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안 여섯 명의 클론이 깨어나다

과학 서평 / 식스 웨이크

인생이 한 번 뿐이 아니라면 어떨까? 죽고 난 후 언제나 이십 대의 젊은 육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언제나 다음 기회가 있는 삶,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다.

‘식스 웨이크’ 속 여섯 명의 클론 승무원들은 그 가슴 벅찬 일의 수혜자이다. 2493년 어느 날, 그들은 우주선 도르미레호의 재생탱크 안에서 재생된다.

소설 속 클론들의 재생은 다른 과학소설 속 클론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의 재생은 동시에 두 존재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의 재생은 반드시 사망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며, 재생 시 반드시 이전 생의 기억을 마인드맵에 담아 계승한다. 오늘날의 동물 복제가 전혀 기억을 계승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진화된 형태의 복제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인간의 새로운 생에 대한 벅찬 기대는 시작부터 무너진다. 이제 막 깨어난 승무원들의 눈앞엔 유혈과 시체가 떠다니고, 각종 시스템의 오류가 난무한다. 그들 중 일부는 사망하지 않았음에도 재생되었고, 백업된 마인드맵은 오류를 일으켜 그들은 이전 생을 기억하지 못하고 우주선은 정해진 항로를 이탈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 원인은 우주선 전체를 관장하는 AI시스템이 그 기능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찌 된 일인지 음식을 만들어내야 할 음식 인쇄기마저 독을 토해내며 제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소설은 시작부터 과학기술의 디스토피아적 상황으로 또 한 번 생에 대한 인간의 환상에 제동을 걸며 과학기술 개발에 대한 부정적 사유를 던진다.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여러 줄기로 뻗어가는 서사

재생 전 이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것을 동력으로 소설은 여러 줄기의 서사를 뻗쳐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경우, 서사의 구조가 단순한 구조에 비해 초반 몰입이 어려울 수 있는 반면, 소설의 말미로 향해가며 독자에게 한 순간의 짜릿함을 선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 백 페이지가 넘도록 과거와 현재, 인물과 인물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던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서 딱 맞춰진 이야기 퍼즐을 제시한다.

이렇듯 단순하지 않은 서사의 구조와 미래 사회라는 낯선 시간·공간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치밀한 설정과 자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그 세계로 재빨리 안착시킨다.

현실과 상상 속 다양한 과학 기술 이용돼

치밀한 세계 묘사엔 다양한 과학 기술이 활용됐다. 자율주행차, 냉동 인간, 나노봇 등과 같이 쉽게 상상이 가능한 것에서부터 합성채소, 합성혈액, 음식인쇄기, 그리고 인간의 DNA를 수정하고 인간의 성격까지 개조하는 기술 까지 그 종류는 다양했다.

합성채소와 DNA수정, 그리고 성격 개조 등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과학기술이라면, 자율주행차와 나노봇, 그리고 음식 인쇄기 등은 오늘날에도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기술들이다.

자율주행차는 이미 해외와 국내에서 여러 차례 시범 운행된 바 있고, 음식 인쇄기는 지난 2016년 초콜릿 등의 디저트를 만들어내는 3D 프린터기로 소개된 바 있다.

나노봇의 등장 또한 이제 새로운 이슈거리는 아니다. 나노봇은 뇌졸중과 암치료 수술에까지 사용을 기대해 볼 단계에 이르렀고, 1일자 더월드포스트는 나노봇을 인간 뇌에 이식해 뇌와 인터넷을 연결시키는 시대를 예고하기도 했다.

합성혈액이 만들어진 것은 오래전 일이기는 하다. 1956년,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의 토머스 찬은 기증자의 혈액, 소의 혈액, 식물 및 균류에서 헤모글로빈을 추출하고 그것을 운반할 수 있는 투과성 봉투를 제작해 합성혈구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혈소판과 백혈구를 포함하고 있지 않아 연구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시각 모두 견지해

소설의 이야기는 과거로 회귀하며 200년도 더 전인 탑승 이전의 일을 그려낸다. 그 시절 속 인간은 과학기술과 함께 비틀린 얼개를 만들며 수많은 범죄자를 양산했고, 승무원 중 네 명은 범죄를 씻기 위해 도리미레호의 탑승을 택해야 했다. 그리고 그 얼개는 우주선에까지 이어져 유혈이 낭자한 재생 이전의 살인 사건을 일으켰다.

이로서 우린 시작부터 인간의 환상은 무너뜨린 과학기술에 대해 또 한 번 실망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사건의 원인이 밝혀지는 사이 시스템과 기기들이 조금씩 스스로, 혹은 사람에 의해 기능을 회복하기 시작하며 다시 새로운 희망을 일궈나간다.

작가는 이렇듯 미래의 과학기술에 대해 디스토피아적 시각과 유토피아적 시선을 모두 견지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기술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한 번 뿐인 생에 대한 풍부한 사유를 안겨준다.

팟캐스트를 통해 데뷔한 작가 무르 래퍼티

이렇듯 아직 다가오지 않은 세계에 대한 깊은 과학적 성찰로 풍부한 사유를 안겨주는 이 소설의 저자 무르 래퍼티의 데뷔 방식은 과학기술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의 데뷔는 문학상 수상이나 출판사 투고를 통해서가 아니라 팟캐스트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통해 첫 소설 ‘플레잉포킵스(Playing For Keeps)’를 발표했고 후에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그 소설을 정식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그녀는 꾸준히 단편 소설을 발표했고, 이번 작품은 장편으로서는 두 번째이다. 팟캐스트 또한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한편 충실한 묘사와 단단한 얼개, 그리고 새로운 발상으로 이루어져 풍부한 사유를 내재한 이 소설은 휴고 상과 네뷸러 상, 그리고  필립K. 딕상과 로커스상에 노미네이트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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