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의 행동이 피포식자 표현형에 자연선택을 유도하는 것은 다윈의 진화론 영역에 들어간다. 최근 중국 전통 의학에 사용되는 식물이 사람의 눈에 덜 띄는 보호색으로 진화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국과학원과 영국 엑시터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커렌트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서 “약용식물인 사사패모(학명 Fritillaria delavayi)가 인간의 채집 활동으로 위장색을 띠는 진화가 일어난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효과 및 가격 높아 채집 횟수 증가
백합과 식물인 사사패모는 37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분포하는 다년생 식물로 중국에서는 형두안 산맥(Hengduan mountain)에서 서식하고 있다. 성체는 3개 이상의 잎을 갖고, 발아 후 5년이 지나야 매년 개체당 하나의 꽃과 작은 비늘줄기를 만들어낸다.
이 식물은 항염, 항암에 효과 있는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있고, 심혈관과 호흡기 계통 질환에 효과가 높아 오랜 시간에 걸쳐 약용식물로 활용해 왔다. 약효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물을 채집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높은 약리 효과로 약재시장에선 kg당 3200위안(한화 약 53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연구진은 사사패모가 강한 선택적 압력을 받아 위장색을 가지며 진화했을 가능성을 추정하고, 5년간 사사패모 서식지에서 초식동물의 흔적을 찾았다. 쿤밍 식물연구소 양 니우 박사는 “우리가 연구한 사사패모 식물이 보호색을 가진 이유를 초식동물에 두었지만, 그런 동물은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사사패모를 섭취하는 초식동물이 보고된 사례도 없었다.
인간의 채집활동···색 표현형에 영향
위장 색상의 차이는 사람이 식물을 발견하는 확률과 관련이 있다. 연구진은 정량화한 결과를 얻기 위해 산맥에서 자생하는 서로 다른 색을 지닌 8개 개체군과 주변 암석의 색을 측정했다.

산맥에 서식하는 사사패모는 회색, 녹색, 갈색 등 다양한 잎색을 띠고 있다. 회색과 갈색 잎은 주변 암석 색과 비슷해 발견하기 어렵지만, 녹색 잎은 눈에 확연히 띈다. 식물이 주변 배경색과 일치할수록 사람은 식물을 발견하기 어려워지고 이것은 채집 횟수를 결정하게 한다.
연구진은 채집 난이도. 즉, 채집하는 데 드는 시간과 색과의 관계를 조사하니 채집이 쉬운 위치의 식물이 주변과 비슷한 색으로 위장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온라인 과학실험인 ‘사사패모 찾기’를 개발해 실험 참여자가 14장의 사진에서 위장색을 지닌 사사패모를 얼마나 빨리 찾는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위장 효과가 좋을수록 사사패모 위치를 찾는 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
사사패모가 2000년 이상 한약으로 사용되어 채집이 많아진 것을 고려하면 인간이 사사패모의 색 표현형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인간이 식물의 표현형에 영향을 미친 사례는 몇몇 있다. 히말라야 등의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면두설련화(학명 Saussurea laniceps)가 많은 채집으로 식물 높이가 왜소한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캐나다 큰뿔양(학명 Ovis canadensis)은 인간의 사냥으로 뿔 크기가 감소했다.
엑시터대학의 생태보존센터 마틴 스티븐슨 교수는 “인간이 야생 식물의 색상에 직접적이고 극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며 “많은 식물이 초식동물로부터 위장을 통해 숨지만, 여기에서는 인간의 채집활동을 피하려고 식물 스스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과학자들은 인간이 생물종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야생에서 동식물 사냥과 채집활동이 부정적인 진화적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진화를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 야생에서 선호하는 표현형을 제거해 자연생태적인 생산성을 줄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쿤밍 식물연구소 항선 교수는 “상업적인 수확이 자연의 많은 압력보다 훨씬 강력하게 작동한다”고 말했다.
- 정승환 객원기자
- biology_sh@daum.net
- 저작권자 2020-12-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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