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비만인 경우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은 것이 보통이다.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으면 혈관 가장 안쪽에 있는 내막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동맥경화가 발생하고, 이는 심근경색의 원인이 된다.
하루에 합성되는 콜레스테롤 중 20~25%는 간에서 합성된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간으로부터 콜레스테롤 생성량을 낮춰 동맥경화에 이은 심근경색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유전자편집 기술을 통해 그 치료방법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10일 ‘사이언스’ 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UPenn) 과학자들이 유전자편집 기술을 적용해 어른 원숭이의 간세포 유전자 기능을 약화, 콜레스테롤 생성량을 낮추고 심근경색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콜레스테롤 생성 유전자 기능, 대폭 낮춰
이번 연구 결과는 심장병 외에도 단백질 결함이 있는 유전병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실조증, 고혈압, 당뇨병, 백색증, 윌슨병, 헌팅턴병, 신경섬유종, 파브리병, 페닐케톤뇨증 등 치료가 힘든 많은 질환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유전학자 키란 무수누루(Kiran Musunuru)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영장류를 통해 치료 가능성을 확인한 최초의 사례”라며 “향후 불치병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유전자편집 원숭이는 이미 익숙한 용어가 됐다. 지난 1월 중국과학원 신경과학연구소(ION) 연구팀은 ‘체세포 핵치환 복제(SCNT)’ 기법을 사용해 원숭이의 복제 배아를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복제 원숭이 2마리를 출산한 바 있다.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초기 인간 배아 속에서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교정하고 있는 중이다. 영국과 중국에서는 이미 인간 배아 대상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 치료 임상실험을 허가했으며, 다른 나라들 역시 유사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상가모 테라퓨틱스(Sangamo Therapeutics)사에서는 이미 ‘엑스 비보(ex vivo)’란 치료법을 개발했다.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해 고관절 형성 부전(HIP)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기능을 제거한 후 환자 면역력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유전자편집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질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상가모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간세포에서 필요한 단백질을 다량 생성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연구 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간세포 안에서 이전 연구 사례와 정반대로 불필요한 단백질 내 유전자 기능을 대폭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유전자 기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세포가 필요하고 더 어려운 과정이 요구된다.
심근경색 등 예방·치료 혁신에 도움 줄 수 있어
연구를 이끈 사람은 유전자치료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제임스 윌슨(James Wilson) 교수다. 그는 간세포 내에서 혈중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는 저밀도 리포 단백질(LDL, low-density lipoprotein)을 관찰하고 있었다.
LDL 수치가 높아질 경우 심장 질환이나 뇌일혈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많은 제약회사들이 LDL의 활동을 억제하고 LDL로 인한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일 수 있는 의약품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윌슨 교수는 동료들과 함께 LDL을 활성화하는 유전자가 PCSK9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몸에 해롭지 않은 아데노 관련 바이러스(AAV)를 활용한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해 쥐 간 세포 안에 있는 PCSK9을 제거했다.
여기서 성공을 거둔 연구팀은 붉은털원숭이 실험을 시도했다. 이 실험을 위해 연구팀은 미국의 생명공학기업인 프리시전 바이오사이언스(Precision BioSciences)사로부터 메가뉴클레아제(meganuclease)라는 기술을 빌려왔다. 이 기술 역시 AAV를 활용하는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윌슨 교수는 “시술을 받은 붉은털원숭이 간세포 안에 있는 PCSK9 유전자 중 64%가 무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팀이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고강도의 시술을 한 결과 PCSK9의 기능이 84%까지 떨어졌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60% 내려갔다.
관련 논문은 1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지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 Meganuclease targeting of PCSK9 in macaque liver leads to stable reduction in serum cholesterol’이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새로 개발한 PCSK9 치료법이 높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환자 치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간 내의 단백질 형성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아밀라이드증 같은 대사관련 불치병 치료에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유사한 연구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한 인텔리아 세라퓨틱스(Intellia Therapeutics)사에서도 진행됐다. 이 생명공학 회사에서는 영장류 실험을 통해 아밀라이드증을 유발하는 단백질 트랜스타이레틴(transthyretin)의 기능을 80% 제거했다.
인텔리아 세라퓨틱스에서는 크리스퍼에 RNA가 포함된 나노 입자를 주입했으며, 이를 간세포 주입해 유전자편집에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찾아낸 AAV를 세라퓨틱스 사의 나노입자에 넣어 시술할 경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MIT의 분자유전학자이면서 유전자가위 전문가인 대니얼 앤더슨(Daniel Anderson) 교수는 “윌슨 교수팀이 놀라운 일을 해냈다”며, “이 방식이 어떤 치료법으로 발전할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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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7-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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