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omistic spin dynamics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한 양자 시뮬레이션 전문가 허창훈 박사는 연구석사과정으로 Ecole Polytechnique 대학원에 재학 중, 20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알랭 아스페 교수(Prof. Alain Aspect)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2022 노벨상,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인의 양자 얽힘에 관한 연구”)
허 박사는 본인 스스로 국내에서 양자 물리학을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프랑스 유학 후 오히려 양자역학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했다는 확신이 없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조금 더 생산적이고 우리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밝힌 허 박사는, 아스페 교수에게 수업을 받으면서 아스페 교수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실 분위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 배웠던 학생은 스승의 수상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이에 사이언스타임즈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스승님께서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상을 수여하심에 먼저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스승님이 노벨상이라니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실 것 같은데, 이에 대한 간단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허창훈 박사: 먼저 이 질문에 대해서 명확히 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보통 박사 과정이나 박사 후 연구를 수행했을 때 ‘제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Ecole Polytechnique 대학원 재학 중 Optique, Matiere, Plasmas에 특화된 연구석사 과정에서 운 좋게 아스페 교수로부터 수업을 받을 수 있었을 뿐입니다. DEA(Diplome d'Etudes Approfondies)라고 불리는 이 독특한 프로그램은 제가 알기로 프랑스에만 존재하는 교육과정인데, 고급 연구 석사과정(Diploma of Advanced Studies)에 해당합니다.
물리학과로 예를 들자면 박사과정 진학을 앞두고 세부 연구 분야를 미리 정해서 그 분야에 특화된 고급 수강과목을 이수하고, 연구석사 논문을 써야 학위가 수여됩니다. 고급 수강과목에는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실험 연구 프로젝트(Laboratory Research Project)가 높은 비중으로 포함되며, 양자 광학(Quantum Optics), 비선형 광학(Nonlinear Optics), 레이저 물리학(Laser Physics), 분광학(Spectroscopy) 등의 과목들을 통과해야 박사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권한을 줍니다. 아스페 교수님은 지금도 이 프로그램에서 양자광학을 가르치고 있고, 현재 박사 과정생 지도를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스페 교수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Ecole Polytechnique 대학원의 위 과정에 등록하는 방법입니다.

아스페 교수님은 사실 저를 프랑스 유학으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저는 학부과정에서 양자역학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학부 시절에 고등과학원(KIAS: Korea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양자정보과학 겨울 학교나 아시아 양자정보학회에 참석한 바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남파리 오르세 광학연구소에서 양자 역학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남파리 오르세 광학연구소가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더라도, 오르세 고체물리 연구소(Laboratoire de Physique des Solides)를 비롯해 세계 최고의 연구소들이 모여있는 파리는 여전히 물리학의 학문적 중심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당시 저희 클래스의 구성원이 9명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스페 교수를 비롯하여 프랑소와 아쉐교수(Prof. Francois Hache), 패트릭 모라 교수(Prof. Patrick Mora) 같이 프랑스 물리학계에서 중심에 서 있는 물리학자들로부터 거의 과외를 받는 것과 비슷한 특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박사 과정생이었다면 이러한 특혜를 받아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의 박사 과정은 보통 월급을 받고 일하는 전문적인(Professional) 독립 연구자로 지도교수에게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반대로 연구를 이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올해 아스페 교수님의 노벨상 수상은 전혀 놀랍지 않았습니다. 50 Most Influential Scientists Alive Today(관련 기사 바로 가기 - “50 Most Influential Scientists Alive Today”)라는 article을 보면 아스페 교수는 이미 노벨상을 받기 전부터 노벨상 수상자들보다 더 유명한,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노벨상을 받았다고 해서 교수님께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존 스튜어트 벨 박사(Dr. John Stewart Bell)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도 노벨상 수여 전에 돌아가시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Q. 허 박사님께서는 아스페 교수의 연구에 대해 익숙하실텐데, 이번 아스페 교수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허창훈 박사: 100년 전 우리는 양자역학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양자역학의 혜택을 곳곳에서 누리고 있습니다. 양자 물리학 없이는 현대 전자공학이 존재할 수 없고, 지금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레이저, 첨단 소재 개발도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양자물리학 분야는 노벨 물리학상 역사상 가장 많은 그리고 뛰어난 수상자들을 배출한 분야 중 하나로, 올해의 업적은 사실 1927년 솔베이 회의 때 모인 20세기를 빛낸 거물급 과학자들의 업적과 견줄만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래전에 이미 수상을 했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하며, 위 분야는 말 그대로 물리학의 한 지평을 연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벨상은 세계 최초의 발명 혹은 발견이어야 하며, 그 연구의 임팩트가 학문적, 나아가 산업적으로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업적이야 합니다. 올해의 업적은 양자정보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탄생시켰고, 정부 연구소, 심지어 IBM, Google, Microsoft 같은 빅테크 기업에서도 양자 정보 기술을 연구하여 차세대 컴퓨터 및 통신 기술 혁명에 적극 활용하려고 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또한, 벨 박사가 현재까지 살아있었다면 클라우저 교수, 아스페 교수와 함께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 불리는, 양자 세계에서도 가장 괴이한 현상에 대한 이론적 정리, 실험적 구현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을 것 같습니다. 벨 박사가 돌아가셨기에 양자얽힘 상태를 응용·확장하여 Quantum teleportation를 구현한, 안톤 차일링거 교수의 수상이 가능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노벨상의 업적은 지면에서 기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도 Quantum foundations을 연구하는 학자 및 전문가가 몇 분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간단하게만 기술하겠습니다.
