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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 ‘불일치 가설’ 증거 찾았다 현대 식단으로 전환한 목축민, 심혈관질환 위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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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조상들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당류와 육류 같은 고칼로리 음식을 좋아하고 여분의 에너지를 지방으로 잘 저장하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요즘 현대인들이 즐겨먹는 탄산음료나 햄버거를 많이 먹어도 비만이나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의 질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우리 조상처럼 아직도 수렵채집인으로 남아 있는 탄자니아의 하드자족과 전형적인 서구 선진국 남성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프린스턴대학과 음팔라연구소 등의 국제 공동연구진은 불일치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 Christian Alessandro Perez(University of Missouri-Columbia)

몸무게 51㎏의 하드자족 남성의 경우 식량을 구하기 위해 하루 15㎞를 걸어 다닌다. 때문에 하루 사용 총 열량인 약 2600칼로리 중 1500칼로리를 걷는데 사용한다. 기초대사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에너지는 제외한 수치이니 체중 1㎏ 당 30칼로리를 몸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셈이다.

반면 몸무게 70㎏이 넘는 선진국 남성이 신체활동에 쓰는 에너지는 체중 1㎏ 당 17칼로리에 불과하다. 이 같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와 서구적 생활양식의 ‘불일치’는 광범위한 건강 문제를 발생시킨다.

즉 비만,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 현대인의 주요 만성질환은 우리가 먹는 식단과 진화된 우리 신체 간의 불일치의 결과라는 의미다. 이처럼 우리 신체가 우리 조상이 먹은 음식을 소화하도록 진화하고 적응한 결과, 새로운 식단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이론이 바로 ‘불일치 가설’이다.

진화의학의 핵심 이론, 불일치 가설

이 가설은 진화생물학을 건강과 질병에 적용하는 신생 학문인 진화의학의 핵심 이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가설은 직접 검증하기 어렵다. 우리 조상과 현대의 생활양식에 걸쳐 있는 인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존에 행해진 대부분의 실험은 앞에서 예로 든 사례처럼 서구 선진국과 수렵채집 사회의 구성원을 비교하곤 했는데, 식단의 영향을 유전적 차이 혹은 생활 방식의 차이와 혼동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 프린스턴대학 산하 루이스-시글러 통합유전체학연구소의 줄리앙 아이로레스 박사는 하버드대학 시절의 친구를 찾아 아프리카 케냐 북서부의 투르카나를 찾았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막에서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오는 한 무리의 여성을 보았던 것.

투르카나 부족 여성들이 물 항아리를 이고 그들의 전통 주거지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 ©Kennedy Saitoti(Mpala Research Centre)

음팔라연구소에 근무하는 아이로레스 박사의 친구는 그 여성들이 이고 오는 물로 투르카나의 주민들은 일주일 이상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투르카나 부족의 급속한 변화에 얽힌 이야기였다.

이 부족은 외딴 사막에서 목축민으로 살고 있었는데, 1980년대의 극심한 가뭄과 인근 지역에서의 유전 발견으로 많은 부족민들이 유목 생활을 포기하고 일부는 인근 마을에 그리고 다른 일부는 도시로 이주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목축민으로 사는 전통적인 투르카나 부족민들은 식단의 80%를 낙타, 양, 염소, 당나귀 같은 가축의 부산물에 의존하는 반면, 도시에 사는 투르카나 부족민은 정제된 탄수화물과 가공식품을 많이 먹는 현대인의 식단으로 전환한 것이다.

도시에 오래 살수록 건강지표 나빠

유전적으로 균일한 집단이 전통적인 식단과 현대 식단으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는 전례 없는 연구 표본을 찾은 아이로레스 박사팀은 사막, 마을, 도시 등 44개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1226명의 성인 투르카나 부족민으로부터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고 바이오마커를 분석했다.

바이오마커란 단백질, DNA, RNA, 대사물질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말한다. 그 결과 사막에서 전통적인 목축민으로 살고 있는 부족민이나 인근 마을에서 가내수공업 등으로 생활하는 투르카나 부족민들의 경우 모두 바이오마커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도시로 이주한 부족민은 비만, 당뇨병, 고혈압, 심혈관질환 등으로 인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같은 건강 지표는 도시에서 더 오래 산 부족민일수록 나빠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특히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살았던 부족민들은 심혈관질환의 위험이 가장 큰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아이로레스 박사는 “탄수화물 기반 식단으로 전환하고 도시 환경을 더 많이 경험할수록 건강이 더 안 좋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이번 연구로 우리가 기대했던 불일치 가설의 증거를 어느 정도 찾았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0월 21일 자에 발표됐다.

하지만 그는 이번 연구가 육식 위주의 단백질 기반 식단을 선호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만약 선진국에 사는 현대인들이 전통적인 투르카나 부족과 같은 식단으로 생활하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육식, 탄수화물, 가공식품 등의 다양한 식단에 적응하고 있는 현대인은 과거에는 드물었던 풍요의 질환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구석기 수렵채집인보다 더 긴 수명을 살고 있다. 어쩌면 인류의 식단에 대한 진화는 지금도 진행 중인지 모른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20-10-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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