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 ‘원조 맛집(?)’ 논란의 중심에 서다

[기상천외한 과학자들의 대결] (5) 미적분의 천재들

세계는 넓고 천재는 많다. 여기에 미적분학을 만든 천재들을 빼놓을 수 없다. ‘미적분(calculus)’은 고등학교 수학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인 만큼 수험생들에게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누가 이런 걸 만든 거야?’라며 원망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 미적분학을 만든 원조는 과연 누구일까? 천재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lsaac Newton, 1643~1727)과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수학자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서로 자신이 미적분학의 ‘원조 맛집(?)’이라고 주장했다.

미분과 적분을 연관시키는 정리 중 미적분학의 제 2기본 정리. ⓒ 위키피디아

미적분학의 원조는 누구인가

‘미적분’은 알다시피 미분과 적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미분은 함수의 순간 변화율을 구하는 연산이다. 적분은 곡면 또는 좌표 축으로 둘러싸인 영역의 면적을 계산하는 학문이다. 미분을 설명하다 보면 적분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미분과 적분은 서로를 거꾸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때문에 미분과 적분은 다르지만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뉴턴은 영국에서, 라이프니츠는 독일에서 각각 자신이 궁금해하던 것을 증명해냈다. ⓒ 김은영/ ScienceTimes

미분의 개념은 뉴턴이 23세인 1665년에 창안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뉴턴은 이를 출판하지 않았다. 반면 라이프니츠는 1673~1676년 사이에 미적분을 정리하고 출판까지 진행했다.

뉴턴이 미적분을 고안했던 시기는 1665년. 당시 유럽 전역은 흑사병이 창궐했던 시기였다. 뉴턴은 집에서 칩거하며 연구에 몰두했다. 그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 또한 이 시기에 발견된 것이다.

뉴턴은 미적분학을 물리학에서 사용하기 위해 고안했다. 그는 역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운동하는 물체의 순간 변화율인 가속도를 보다 쉽게 알기 위해 미적분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뉴턴의 ‘사과’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사과가 운동하는 속도와 가속도를 표현한 새로운 계산법인 미분법을 발견했고 역함수인 적분법도 연구해 냈다.

사실 뉴턴의 미적분 개념은 프랑스의 수학자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해석 기하학에서 시작됐다. 흔히 데카르트 하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언을 더 잘 알려진 철학자로 생각하지만 데카르트는 미적분학의 개념을 만든 수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파리의 좌표를 표시하기 위해 x, y 좌표를 고안했다. 데카르트의 좌표 개념은 물체의 이동과 미적분에 활용되면서 오늘날 미적분의 개념을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다방면에 두각을 보인 뛰어난 수학자라이프니츠’

당시나 지금이나 유명한 뉴턴에 비해 라이프니츠의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천재 과학자 뉴턴 못지않은 ‘팔방미인 천재’다. 라이프니츠는 과학, 수학, 외교, 철학, 정치 등 다방면에서 천재적인 성과를 보였다.

라이프니츠는 과학, 수학, 외교, 철학, 정치 등 다방면에서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냈다. ⓒ 위키피디아

라이프니츠는 교수인 아버지를 두고 어릴 때부터 영재의 두각을 나타냈다. 철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10대에 철학 박사를 딸 정도였다. 훗날 그는 컴퓨터의 기본이 되는 이진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지만 라이프니츠가 가장 큰 업적을 나타낸 분야는 수학이다. 그는 삼각함수, 로그 함수, 위상 기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미적분’의 발견이다.

뉴턴의 미적분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은 같은 개념이지만 조금 다르다. 뉴턴은 물리학에서의 미적분을, 라이프니츠는 순수 수학에서 활용하기 위해 미적분학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적분학은 이렇게 서로 다른 시기에 알려졌지만 당시 뉴턴은 영국에서, 라이프니츠는 독일에서 서로 활동하고 있던 터라 처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논쟁은 다른 학자들이 제기하면서 심화됐다. 사건의 발단은 영국인 수학자 존 윌리스가 ‘독일인 수학자인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업적을 가로챈다’고 생각하면서 시작됐다.

미적분 논쟁은 독일과 영국 수학자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불이 붙었다. 영국 수학계는 미적분이 영국의 자랑스러운 과학자 ‘뉴턴’의 성과라고 주장했다. 반면 독일 수학계에서는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고안하고 뉴턴은 당시 비슷한 아이디어를 제시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지금 미적분의 원조는 누구라고 알려져 있을까? 현재 미적분은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각각 발견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수학의 미적분학은 라이프니츠가 고안한 미적분이다. 라이프니츠는 기울기가 주어진 직선을 접선으로 하는 곡선을 구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미적분에서 사용하는 기호를 고안해냈다. 우리가 수학적으로 보다 보기 쉽게 미적분학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다 라이프니츠 덕분(?)이다.

어찌 보면 천재들의 생각은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뉴턴은 영국에서 라이프니츠는 독일에서 각각 자신이 궁금해하던 것을 증명해냈다. 그리고 이들이 데카르트의 좌표에서 고안해낸 미적분학이 인류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 원조 논쟁으로 인해 인류의 문명은 한 걸음 앞으로 진일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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