미국의 과학사화학자인 헬리 스탭 박사(Dr. Henry Stapp)에 따르면, 과학사에서 가장 심오한 발견이 바로 Bell’s theorem이고 이에 대적할만한 것은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벨 박사의 업적은 그동안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다행히 이번 노벨상을 계기로 벨 박사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1964년 벨 교수가 “On the Einstein Podolsky Rosen paradox”라는 제목의 논문은 1972년 존 클라우저 박사, 1982년 아스페 교수, 1998년 니콜라 기샹 교수(Prof. Nicolas Gisin), 1998년 안톤 차일링거 교수등 의해 실험적으로 구현되어 발표되었습니다.
(관련 논문들 바로 가기: 벨 박사의 논문 - “On the Einstein Podolsky Rosen paradox”, 클라우저 박사의 논문 - “Experimental Test of Local Hidden-Variable Theories”, 아스페 교수의 논문 - “Experimental Test of Bell's Inequalities Using Time-Varying Analyzers”, 니콜라 기샹 교수의 논문 - “Violation of Bell Inequalities by Photons More Than 10 km Apart”, 안톤 차일링거 교수의 논문 - “Violation of Bell’s Inequality under Strict Einstein Locality Conditions”)
여러 실험 결과를 통해서 얽힌 광자 쌍이 벨 부등식을 위반함을 보여주어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비국소적 상관관계(Nonlocal interaction)가 존재한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양자물리학이 왜 비국소적인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얽힘에서 오는 비국소성은 분명 양자이론과 일치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따라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가 벌인 세기의 논쟁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양자 물리학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밝혔다는 것 자체에 학문적 의미가 큽니다. 실제로 이 현상이 현실에 활용된다면 과거 뉴턴의 운동법칙이나 맥스웰의 전자기파 발견 못지않은 우리 문명의 진보를 초래할 정도의 영향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같은 이유로 벨 부등식 실험은 지금까지도 계속 연구되고 있습니다. 2015년 델프트공대의 로날드 핸슨 교수(Prof. Ronald Hanson)은 다이아몬드 색 중심의 스핀 상태 제어를 통해 양자얽힘 현상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이며 연구 결과가 네이처지에 등재되었고, 2018년 차일링거 교수와 국제 공동팀은 퀘이사 빛을 사용하여 망원경을 통해 퀘이사의 들어오는 빛의 파장을 측정해 얽힌 광자 쌍을 측정하였고, 위 연구 결과는 Physical Review Letters에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Q. 노벨상수상자의 연구실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아스페 교수가 이끄는 연구실의 연구자유도, 토론정도, 연구실 분위기 등은 어떤가요?
허창훈 박사: 아스페 교수의 연구 그룹은 Ecole Polytechnique 캠퍼스 내 Charles Fabry 연구소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로 앞 건물엔 2007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알베르 페르 교수(Prof. Albert Fert)가 있는 CNRS/Thales 연구소가 위치해 있습니다.

아스페 교수님은 지금은 CNRS 명예 연구원(CNRS Emeritus Directeur de recherche) 자격으로 연구소에 있지만, 여전히 그룹 Head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당시 CNRS 연구원(DRCE)으로 계실 때는 동시에 직접 박사과정생의 지도까지 진행하셨는데, 2010년 이후로는 더는 박사 학생이나 박사후 연구원을 직접 지도하시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저희가 졸업할 때만해도 아스페 교수님의 실험실에는 박사과정 TO도 없었으며, 필립 그랜져(Philippe Grangier)박사가 이끄는 양자 광학 연구실나 필립 라란(Philippe Lalanne)박사의 포토닉스 연구실이 오히려 더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고로 파리에는 Charles Fabry 연구소 외에도 Laboratoire Kastler Brossel(LKB)나 Laboratoire Aime Cotton(LAC)와 같은 전 세계 최고의 양자광학 연구소가 모여있습니다.
