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생태계 내에서, 전체 생물의 개체 수에 큰 영향을 미침으로써 생태계의 균형과 안정에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물 종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생물 종을 핵심종(Keystone species) 또는 쐐기종이라 지칭한다. 예를 들어 최상위 포식자가 먹잇감인 동물들을 잡아먹어서 영양단계 연쇄반응(Trophic cascade)을 통한 하향조절에 의해 생물들의 개체 수가 적절히 조절될 경우, 최상위 포식자가 바로 핵심종이 된다.
그러나 생태계의 핵심종이 항상 최상위 포식자인 것은 아니며, 때로는 초식동물 등이 핵심종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설령 특정 생물들이 멸종하더라도 그것이 속했던 생태계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만약 핵심종이 자취를 감췄을 때는 생태계 전체가 조화를 잃고 큰 혼란에 빠질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핵심종과 생태계의 관계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한 과학자로는 로버트 페인(Robert Paine; 1933-2016)이 꼽힌다. 해양 생태학자였던 그는 1960년대에 해안가에서 생태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험 등을 통하여 핵심종의 역할을 규명해냈다. 로버트 페인은 이전에는 관찰과 분석의 학문으로만 여겨졌던 생태학을 실험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인물로 평가된다.
로버트 페인 교수가 핵심종에 대한 첫 실험을 한 불가사리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하버드 대학에서 동물학을 공부했던 로버트 페인은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고생물학을 전공했으나, 이후 주된 관심 분야를 생태학에 돌리게 되었다. 워싱턴 대학 생물학 교수로 임용된 그는 생태계의 균형 요인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1963년부터 워싱턴 주 올림픽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한 무인도에서 비교적 간단한 실험을 시작하였다. 밀물 때에만 물이 차는 웅덩이는 해조류와 따개비, 말미잘, 조개류 등 다양한 해양생물들로 구성되는 나름의 생태계가 구성되는데, 페인 교수는 쇠막대기로 불가사리를 제거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했던 것이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나자 그 물웅덩이에는 불가사리가 주로 잡아먹는 홍합 등이 크게 번식하면서, 물웅덩이에 서식하던 전체 생물종 수가 크게 줄어드는 등 생태계 전체가 훼손되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페인 교수는 물웅덩이에서 불가사리가 아닌 다른 생물들을 제거하는 실험도 해 보았지만, 이 경우에는 생태계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즉 불가사리만이 물웅덩이 생태계에서 핵심종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페인 교수는 이 실험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였고 이후 후속 논문들에서 핵심종의 역할과 영양단계 연쇄반응의 개념 등을 체계화하면서, 생태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또한 제자들 및 페인에게서 영향을 받은 다른 과학자들이 비슷한 실험결과를 속속 도출하면서, 그의 주장은 생태학에서 주변이 아닌 주류적인 이론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모피를 노린 사냥꾼에 의해 한때 멸종의 위기를 맞았던 해달 ⓒ Mike Baird
페인의 이론을 실증한 또 다른 경우로는 1970년대 초 알래스카 암치트카(Amchitka)섬의 해달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모피를 노린 사냥꾼들에 의해 한때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해달은 이후 국제적으로 보호되면서 개체 수를 회복하여 그 일대에도 퍼져 나아가고 있었다. 페인의 조언을 듣고 암치트카섬의 다시마 숲에 해달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했던 한 젊은 생물학자 지망생은, 해달의 개체 수가 미처 회복되지 않은 외딴 섬에서는 너무 많은 성게들로 인하여 바다 전체가 폐허가 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다시마 등 해조류를 먹고 사는 성게들을 해달이 잡아먹음으로써 개체 수가 적절히 조절되었는데, 해달이 사라진 생태계에서는 과도하게 번식한 성게들에 의해 다시마 숲이 크게 훼손되고 도미노 효과에 의해 다른 생물들마저 자취를 감추는 생태계 파괴 현상이 초래된 것이다. 따라서 암치트카섬의 생태계에서 핵심종은 바로 해달이었음이 밝혀진 것이고, 이로써 핵심종에 의한 영양단계 연쇄반응의 매커니즘이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해달이 핵심종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발견된 알래스카의 암치트카섬 ⓒ 위키미디어
또한, 바다의 생태계에서만 핵심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물이나 육지의 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핵심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속속 입증되게 되었다. 1983년에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강과 개울에서 한 담수 생태학자가 포식자인 배스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보았다. 그 결과 배스를 제거한 물웅덩이에서는 피라미가 식물을 너무 많이 먹어 치워서 생태계가 망가진 반면에, 배스가 있던 곳에서는 생태계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핵심종인 배스의 역할은 피라미들을 잡아먹어서 개체 수를 조절하는 데에 그친 것뿐 아니라, 피라미들에게 겁을 주어서 식물을 제대로 먹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곳으로 내쫓는 ‘공포의 경관(Landscape of fear)’을 조성했다.
그리고 육지에서도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생태계 전체가 크게 훼손되고 혼란에 빠지는 경우로서, 지난 글에서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를 예로 들어 설명한 바 있다. 비슷한 일이 1990년대 남미의 베네수엘라에서도 발생했는데, 수력발전용 댐을 건설하면서 열대 정글지역이었던 곳이 침수되었고 지대가 높은 가운데에는 섬이 생기게 되었다.
작은 섬에는 재규어와 같은 맹수가 먹이로 삼을 만한 동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후 굶주림에 시달리던 재규어는 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몇 년 후에 최상위 포식자이자 핵심종이었던 재규어가 사라진 섬을 방문한 생태학자들은, 마치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숲이 황폐화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회복 성공 사례에 힘입어, 여러 가지 이유로 생태계가 크게 훼손된 지역에 최상위 포식자와 같은 핵심종을 일부러 투입하여 생태계 복원을 도모하는 프로젝트가 최근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다음 글에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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