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우주의 역사를 바꾼 천재들의 로켓

[기상천외한 과학자들의 대결] (19) 세르게이 코롤료프와 폰 브라운

1957년 러시아(구소련)는 우주를 향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한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다. 미국은 이에 크게 자극을 받고 1969년 아폴로 11호를 발사해 인류 최초로 달 탐사에 성공한다.

인류가 우주를 향한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성공의 이면에는 냉전시대 천재 우주 과학자들의 공로가 숨어 있다.

러시아에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한 천재 과학자 세르게이 코롤료프(Sergei Pavlovich Korolyov, 1907~1966)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아폴로 11호의 로켓 추진체를 만든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1912~1977)이 있었다.

수감자에서 우주의 아버지로세르게이 코롤료프’

러시아(구소련)는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며 우주 개발 역사의 첫 장을 장식했다.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모습. ⓒ 위키미디어

1957년 10월 4일 금요일 밤에 발사된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외부에는 라디오 송신 장치와 4개의 안테나가 달렸다. 스푸트니크 1호는 ‘R-7’ 로켓에 실려 지구에 신호를 보내왔다. 한 달 뒤에는 2호가 발사됐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플랜’은 냉전 시대 당시 국가 위상이 걸린 중대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과학자가 바로 세르게이 코롤료프다. 그는 러시아 최고 로켓 공학자로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와 세계 최초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하는 등 인류 우주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 러시아의 우주공학자인 세르게이 코롤료프 ⓒ 김은영/ ScienceTimes

‘우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세르게이 코롤료프지만 그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 그는 스탈린 대 숙청 기간 동안 동료의 고발로 10년 형을 선고받고 수용소에서 곤욕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소련은 그를 수용소에서 빼내 로켓 개발 프로그램에 합류시킨다.

당시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엄청난 국력 소모를 한 탓에 독일과 미국에 비해 무기 개발이 상당히 뒤처져 있었다. 소련은 먼저 원자폭탄과 폭격기, 핵폭탄 운송수단인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로 한다.

소련이 욕심낸 것은 독일이 전쟁 중 만든 탄도미사일 ‘V2’와 이를 만든 과학자들이었다. 소련은 서둘러 독일 과학자들을 포섭하는 한편 세르게이 코롤료프를 합류시켜 V2를 기반으로 한 신형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을 설계한다.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바로 V2를 기반으로 만든 신형 ICBM ‘R-7 세묘르카’에 실려 발사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폴로 11호 발사 성공시킨 ‘베르너 폰 브라운’

1958년 1월 31일에는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천재 로켓 공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의 솜씨가 발휘된 결과였다.

아폴로 11호 발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 ⓒ 위키미디어

당시 미국은 러시아가 미국보다 인공위성을 먼저 발사해 성공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즉시 서둘러 전열을 가다듬고 인공위성 발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폰 브라운은 로켓 ‘주노-1’을 개발해 러시아에 이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다.

폰 브라운은 독일 패망 후 미국에 투항해 미국 육군 소속으로 로켓 개발 업무에 참여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설립된 후에는 조지 마셜 우주비행 센터의 감독관으로 추대된다. 그는 아폴로 계획에 추진체로 사용된 로켓인 새턴 V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인류를 최초로 달에 보낸 아폴로 11호 발사를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린 새턴 V 1단 엔진 앞에 서있는 폰 브라운. ⓒ 위키미디어

폰 브라운은 미국의 우주계획에 가장 큰 기틀을 마련한 로켓 공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살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었다. 그는 소련과 미국 모두 욕심내던 독일의 탄도미사일 V2를 개발한 천재 공학자였다.

때문에 그의 업적은 과거 전력으로 종종 논란이 됐다. 그가 개발한 로켓이 독일 나치의 비밀병기로 제작되어 살상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속해있던 그가 영국 폭격을 위해 만든 탄도미사일 ‘V2(Vengeance Weapon)’는 뛰어난 파괴력으로 영국에 큰 피해를 남겼다. 영국에서는 V2를 ‘악마의 사자’라고 부를 정도로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나치 전력은 천재적인 로켓 개발 능력으로 상쇄됐다. 브라운은 과거 전력을 세탁하고 1950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1970년에는 미 NASA 본부 부책임자로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미국의 우주계획에 동참했던 가장 뛰어난 로켓 공학자로 이름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에서 수많은 살생의 도구가 됐던 독일의 로켓 기술이 인류의 우주개발 시기를 앞당겼다. 기술이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살상 미사일이 될 수도 있고 인류의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 우주 로켓이 되기도 한다. 천재들이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역사가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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