아스페 교수님의 연구실은 예전에 벨 테스트나 단광자의 입자-파동 이중성, 존 휠러의 지연된-선택 실험 같은 양자역학의 근본에 관한 연구로 유명했습니다. 또한, 이미 노벨상을 받은 Laser cooling/Slow light/Bose-Einstein Condensate 연구에도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리고 2008년 Ultracold 원자 시스템에서 Anderson localization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이후, 지금은 Disordered quantum system이나 Out-of-equilibrium dynamics of correlated quantum system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위 연구는 현재 방상 조세(Vincent Josse) 박사가 이끌고 있습니다.
현재 아스페 교수는 Pasqal이라고 부르는 양자 시뮬레이터(Quantum Simulator)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의 공동 창립자로 계십니다.
Q. 국내에서 아스페 교수의 수업을 받아본 사람은 허 박사님이 유일한데, 아스페 교수의 어떤 학문적 성향이 노벨상수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시나요?
허창훈 박사: 아스페 교수님의 업적은 이미 1983년 박사학위 논문 1편으로 충분히 설명될 정도입니다. 위 논문이 이미 노벨상 수상의 업적이었으며, 그 이후에도 계속 원자 물리학 분야에서 굵직한 결과들을 계속 배출했습니다.

저는 교수님 자체도 학문적으로 매우 뛰어나시지만, 무엇보다 교수님의 동료 역시 ‘어벤져스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Cohen-Tannoudji, Jean Dalibard를 비롯하여 Philippe Grangier, Antoine Browaeys, Philippe Bouyer같이 매우 뛰어난 박사과정 학생들이 있었고, 지금도 Chris Westbrook 같은 뛰어난 동료들이 있습니다. 저는 위 동료들이 원자 물리학 학문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가 뛰어나면 최고의 학생, 동료들이 모이게 되는데,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수학이나 물리학을 택하는 프랑스의 교육 문화도 지금도 남파리 오르세를 물리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아스페 교수가 박사과정 학생이었을때, 제네바에 있던 벨 박사를 찾아가 논문에서 제안한 Einstein의 분리 가능성(관련 논문 바로 가기 - “Can Quantum-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을 테스트하고자 시간에 따라 변하는 편광기의 동적 원리를 가미한 실험의 계획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벨 박사는 이를 듣고, 영년직 자리가 보장되어 있냐고(“Have you a permanent position?”)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스페 교수는 자신은 그저 대학원생일 뿐이라고 대답했고, 벨 박사는 놀란 눈초리로 용감한 학생이라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벨 박사의 우려대로 박사 논문 주제 혹은 영년직 심사를 앞두고 빨리 논문 실적을 채울 수 있는 주제를 택해서 졸업하거나 영년직 자리를 보장받으려고 노력을 했을 텐데, 아스페 교수는 그만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고집스러움 그리고 그걸 믿어주고 끝까지 지원해 준 프랑스의 과학 전통과 문화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아스페 교수님은 특유의 고집스러운면 때문에 36세에 되어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남들보다 학위를 4년 정도 늦게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에 이미 ENS Cachan에서 강의 자격을 얻은 상태였습니다.
교수님의 독특한 점은 목소리가 매우 크시고, 실험 물리학자지만 이론 물리에 누구보다 친숙하신 분입니다. 학교 외에서는 파워포인트로 강의를 하시지만, 학교에서는 칠판 강의를 더 선호하십니다. 시험에서도 1:1 구두시험으로 식을 직접 유도하거나 설명하라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또한, Hanbury Brown Twiss effect, Hong-Ou-Mandel effect과 같이 그냥 교과서에서 보고 넘길 만한 아주 근본적인 물리 현상에 대해서 매우 깊이 있게 물어보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제가 교수님의 수업을 듣던 당시, 대부분의 수업에서는 프린트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위 내용은 제가 졸업 후에 한 곳에 정리되어 “Introduction to Quantum Optics: From the Semi-classical Approach to Quantized Light”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양자 광학을 전공하는 물리학도라면 어떤 책보다도 잘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다소 진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노벨상수상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고, 이미 노벨상 수준으로 올라온 국내 연구진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허박사님이 보시기에 국내 연구실이나 기업의 연구환경이 유럽과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또한, 우리나라가 학문적으로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어떤 점이 필요할까요?
