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기업들은 아이디어 창출에 목을 매고 있다. 특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절실한 IT 기업들은 실리콘밸리 등 주요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긴밀한 산·학·연 협력을 통해 인재양성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분위기다.
삼성경제연구원은 그동안 지식경제부와 공동으로 ‘IT 인재양성을 위한 대학교육의 질 개선 방안’이란 주제로 연구를 수행해왔다. 연구원은 이 보고서를 통해 대학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신선한 생각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있는 모습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카네기멜론대 ETC(Entertainment Technology Center)를 소개했다. ETC란 예술과 전산학을 결합시킨 학제를 말한다. 드라마&아트 경영학 교수였던 돈 마리넬리(Don Marinelli)와 전산학과의 랜디 파우치(Randy Pausch) 교수가 창립해 1998년부터 본교인 피츠버그 캠퍼스에서 그 교과과정을 시작했다.
교수는 프로듀서, 학생은 실무자 역할
2~4학기로 구성된 ECT는 피츠버그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 호주, 멕시코, 중국, 일본, 유럽 등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글로벌 석사과정이다. 전산, 미술,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전공지식을 갖춘 학생들이 모여 강의가 아닌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팀별로 작업을 하고 있다.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모인 만큼 하는 일도 다채롭다. 예를 들어 비주얼 스토리(Visual Story) 수업은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영화를 구현하는 것을 가르친다. 전통적인 영화에 대한 교육 뿐 아니라 배우와 관객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개념을 동시에 교육하고 있다.
이 과정에 처음 들어온 학생들은 첫 학기에 기본 과정(Fundamental ETC)으로 뉴욕 뮤지엄, 라스베가스 카지오, 바하마 섬 등의 현장 학습을 2차례 하게 된다. 2학기가 되면 전 세계 캠퍼스 중 하나를 선정해 그곳을 방문한다. 실리콘밸리 캠퍼스에서는 지역 주요 기업인들을 초청, 학생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ETC 과정의 수업방식은 더욱 흥미롭다. 매주 한 번씩 모여 학생들이 작업한 내용을 발표하고, 교수와 다른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는 방식이다. 교수는 프로듀서 역할을 하고, 학생들은 실무자가 되는 식이다.
기업들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과제들을 제안하고 있다. 일반 프로젝트처럼 학생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다양한 전공들이 융합된 연구팀을 구성, 지금까지 구현하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적으로 시도해봐야 한다.
모든 프로젝트들이 학생 우호적이다. 기업 측에서는 학생들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할 뿐 계약과정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의한 창작물에 대해 지적재산권 역시 학생들이 갖게 되며, 후원 기업은 단지 후원한 프로젝트를 선전할 권리만을 갖게 된다.
최근 한국의 인터넷업체는 학생들에게 소셜게임을, 중국 기업은 3D TV를 활용한 3D게임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많은 기업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는 만큼 대다수 학생들은 게임, 영화, 테마파크, 박물관, IT 등의 기업들로 진출하고 있다. 박사과정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300명의 인재들이 연간 300억 원 집행
MIT 미디어랩에는 교수 30여 명, 석·박사 150여명, 학부생 100여 명 등 약 300여 명의 인재가 모여 있는 인재 풀이다. 여기에 산업체에서 보낸 방문연구원(affiliates)이 10여 명 상주해 연구개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마디로 다양한 전공 분야 인재들이 모여 혁신적인 콘셉트를 개발해 기업에게 미래 신사업의 영감을 불어넣는 싱크탱크다. 300여명의 인재들은 매년 300억 원의 연구예산을 집행하면서 새로운 발상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MIT 미디어랩이 하고 있는 일은 새로운 기술연구보다는 새로운 콘셉트를 개발하는 일이다. 요즈음 새로운 기술이 도처에서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요소 기술은 가져다 쓰면 된다는 판단이다. 기술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콘셉트를 먼저 고민한 후 필요한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MIT 미디어랩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다양한 전공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지식들을 상호 교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MIT의 타 학과 학생들도 미디어랩 교수를 지도교수로 삼아 학제간 연구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스탠퍼드대학교 전산학과(CS)의 교육 목표는 프로그래머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분야 리더를 양성하는 일이다. 연구 부분이든 산업 부문이든지 오래 지속되는 기술을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로서의 자질을 양성하자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교과과정인 실용 기술(fundamental technology)보다는 기술을 떠 바치는 근본 개념(fundamental principles)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바 프로그래밍과 같은 실용적인 수업을 한다면 언어 자체의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상위 수준의 개념과 구조를 이해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탠포드 전산학과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생들은 대학원보다 산업 쪽에 더 많이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0% 정도가 석사과정에 진학하고, 졸업생의 60~70%는 곧바로 IT기업이나 IT를 활용하는 기업에 입사하고 있다.
현직 대학교수의 산업체 근무 권장해
학교가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만큼 학생들이 학부 때부터 다양한 인턴십을 경험할 기회가 많, 인턴십을 통해 기업으로부터 좋은 조건의 취업 제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 중에 산업체 출신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 교수들은 산업체에서의 경험을 자신의 연구와 접목시켜 또 다른 벤처를 창업하는 등의 방식으로 학생들의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UC버클리의 전기·전자·전산학부(EECS)는 전자공학과의 전산학과를 결합한 것이다. 이학부와 공학부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온 프로그램을 통합해 공대(College of Engineering)에 소속시켰다.
학생들은 전자,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시스템, 컴퓨터 시스템, 컴퓨터 사이언스, 교양(general) 등 5가지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현재 약 1천600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UC버클리는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교과과정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학생들의 관심에 맞춘 샘플 교과과정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학생들은 매년 지도교수를 만나 학교의 전반적인 의무교육 과정의 틀 안에서 졸업 후 진로에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UC버클리 교수의 80% 이상이 산업체, 또는 컨설팅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학 당국은 교수가 일주일에 하루 씩 기업 컨설팅을 수행하도록 장려하고 있으며, 산업체 근무를 위해 1~2년간의 휴직도 허용하고 있다.
산업체와 교수들과의 끈끈한 관계는 대다수 학생들이 인턴십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학부생의 경우 월 3천~5천 달러, 석·박사 과정에 있는 대학원생의 경우 구글은 월 7천 달러까지 지급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3개월씩 근무경험을 쌓고 있다.
-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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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8-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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