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식감으로 잡곡밥을 먹기가 거북한 사람이라면, 앞으로는 소주를 곁들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곁들인다고 해서 식사를 하며 반주로 마신다는 뜻은 아니다. 잡곡밥을 지을 때 소량의 소주를 밥물에 섞는다는 의미다. 그렇게 섞어 밥을 지어보면 식감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국립식량과학원 측의 설명이다.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기관인 국립식량과학원은 잡곡밥을 지을 때 밥물의 10%를 주정(酒精)으로 섞으면 식감이 훨씬 부드러워지는 결과를 확보했다고 최근 발표하면서, 식감이 부드러워지는 장점 외에도 여러 기능성 성분이 함께 높아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주정이란 각종 알코올음료 속에 함유되어 있어 에탄올(ethanol)을 말한다. 소주의 경우 맥주나 와인처럼 자체적인 발효를 통해 알코올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정을 물과 함께 희석하여 만든다. 따라서 주정은 소주의 핵심 원료라 할 수 있다.
잡곡밥은 우수한 영양성분에도 불구하고 거친 식감이 단점
잡곡에는 비타민과 무기질, 그리고 식이섬유 성분 등이 쌀보다 2~3배 정도 많이 들어있고,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도 다량 함유되어 있다. 특히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먹거리로서의 중요성이 날로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우수한 영양성분에도 불구하고 잡곡밥의 거친 식감 때문에 이를 자주 해먹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사람들은 백미를 기본 주식으로 하여 밥을 짓는다.
물론 백미라고 해서 영양성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탄수화물을 비롯하여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함량이 상대적으로 잡곡에 비해 낮다는 점 때문에 백미에 잡곡을 혼합하여 먹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진은 이 같은 점에 주목했다. 잡곡의 식감을 백미 수준으로까지 올릴 수 있다면 잡곡 소비량이 지금보다 더 대량으로 늘어나면서 국민들의 건강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농촌진흥청이 본격적으로 잡곡의 식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 전만 하더라도 잡곡에 관한 연구는 주로 성분 분석이나 기능성 성분 등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잡곡의 식감을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었다.
이에 연구진은 에탄올을 이용하여 잡곡의 식감을 부드럽게 만드는 연구에 착수했고, 그 결과 식감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물론, 다양한 기능성 성분들의 함량을 증가시키는 성과까지 거둘 수 있었다.
식감은 부드러워지고 항산화 성분은 증가하고
연구진은 에탄올을 투입했을 때 나타나는 식감의 물성 변화와 기능성 성분의 함량 증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잡곡 원료들 중에서도 조와 기장, 그리고 수수와 검정콩 등을 실험 샘플로 선택했다.
우선 식감의 물성 변화 실험에서는 백미 대비 20%씩의 잡곡들을 투입한 뒤 여기에 주정을 첨가하여 밥을 지은 후 각각의 물성을 측정했다. 그 결과 경도와 씹힘성 등에 있어서 유의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국립식량과학원의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주정을 넣어 지은 잡곡밥들이 백미로 지은 밥보다 경도와 씹힘성 등에 있어서 유의적으로 더 낮은 경향을 보였다”라고 전하며 “가정에서 잡곡밥을 지을 때 2인 기준으로 밥물에 소주 약 두 잔을 첨가하면 잡곡의 경도가 낮아져 훨씬 부드러운 잡곡밥 을 맛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능성 성분의 함량에 대한 결과도 유사하다. 알코올 성분이 새로운 폴리페놀 성분의 생성을 촉진시켜 잡곡밥의 항산화 성분 함량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폴리페놀(polyphenol)은 우리 몸에 들어있는 활성산소를 해가 없는 물질로 바꿔주는 항(抗)산화물질 중 하나다.
국립식량과학원의 관계자는 “에탄올을 첨가하여 밥을 지었을 때 항산화 성분 함량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언급하며 “이는 앞으로 밥을 짓는 방법에 따른 잡곡밥의 생리활성 연구에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번 연구의 실무를 담당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수확후이용과의 우관식 농업연구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알코올로 잡곡의 식감을 부드럽게 만드는 연구 주제가 흥미롭다.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을 소개해 달라
과거 수수를 이용하여 항산화 물질의 증진 효과를 규명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사용했던 용제가 바로 알코올이었다. 그런데 실험 후 지어진 밥을 먹어보니 식감이 물로만 지은 밥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후 연구방향은 기능성 성분의 함량 증가 여부에 식감의 변화가 더해지는 이원화 형태로 추진됐다. 다시 말해 기능성알코올이 부드러운 식감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기능성 성분의 함량 증가 요인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우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 향후 활용방안을 간단히 언급해 달라
이번에 소개된 방법을 이용하면 먹기도 편하고 건강에도 좋은 잡곡밥을 지을 수 있다. 쌀을 비롯하여 잡곡류에 알코올을 첨가하면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의 개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간혹 알코올을 넣으면 취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알코올은 밥이 지어지기 전에 모두 휘발되어 날라가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풍미가 좋아질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밥이 딱딱하게 굳는 현상도 늦출 수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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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11-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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