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의 이야기, ‘아일랜드’
2005년, 무려 18년 전에 복제인간이 상용화된 미래를 이야기했던 영화가 있다. 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거나, 실제로 본 적이 있을 만한 ‘아일랜드’라는 영화이다.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주인공들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 자신들이 복제인간임을 깨닫고, 자신들의 ‘원본’ 격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장기 이식, 출산 등의 이유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탈출하기 위한 과정들이 영화에 그려지게 된다.
영화에 나온 정도로 급진적이고 과격한 방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지만 ‘아일랜드’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그 이후 18년간 많은 생명공학자들에게 등대처럼 서 있으며 크고 작게 영감을 주었다.
건강이나 위생, 바른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생명공학 및 의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 인류의 수명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100세 시대를 넘어, 조금 과장하자면 200세 시대가 도래한다고들 한다. 200세까지 살더라도 단지 ‘사는 것’을 넘어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면서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 역시 여느 때보다 중요해진 지금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노후되거나 고장 난 장기를 교체하거나 개선시킬 수 있는 기술들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그 방식으로는 인공장기로 기존의 장기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기존 장기를 개선시킬 수 있을 만한 어떠한 보조 수단을 이용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생의 신호탄? 조직공학
이러한 방식을 총칭하는 것이 ‘생체조직공학’이다. 이는 생명과학과 공학의 개념이 합쳐지면서 탄생한 새로운 분야로, 조직을 재건하는데 근간이 되는 세포와 세포의 증식을 위한 생체재료 그리고 세포가 자랄 수 있는 미세 환경을 적절히 조작하여 원하는 기능을 가진 생체 조직으로 재생시키는 응용 학문을 의미한다.
조직공학은 생명과학과 공학의 기본 개념과 기술을 통합 응용하여 생체조직의 구조와 기능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나아가 생체조직의 대용품을 만들어 이식함으로써 우리 몸의 기능을 유지, 향상 또는 복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조직공학은 생물학적 대체물의 재생에 적용되는 학문 간 상호 협조가 필요한 분야이며 세포 생물학, 유전자 공학, 의료용 재료 등 많은 관련 연구의 발전이 이 분야 발전의 근간이 된다.
이러한 조직공학의 주요 3요소는 손상된 부위가 물리적으로 정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재생될 조직의 골격이 되는 바이오 인공지지체(스캐폴드), 손상된 조직을 재생시키기 위한 세포, 조직 재생을 촉진할 수 있는 단백질인 성장인자이다.
생체와 유사해야 하는 생체재료 기반 스캐폴드
조직공학의 3요소 중 스캐폴드는 인공장기 등을 구성하는 ‘생체재료’로서 생체적합성이 우수하여야 하고 독성이 없어야 한다. 또한 기계적, 물리적 특성 및 성형 가공성이 사용 목적 및 용도에 알맞게 요구된다. 또한 체내 물질들과의 교류를 위해 큰 표면적 및 다공성을 가져야 하며 생분해성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생체재료 기반 스캐폴드는 천연고분자재료와 합성고분자재료로 나눠진다. 천연유래고분자는 세포외기질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고, 우수한 생체 적합성을 가진다. 대표적으로 알지네이트, 콜라겐, 피브린, 키토산, 실크 등이 있다. 반면 합성고분자재료는 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분자구조와 분자량 및 생분해성을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PLGA, PLA, PGA, PCL 등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천연유래고분자인 콜라겐은 체내에 가장 흔하게 존재하는 단백질로서 피부나 인대, 힘줄 등 결합 조직을 구성하는 주요 단백질이다. 콜라겐은 천연 단백질이기에 구하기 쉽고 독성이나 염증을 유발할 확률이 낮으며 생체 내부에 존재하는 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된 후 대사 되기 때문에 생체적합성과 생체친화성이 우수하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콜라겐은 인공 피부나 치과 기자재 등의 치료제부터 식품이나 화장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으며, 최근 수십 년간 조직공학 분야에서 생체재료로 큰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콜라겐은 단백질이기 때문에 구조가 복잡하며 열에 약해 체내 삽입을 위한 고온고압 살균 시 쉽게 변성된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콜라겐은 체내에서 결합 조직의 세포외 기질(ECM: Extracellular Matrix)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세포외 기질은 조직의 내부나 세포의 외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생체고분자의 집합체로서, 세포 외부의 골격을 유지시키며 세포 지지체의 역할을 한다. 콜라겐은 세 개의 α-나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α-나선은 천 개가 넘는 -Gly-X-Y- 서열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α-나선의 종류에 따라 현재까지 29종류의 콜라겐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합성고분자재료로는 PLGA(Poly(Lactic-co-Glycolic Acid))가 있다. PGA(Polyglycolic Acid)와 PLA(Polylactic Acid)를 혼합한 재료로, 체내에서 가수분해반응에 의해 젖산과 글리코겐으로 분해된 후 생체 내 대사 작용을 통해 물과 이산화탄소라는 최종 형태로 몸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독성이 매우 낮다. PLGA의 경우에는 PLA와 PGA의 혼합 비율에 따라서 생분해 속도를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생분해성 고분자로 지지체를 제작한 후 조직 재생이 필요한 부위에 이식하면 세포가 증식해 조직이 재생되며, 이후 지지체는 체내에서 분해된다.
