 관련된 핵심 뇌파로 일반적으로 100ms에서 200ms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 발생한다고 알려진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기억은 해마에서 대뇌 피질로 이전하는데, 즉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변환된다. 반면, 오래된 기억의 재생은 동공이 확장된 하위 상태에서 더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기억 처리의 미세구조를 조작하여 기억 처리 방식을 재검증했다. 이를 위해 동공이 수축된 NREM 수면 동안 샤프웨이브 리플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폐쇄 루프 조작 실험을 병행했다. 그 결과 최근 기억의 회상 능력이 저하됐다. 하지만 REM 수면 상태에서 같은 조작을 시행했을 때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자하라 올리바(Azahara Oliva) 코넬대학교 교수는 “NREM 수면의 미세구조는 기억 재생 과정을 조직화하며, 새로운 기억과 오래된 기억이 서로 다른 하위 상태에서 시간적으로 분리되어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수축된 동공 상태에서는 외부로부터의 강한 흥분성 입력이 더 두드러졌고, 확장된 동공 상태에서는 지역적 억제 작용이 우세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뇌의 메커니즘, AI 알고리즘 개발에 적용?
연구진은 수면 중 기억의 처리와 관련한 뇌 활동의 비밀을 밝히며, 인간 연구로의 확장 가능성도 제시했다. 기억 간섭을 방지하고 학습 효율을 높이는 뇌의 메커니즘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 개발과 치매 등 기억력 저하 질환 치료에 적용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주장했다.
안토니오 페르난데즈-루이즈(Antonio Fernandez-Ruiz) 코넬대학교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억의 혼합을 방지하며 학습된 정보를 최적화하는 수면의 핵심 역할을 보여줬다”며 “인간의 뇌에서 유사한 메커니즘을 발견할 경우, 학습 능력을 강화하거나 기억력 관련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고 밝혔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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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1-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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