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가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국제대회에 나가는 것을 말한다면, ‘물리 올림피아드 참가학생’도 분명 국가대표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치열한 선발대회를 치뤘고, 합숙훈련을 했으며, 세계 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땄다.
지난 2015년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46회 ‘물리올림피아드’에 우리나라 고등학생 5명이 참가했다. 그리고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를 땄다. 스포츠 대회는 종목별로 금메달이 1개 뿐이지만, 물리 올림피아드는 약 9%(382명 중 36명)안에 들면 다 금메달을 준다.
공식적으로 국가별 순위는 매기지 않지만, 국내에서는 ‘2등을 했다’고 생각한다. 중국팀은 5명이 전부 금메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도 뭄바이 대회에서 금4, 은1 획득
2015년 참가자들은 고등학교 졸업후 모두 이공계로 진학했다. 물리천문학부에 4명, 전기정보학부에 1명 등 모두 서울대를 선택했다.
대학생활 2년차에 들어간 이들은 최근 5명 중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건물 가운에 있는 커피숍에 함께 한 하현수, 김태형, 김준휘, 최서언 등은 ‘물리 올림피아드 참가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과학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하현수(물리천문학부 2년) 군은 “우리는 대회 전날까지 공부했는데, 외국 친구들은 수영하고 있더라”고 회상했다. 성적 보다 중요한 것이 물리 자체를 즐기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과 어울린 경험이 매우 소중했다.
하 군은 “요즘 과학도 국제협업이 중요하지 않느냐. 경쟁자라는 느낌 보다 동반자로 생각하면서 함께 배우고 즐기며 사람과 소통한 것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열흘간의 일정 중 시험은 이틀뿐이고, 나머지는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관광지도 들르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국제친선을 쌓았다.
대회는 실험과 이론으로 치러졌다. 실험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학생들은 말했다. “왓슨과 크릭이 이중나선을 발견할 때, 엑스선 회절무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책에서 읽었는데, 그것을 모델로 하는 실험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또 한 문제는 물 위에서 잔잔하게 파동이 일어나는 표면장력파를 수치로 계산하는 문제였다.
김준휘(물리천문학부 1학년)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물리법칙을 수학으로 통합하는 ‘아름다움’에 꽂혀 이론물리에 빠졌다”고 한다. 그는 "올림피아드 대회를 준비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접하게 됐고, 이론과 실험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며 물리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군은 ‘융합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종합대학을 선택했고, 물리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시각예술, 인지과학 등에도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서우(전기정보공학부 2년)군은 "물리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올림피아드를 자극제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최 군은 "막상 기회가 생겨서 국제대회 나가보니 실험문제를 풀어보는 압박감도 있었지만, 해외친구들과 교류하면서 더 넓은 세계로 나가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고 올림피아드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하현수 군은 올림피아드 지도교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앞서 올림피아드를 경험한 선배들도 수시로 와서 안내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하 군은 "선배와 교수, 그리고 외국 친구까지 올림피아드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테니, 올림피아드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연결해준 것이 고마웠다”고 말했다.
교수 배출에 국제논문작성 등 올림피아드 효과
올림피아드 대표는 전국에서 우선 100명을 뽑는다. 전국 과학고 학생들이 대거 참여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통신교육을 한 다음, 2주 간의 겨울학교에서 강의와 문제풀이 및 면접을 거쳐 13명으로 좁힌 뒤, 최종 대표로 선발된 5명은 서울대학교에서 한 달 간 합숙훈련을 한다. 명실상부한 물리 고등학생 국가대표인 셈이다.
이들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카자흐스탄 학생 5명이 겨울합숙훈련에 동참한 것이다. 이중엔 물리 뿐 아니라, 생물 천문학 등 다른 과목 올림피아드도 참가하는 과학천재 돌레 쿠르만타예프(Daulet Kurmantayev)가 있었다.
인도 대회 조직위에서 팀을 짤 때 알파벳 순서로 그룹을 짜다 보니, K로 시작하는 한국(Korea)과 카자흐스탄(Kazakhstan)은 자연스럽게 한 그룹으로 묶였다. 인도에서 10일 동안 어울리고 합숙도 같이 한 이 멀티 사이언티스트와의 관계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카이스트 학생으로 들어와 대전에서 공부하기 때문이다.
올림피아드는 세계적인 학생과학자 대회로 자리잡았다. 수학 올림피아드 출신 중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경력자도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만 신용일 교수, 박철환 교수 등 2명이 물리 올림피아드 대표 출신이다. 대전과학고 시절 2004년 물리올림피아드에 참가한 최순원(31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 연구원)씨 등이 쓴 논문 ‘시간에 관한 대칭성을 깨뜨리는 방법’은 3월초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네이처에 실려 ‘올림피아드 효과’를 입증하기도 했다.
“올림피아드로 받은 수혜를 교육봉사나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나눠주고 싶고”(김준휘) “대학 와서 집합론 해석학을 배워보니 내 지식에 빈틈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김태형) “다양한 공부를 더 해 보고 구체적인 물리분야를 정하겠다”(하현수)고 밝혔다. 학생들은 ‘스펙 쌓으려고’ ‘의대 진학하려고’ 올림피아드에 참가한다는 일부 시선은 절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수학이나 물리는 정말 아름다운 학문이어서, 죽을 때까지 평생 연구해도 재미있을 놀이로 생각해요. 다른 것을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최 군은 “올림피아드에도 기초과학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7-03-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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