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 2>가 지난 11월 말 개봉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전편 <주토피아>는 2016년 개봉 당시 전 세계 박스오피스 수익 약 10억 달러를 기록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손꼽히는 흥행작이 되었고,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도 약 471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큰 사랑을 받았고 <주토피아 2>의 누적 관객수는 현재 500만을 훌쩍 넘어섰다. 다양한 종의 동물들이 거대한 도시 주토피아에서 살아간다는 독특한 세계관과 귀엽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덕분에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 관객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이 한 도시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러한 동물들의 유토피아가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영화 속 설정들을 과학의 시선으로 살펴보자.
포식자와 피식자가 공존할 수 있을까
주토피아가 현실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포식자와 피식자가 정말 공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육식 동물이 약한 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본능이면서 자연의 법칙이지만, 의외의 상황에서는 이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사례도 관찰된다. 2015년 러시아의 한 야생공원에서는 시베리아 호랑이가 먹잇감으로 넣어준 염소를 잡아먹지 않고 오히려 친구처럼 지내 화제가 되었다. 전문가들은 당시 호랑이가 음식보다는 놀이 상대가 더 필요한 상황에서 사냥 본능을 억눌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처럼 충분한 먹이 공급과 적절한 사회적 자극이 주어질 경우 포식자의 행동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주토피아와 같은 설정이 완전히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과 늑대가 공존하며 오늘날 개로 길들여지는 과정(domestication)도 이종 간 공존의 대표적 사례이다. 수만 년 전 일부 늑대 개체가 인간 주변에서 먹이를 얻으며 살아남았고, 이 과정에서 공격성이 낮은 개체들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아 오늘날의 개로 이어졌다는 가설은 많은 행동유전학 연구로 뒷받침되고 있다. 실제로 개는 늑대보다 두려움과 공격성이 적은 대신 사람과 상호작용하려는 성향이 크며, 이런 차이는 사람과 비슷한 환경에서 길러진 개와 늑대를 비교한 실험에서도 확인되었다. 또한 최근 유전체 연구에서는 개의 특정 유전자에 구조적 변화가 생긴 것이 개의 사교적인 행동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밝혀지기도 했다. 주토피아의 육식 동물들이 온순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설정은, 이러한 길들임 과정을 극단적으로 확장한 상상이라고 볼 수 있다.
동물의 소리를 번역할 수 있다면
동물들끼리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역시 주토피아가 실현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영화에서는 모든 동물이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지만, 현실에서는 각 종이 고유한 소리와 몸짓으로 소통한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종의 동물끼리도 대화를 주고받은 과연 가능할까? 이를 위해 먼저 인간과 가장 친숙한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의 사례를 살펴보자. 오랜 세월 반려동물과 교감해온 많은 보호자들은 개가 짖는 소리나 고양이 울음소리만 듣고도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내는 소리인지를 상당히 정확하게 맞힐 수 있다고 한다. 동물이 내는 소리의 높낮이와 길이 변화가 인간 목소리의 감정 변화와 비슷한 패턴을 보이며, 우리 뇌도 그것을 어느 정도 해석해낸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더 나아가 인공지능 기술로 동물의 소리를 분석해 무슨 의미인지 분석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2024년 '행동 과정(Behavioural Processes)'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딥러닝을 이용하여 개가 짖는 소리만으로 품종과 나이, 성별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 짖는지까지 상당한 정확도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했다. 연구팀은 113마리 개로부터 녹음된 19,000여 건의 음성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이 같은 결과를 얻었는데, 이는 향후 인간과 반려동물 간 번역기 기술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부 스타트업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해석해주는 스마트폰 앱을 선보이는 등 동물의 의미 있는 소리 패턴을 탐지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주토피아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기술
다양한 동물이 모인 사회에서 또 하나의 큰 과제는 식량 문제이다. 초식동물, 잡식동물, 육식동물 할 것 없이 각자 필요한 음식과 영양소가 다르고, 무엇보다 육식동물이 이웃을 잡아먹지 않으려면 대체 식량원이 필요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 중 하나는 최근 식품과학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는 배양육 기술이다. 배양육은 동물로부터 채취한 소량의 세포를 실험실 환경에서 배양하여 만든 고기이다. 동물을 도살하지 않고도 실제 고기와 거의 동일한 영양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아직 생산 단가나 대량 생산의 어려움 등 해결할 문제가 많지만, 만약 이 기술이 보다 발달한다면 주토피아 세계의 육식 동물들도 굳이 동료시민인 초식 동물을 잡아먹지 않고 배양육 스테이크나 햄버거로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초식 동물들을 위한 도시형 농업 혁신도 필요하다. 코끼리나 소처럼 몸집이 큰 동물에서부터 토끼와 생쥐처럼 작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초식성 또는 잡식성 동물들은 크기만큼이나 먹는 식물과 그 필요량도 제각각이다. 좁은 도시에서 이들을 모두 부양하려면 빌딩 안에서 채소를 기르는 수직 농장과 같이 기존의 농업 기술을 훨씬 뛰어넘는 고밀도 농업이 요구된다. 실제로 일본의 미라이(Mirai) 그룹이 운영하는 한 실내 농장은 테니스 코트 몇 개 넓이의 공간에서 하루에 3만 개 이상의 상추를 생산해낼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을 주토피아에 적용한다면, 높은 빌딩 숲 곳곳이 동물들을 위한 먹이 생산 공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은 언제나 상상에서 출발한다
영화 <주토피아 2>가 그려낸 동물들의 유토피아적 도시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가상의 세계라고 치부되기 쉽지만, 우리가 살펴본 연구들과 과학 기술은 그 상상이 전혀 근거 없는 환상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풀기 어려운 난제들이 많지만, 과학은 항상 '만약 동물들이 모두 어우러져 살아가는 도시가 있다면 어떨까'와 같은 상상에서 출발하여 인류의 삶을 바꾸는 기술들을 만들어왔다. <주토피아>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주토피아 2>는 현실의 한계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떠올리며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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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5-12-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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