Well-life를 위해서, 약물전달시스템
조직공학은 인공 장기를 개발하는 방향으로도 연구가 진행되지만, 손상된 생체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재생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 앞서 기술한 생체재료와 약물 및 세포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다양한 제형으로 구조체를 제작하여, 약물을 전달하는 양상으로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의 흐름을 ‘약물전달시스템(Drug Delivery System, DDS)’이라고 한다.
약물전달시스템은 약리학적 활성을 갖는 물질을 다양한 물리화학적 기술을 이용하여 최적의 효력을 발휘하도록 세포, 조직, 장기 및 기관으로의 전달 및 방출을 제어한다. 이를 통해 기존 의약품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능 및 효과를 극대화시켜 필요한 양의 약물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제형을 설계하여 약물치료를 최적화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IT, BT, NT 등이 접목된 융합기술로, 약물전달시스템의 용도에 따라서 흡수촉진형, 약효지속형, 표적집중형, Intelligent DDS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약물을 탑재하는 고분자의 특성을 활용하여 약물전달시스템을 디자인할 수 있다. 이때 확산, 화학반응, 용매 활성 이렇게 총 3가지 원리를 활용하여 디자인이 가능하다.
먼저 확산 원리는, 약물을 고분자 내의 서로 연결된 고분자 매트릭스 안에 저장하여 시간에 의해 고분자가 분해됨에 따라 약물이 확산 전달되는 방식이다. 분자량이 수백만 달톤에 달하는 약물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약물의 크기에는 제한이 없고, 고분자 간의 공간 사이가 좁거나 구불구불하면 저장된 약물이 빠르게 방출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화학 반응은, 분해 과정에서 화학 반응이나 효소 반응이 관여하여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도록 고안된다. 대부분의 불용성 고분자는 큰 구멍이 형성되고 스펀지 같은 불안정한 구조를 형성하여, 한꺼번에 동일한 속도로 대량 침식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방출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고, 약물이 대량 방출되어 위험해질 수 있다. 이에 표면침식 등의 과정을 적용해 분해를 최적화하여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용매 활성 원리는 고분자와 화학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며 장치의 팽창이나 삼투 작용에 의해 약물 방출이 시작되는 원리를 이용하게 된다.
이러한 약물전달시스템은 하이드로겔을 통해서도 구현이 가능하다. 하이드로겔 제형은 물을 포함하고 있는 제형으로, 높은 수분 함량, 다공성 구조, 부드러운 물성, 생체 적합성 등 생체 조직과 유사한 특성들로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10여 년 전 상상력으로 시작된 복제 인간에 대한 한 영화는 생물공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고, 조직공학이라는 큰 갈래에서 생체 재료 및 약물전달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루어 냈다. 현재 약물전달시스템은 마이크로니들, 나노 입자, 패치 등 다양한 형태로 기존의 경구투여 약물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기존의 장기를 대체하거나 치료하는 인공 장기의 발전도 눈부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앞으로 더욱 눈부시게 발전하게 될 인류에게 이 기술들이 달아 줄 더욱 큰 날개를 기대해 본다.
- 삼성전자 황승현 연구원
- 저작권자 2023-12-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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