허창훈 박사: 한국의 많은 석학들이 위 질문에 대부분 공통적인 대답을 하신 점이 기억납니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한국의 기초과학에 대해 문제점을 분석하는 보고서들이 매년 쏟아지고, 각종 지표(Index)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뻔한 대답이 아닌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아직 노벨과학상을 못 받느냐?”가 아닌, “왜 꼭 노벨상을 꼭 받아야 하는가?” 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한국은 일부 응용 연구에서 학문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을 따라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우리의 강점(Strength)에 집중했을 뿐입니다. 즉, 한국은 기초과학 역사가 짧고 한국 전쟁 이후 경제개발 5개년을 거쳐 제조업과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경제 기반을 잡은 나라입니다. 또한, IMF를 겪으면서도 IT 산업의 눈부신 성장을 통해 지금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이 되었고, 1인당 소득으로는 OECD 중 18위인 고소득 국가 되었습니다.
특히, 현재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전세계 1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인재들의 상당수가 첨단 산업과 관련된 반도체와 나노기술, AI/DT 같은 소위 인기 분야에 몰려있습니다.
한국은 애초부터 기초과학의 역사가 짧았고, 지금까지도 노벨상과는 거리가 있는 응용 분야에 집중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기초과학연구원(ibs)를 설립하고, 과학기술정책 패러다임을 기초과학 중심으로 전환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연구 풍토가 자리 잡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또한, 연구자가 자유롭게 사고하고 상상하며 독특한 연구를 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당장 전통 강호인 유럽이나 미국을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잘하는 특정 분야에서는 그들보다 앞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요새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 우수 연구소나 대학으로 유학을 갑니다. 따라서 학문적 대가의 그룹에서 경험을 한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생각보다 빨리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한국인 중 이미 이휘소, 강대원, 김필립 교수님 같이 아쉽게 노벨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물리학 커뮤니티에서 이미 노벨상급의 스타 과학자로 대접받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이분들이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역사에서 좋은 토대와 씨앗을 마련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과학은 정말 중요합니다. 아스페 교수는 기술 발전보다 기초과학을 훨씬 중요시했고, 가장 똑똑한 사람이 기초과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더군다나 기초과학은 장기전인지라, 당장 그 효과와 혜택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최하 10년, 20년, 50년을 내다보고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진정한 기술혁명은 바로 ‘기초과학’이기 때문입니다.
1953년 로잘린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이 X선 회절 사진에서 DNA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생명 공학(Bio Engineering)과 같은 분야는 없었을 것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1905년 Annalen der Physik에 발표한 광전 효과(Photoelectric Effect)에 관한 논문이 없었다면, 오늘날 태양전지, CMOS 이미지 센서와 같은 기술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 지인들은 저에게 기초과학의 최전선에 있던 사람이 왜 지금 한국의 기업 연구소에 있냐고 묻습니다. 저는 한국이 가장 잘 수행하는 산업에서의 대체 불가능한 역량 확보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국가의 안보와 존재감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현재 기초과학의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한국에서는 기초 연구보다 응용 연구를 해야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있는게 현실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한국에 왔으면 한국에서 관심을 두고 잘하는 분야를 하는 게 잘못된 거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다시 아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왜 노벨상을 받으려고 하는가?”라는 위 근본적 질문에서 “노벨상을 배출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초과학 연구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 연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잘푸는 똑똑한 머리 보다 학문에 대한 열정, 우직함, 그리고 무모함 등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시스템은 과감한 연구 주제와 무모한 도전에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로 보입니다. 따라서 여러모로 기초과학을 하기에 그렇게 매력적인 장소가 아닌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최근에 Deepmind의 알파폴드2나 일파제로와 같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 논문들과 기술들이 오히려 기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이 응용 분야에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이 있는 나라라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임팩트있는 발명을 수행하는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서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기업 연구소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2022년 기초과학 예산을 2조 5500억원으로 증액하면서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 연구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령인구 감소와 이공계 기피 현상이 지속되면서 이공계 분야 인력은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말 기초 과학을 하고 싶어하는 의욕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균형있는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허창훈 박사는 2006년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제5회 프랑스정부 초청 블레즈파스칼 장학생으로 Ecole Polytechnique(“X”)에서 2010년 물리학 연구석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European Commission Marie Curie 펠로우쉽 (5억 정도 규모)에 선정되어 독일의 Forschungszentrum Julich (PGI), 네덜란드 Radboud University (IMM), 그리고 프랑스 IPCMS-DMONS에서 비선형광학과 나노자성학을 접목한 이론 연구로 2015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연구소인 벨기에 IMEC 연구소와 SK-Hynix 사내 벤처기업 Alsemy 연구소장(CTO)을 거친 후 현재 SK specialty에서 시뮬레이션 리더로 재직하고 있으며 인공지능과 양자 계산을 통해 첨단 소재 개발을 가속화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김민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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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2-10-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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