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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한 객원기자
2020-06-12

“세상 지배하는 화학, 인간 욕망과도 닮은 꼴” [인터뷰]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저자 김병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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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은 전자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세상의 작동원리를 밝히는 학문입니다. 실생활 모든 것이 이와 연관돼 있죠.”

김병민 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어렸을 적 미술을 좋아해 그림을 한창 익히다가 돌연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PC 통신 초기 개발자가 됐다. 이후 화학으로 진로를 바꿔 현재는 나노물질 연구를 위한 분광학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과학 대중서를 집필한 인기 작가이자 어린 시절 소질을 살린 삽화가로서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김 교수가 최근 세 번째 저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읽는 재미와 과학적 깊이를 모두 갖춘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이다.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의 아버지’ 된 까닭

왜 하필 주기율표일까. 책의 주제를 묻는 질문에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주기율표는 전반적인 화학의 철학 자체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하철로 비유하자면 노선도라고 할 수 있죠. 처음 가는 역이라도 노선도만 있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듯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김병민 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현재는 나노물질 연구를 위한 분광학 전문가로 활동하면서도, 과학책 저술과 강연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작업을 쉬지 않고 있다. ⓒ 김청한 / Sciencetimes

그에 따르면 주기율표는 ‘세상을 만든 118개의 재료(원소)와 전자의 정보를 정리한 표’다. 원소별로 어떤 성질이 있는지,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는 주기율표가 등장한 덕분에 화학이라는 학문이 주류 과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는 설명.

특히 김 교수가 주목한 부분은 ‘주기율표의 아버지’라 불리는 과학자 멘델레예프의 생애다. 주기율표를 연구한 수많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유독 돋보인 그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멘델레예프는 다른 천재 과학자처럼 특출나게 머리가 좋거나 특별한 배경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주기율표를 연구한 가장 큰 이유도 단지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원소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였죠. 덕분에 기존에 연구하던 과학자들과 다른 시각에서 원소를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배려

1869년. 멘델레예프가 ‘원소의 성질과 원자량의 상관관계’라는 논문을 발표할 시기는 원자의 자세한 정체조차 알지 못했던 시기였다. 당시 과학자들은 질량 등 특정 원소들의 공통점과 연관성만을 좇아 원소를 분류했다고. 이는 분류되지 않은 나머지 원소들을 규명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됐다.

“이러한 분류 방식은 특히 학생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멘델레예프는 이전의 연구 관행에서 벗어나 원자량의 순서와 화학적 성질을 입체적으로 배치하는 분류 방식을 도입했죠. 논문이나 업적 자체를 목표로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진정한 스승의 자세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학문 자체를 사랑하고, 누구보다 꼼꼼하게 연구에 매진했던 멘델레예프의 자세가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해당 이야기가 담긴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역시 멘델레예프과 같은 따뜻한 배려와 꼼꼼함을 담았다는 사실.

김 교수의 세 번째 저서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은 읽는 재미와 과학적 깊이를 모두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 김청한 / Sciencetimes

책에는 알찬 콘텐츠 외적으로도 독자들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단지 책을 장식하는 본래 용도를 넘어, 다양한 주기율표의 모습과 119번째 원소에의 여정을 한눈에 정리한 띠지. 튼튼하면서도 수월하게 책을 활짝 펼칠 수 있는 제본 방식.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인용하며 우주의 역사를 설명하는 따뜻한 감성까지.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책의 1부와 2부가 각각 다른 면에서 시작한다는 점. 단순히 순서만 바꾼 것이 아니라 위아래 자체를 뒤집어 놓았다. 김 교수는 “가끔씩은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며 “그러한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화학, 세상의 지배원리이자 우리 삶의 모습”

이러한 장치들은 모두 화학이 매혹적이고 중요한 학문이란 것을 알려주기 위한 저자의 배려다. 그는 이에 대해 “화학은 전자의 학문”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세상 만물의 변화를 전자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산화작용이 그 사례로 제시됐다.

“우리가 철을 두고 보통 ‘녹이 슨다’고 표현하는 산화작용은 한 마디로 전자를 뺏기는 과정을 말합니다. 때문에 배의 표면에 아연, 마그네슘과 같은 희생양극을 붙여 전자를 대신 뺏기도록 함으로써 내식성을 강화하곤 하죠.”

김 교수는 이어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도 묵묵히 희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결국 화학은 세상을 작동시키는 전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삶과 연관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은 알찬 콘텐츠 외적으로도 독자들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1부와 2부를 서로 다른 면에서 읽도록 유도하고, 위아래를 뒤집어 놓음으로써 창의적인 발상을 유도한 것도 그중 하나다. ⓒ 김청한 / Sciencetimes

“집필과 강연 통해 세상 바꾸고파”

화학과 욕망을 결부시킨 해석도 참신하다.

“금을 만들려는 연금술만 보더라도 화학과 인류의 욕망이 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시황이 수은을 섭취한 것, 엘리자베스 여왕이 납 중독에 걸린 것 역시 수명 연장이라는 욕망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제국주의 시절 질병에 맞선 것도 영토 확장이라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류의 욕망이 없었다면 화학의 발전이 늦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미다스의 손’을 가진 미다스 왕의 능력이 실은 저주이듯, 지나친 욕망은 곧 부메랑이 돼 인류를 위협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인류는 화학의 힘으로 자연을 흉내 낼 수 있게 되면서 그 욕망에 날개를 달게 됐다”며 “얼마 전 있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전 세계 바다를 뒤덮은 플라스틱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와 자연의 미래를 위협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화학물질 자체를 배척하는 ‘노케미족’이나 ‘케모포비아’ 역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이미 화학은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적 학문이자, 세상 만물의 작동 원리를 밝히는 지적 탐구의 과정이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화학을 대중들에게 올바로 이해시키고, 그를 바탕으로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김 교수의 노력은 계속된다.

“인생에서 25년은 배움을, 25년은 사회활동을 해 왔으니 나머지 25년은 온전히 제 인생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단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보다는, 글쓰기와 강연 등을 통해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꿔보고 싶어요.”

김청한 객원기자
chkim3050@gmail.com
저작권자 2020-06-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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