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임신 16주에 접어든 36세의 여성 클레어 로마스(Claire Lomas)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노스이스트 잉글랜드에서 열린 그레이트 노스런(Great North Run) 하프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완주에 성공한 것이다. 입덧과 피로감, 신체 하중 등 임산부가 가진 어려운 조건과 더불어 더 놀라운 것은 로마스가 하지 마비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5일만에 결승점 통과한 외골격 마라토너
그녀는 2007년 승마 사고 이후 가슴 이하가 마비돼 걷기도 힘든 상태였지만 5일 내내 걸어 마침내 결승선에 도착했다. 로마스를 완주하게 한 것은 그녀의 의지, 남편의 도움과 응원, 그리고 그녀가 입은 외골격(exoskeleton) 로봇이었다.
사실 로마스는 2012년에도 런던 마라톤을 17일만에 완주한 경험을 갖고 있다. 비록 마지막 주자로 들어왔지만 그녀가 17일동안 걸었던 길마다 감동적인 사연과 공감이 가득했다.
올해 33살의 영국 군인 제임스 존슨(James Johnson)은 지난 2012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던 중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겪었다. 가슴 아래 부분의 감각이 전혀 없어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던 존슨은 다시 혼자 걸어서 친구들과 좋아하는 식당에 가는 게 꿈이었다.
2015년에 그 꿈이 이뤄졌다. 이스라엘 로봇업체인 리워크로보틱스의 입는 로봇(wearable robot)을 착용하고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존슨은 "이런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정말 놀랍다"며 "이제 혼자 걸어서 바에 갈 수 있다"고 감회를 전했다.
70억명의 인구가 사는 지구촌은 늘 감동적인 휴먼스토리로 가득찬다. 자신도 며칠째 굶었음에도 동생에게 빵을 먹이는 아프리카의 어린 소녀, 김밥과 폐지를 팔아 평생 모은 돈을 사회에 기부하는 할머니, 치매 걸린 노모의 밥상을 10년째 차리고 있는 아들... 이런 휴먼스토리에 앞으로는 로봇도 제대로 한 몫 할 것 같다.
무거운 포탄 쉽게 옮기기 위해 개발된 외골격 로봇
위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입는 로봇으로 알려진 외골격 로봇이 함께 만들어낸 사연이다. 외골격은 재활로봇의 한 종류로 분류되기도 하고 <아이언맨> 영화에서처럼 인간의 신체 능력을 확장시켜주는 파워수트 이미지로 묘사되기도 한다.
본래 외골격 로봇은 1960년 미 해군이 처음 개발한 것으로 팔에 로봇을 장착해 무거운 포탄을 쉽게 옮기기 위함이었다. 지금도 군인의 작전 수행은 물론 공장 노동자들이 무거운 것을 나르는 업무를 할 때 효율과 안전을 위해 사용된다.
2014년 프랑스 로봇기업 RB3D에서 개발한 외골격 로봇 허큘의 경우 착용하면 60kg 무게의 짐 하중이 5kg로 줄어든다. EU 7개국의 엔지니어 12명이 모여 진행한 로보메이트 프로젝트 역시 무게의 하중을 10분의 1로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
최근 몇 년새 외골격 로봇이 재활 치료용으로 사용되면서부터는 감동적인 휴먼스토리까지 쏟아지고 있다.
2014년 6월 12일 열린 브라질월드컵 개막식에서는 척수 손상 하반신 마비 장애인인 줄리아노 핀토가 외골격을 입고 시축을 하는가 하면 뇌동맥류로 보행에 장애를 가진 스티브 자바리라는 남자가 지난 9월 외골격을 입고 결혼식에서 신부 옆에 선 이야기를 미국 ABC방송이 보도하기도 했다.
외골격으로 마비됐던 부위의 감각이 살아나고 생리적, 성적 기능이 회복돼 출산을 시도하는 여성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외골격 로봇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리워크 로보틱스는 지난해 9월까지 외골격 로봇인 리워크 퍼스널을 개인에게만 총 100대 판매했는데 이렇게 팔려나간 로봇들이 모두 한때 불행했던 개인사를 극적으로 바꿔놓는 역할을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14년 리워크 로보틱스의 로봇에 대해, 2016년에는 엑소바이오닉스의 외골격 제품에 대해 시판을 승인함에 따라 재활 치료에 이들 외골격이 본격 활용되고 있는 추세다.
일본은 2015년부터 사이버다인사의 외골격 로봇 할(HAL)에 대해 처음으로 의료보험을 적용해 루게릭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보다 저렴하게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의료관련 자선단체인 스피널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에는 27만명 이상의 하반신 마비 환자가 있으며 영국과 아일랜드에 5만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수 백 만명이 외골격 로봇의 재활치료가 필요한 잠재적인 대상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외골격 로봇의 시장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업체인 ABI리서치는 외골격 로봇 시장이 2014년 6800만달러 규모에서 2025년에는 18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제까지는 하반신 마비 재활을 위한 외골격 로봇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노인들의 신체능력을 높이거나 어린이들의 뇌나 척수문제를 조기에 발견하는 예방의학으로서도 기능하고 있다.
노인들의 원활한 이동성을 지원하는 로봇
미국 스타트업인 수퍼플렉스는 최근 센서가 신체의 자세와 움직임을 추적해 노인들의 원활한 이동성을 지원하는 로봇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유럽집행위원회(EC) 공동연구개발센터(JRC)는 지난 2015년 가정에서 노인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14개의 기술 기반 선진프로젝트를 조사했는데 외골격 로봇을 그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오클라호마대학 연구진들은 인공지능(AI)과 로봇 수트를 활용해 영유아의 뇌성마비 여부를 판단하고 기어가는 법을 가르쳐 근육위축을 방지하는 SIPPC(Self-Initiated Prone Progression Crawler)를 공개했다. 몸과 머리의 수많은 센서들을 통해 영아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하고 아이의 활동에 대해 AI가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사전 예방 및 조기 치료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스페인 국립 과학연구특별위원회는 기존 외골격 로봇이 성인을 위해 제작돼 어린이들이 사용할 수 없었다고 보고 지난해 3~12세의 하체마비 아동들이 착용할 수 있는 외골격을 개발하기도 했다.
외골격 로봇 기술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생각과 안구운동만으로 마비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손 외골격 장치가 독일 튀빙겐대학병원에 의해 개발됐으며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결합해 외골격을 입은 뇌졸중 및 척수환자들의 데이터를 통신사인 보다폰의 네트워크와 연결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재활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도 등장했다.
외골격 로봇이 넘어야 할 산은 높은 가격과 활동성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난해 10월 한국기계연구원이 하지 재활 외골격 로봇인 뉴렉스를 개발해 관심을 끌었다. 이와 함께 정부가 2012년부터 의료재활로봇 보급사업을 추진되면서 관련 기술 및 시제품 개발, 임상 적용 등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물론 최근 5년간 재활로봇 전체에 투입한 예산이 40억원에 불과한 등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국립재활원 송원경 단장은 "2013년부터 재활로봇의 임상적용을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 국내 기술 수준이 크게 높아져 앞으로는 국산 재활로봇의 활용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외골격 로봇이 넘어야 할 산은 높은 가격과 활동성이다. 일본의 경우 보험이 적용되고 있지만 사이버다인의 '할'에 대해서만 해당이 되고 적용되는 대상 질환도 루게릭병 등 일부에 그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아직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수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
이런 이유로 앞서 결혼식 사연의 주인공인 스티브 자바리처럼 고펀드미나 인디고고 같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사연을 올려 모금을 받는 경우도 가끔 눈에 띈다. 하지마비 환자 27만여명 가운데 4만여명이 재향군인인 미국은 재향군인부가 장애 예비역들을 대상으로 외골격 로봇 구입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외골격 로봇이 아직은 알루미늄이나 티타늄 소재로 만들어져 무겁고 둔한 느낌을 주는데 앞으로는 섬유로 만들어진 소프트 외골격 로봇도 다수 개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조인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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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1-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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