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보다 더 작은 호빗, 이들이 실존했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하는 호빗족은 신장이 대략 61cm에서 122cm 사이로, 평균 1m가량 되는 소인족이다. 이들은 난쟁이 드워프족 보다도 더 작은 것으로 묘사된다.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반지의 제왕 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는 속편)인 호빗(Hobbit)의 주인공 빌보 배긴스도 키가 대략 91cm에서 106cm 사이였다고 한다. 소설이나 영화 속 생명체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어떨까?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화석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있다. 권위 있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된 이 연구 결과는 인류 진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호주 그리피스 대학교의 고고학자 아담 브럼이 이끄는 연구팀은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서 70만 년 전의 인류 화석을 발견했다. 이 화석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라 불리는 멸종된 인류 종의 것으로, 치아 2개와 상완골(팔뼈) 화석이 포함되어 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약 1미터의 키를 가진 작은 인류로, 현대 4세 어린이와 비슷한 크기다. 이들은 약 70만 년 전부터 5만 년 전까지 인도네시아 군도에 살았으며, ‘플로레스 인간’ 또는 ‘호빗 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별명은 2003년 최초 발견 당시 피터 잭슨의 영화 ‘반지의 제왕’이 인기를 끌면서 붙여졌는데, 이 종의 기원과 작은 키의 원인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연구진의 새로운 발견은 플로레스 호미닌(Homonin: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진 초기 인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상완골은 지금까지 발견된 호미닌 종 중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밝혀져
브럼은 그동안 수년간의 발굴 작업을 통해 스테고돈, 코모도 용, 거대 쥐 등 수천 개의 동물 화석도 발견했지만, 연구팀이 최근 발견한 것은 놀랍도록 아주 작은 극소수의 현생 인류 조상 화석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개체의 키는 약 1미터였는데,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작았던 인류를 섬에서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인다.
약 10년 전 브럼의 연구팀은 최초의 호빗이 발견된 량부아 유적지로부터 76km 떨어진 마타 멘게에서 굳어진 사암층을 깎아내다 상완골을 처음 발견했다. 브럼은 상완골을 발견했을 당시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놀라움은 곧 기쁨으로 바뀌었다고 회상한다. 브럼과 연구진은 상완골이 같은 섬에 있는 리앙부아 동굴의 화석과 매우 비슷했기에 이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분석 결과 상완골은 약 70만 년 전에 살았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개체의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새롭게 발견한 상완골과 다른 표본을 비교한 결과, 새롭게 발견한 상완골은 지금까지 발견된 호미닌 종 중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밝혀졌다. 브럼이 이끄는 연구팀은 총 세 개의 추가 화석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사이의 비교를 통해 해당 종이 5만 년 전 멸종하기 전까지 이들의 신체적 특징은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연구진은 현재 발견된 화석이 초기 발견되었던 화석과 분명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플로레스 호빗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키가 줄어들었을까?
플로레스섬의 ‘호빗’은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고고학자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일부 이론에 따르면 해당 종은 섬에 상륙하기 전에 이미 작은 크기의 호미닌이었다고 한다. 연구진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섬의 법칙’에 따라 진화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큰 포유류가 섬에 고립되면 여러 세대에 걸쳐 몸집이 작아진다. 브럼은 그들이 대륙에서 이주하여 플로레스섬에 갇힌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왜소해졌다고 주장한다. 이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기원과 진화 과정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발견은 새로운 논쟁과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토니 브룩 대학의 수잔 라슨은 “이 발견은 왜소화가 매우 빠르게 일어났고 수십만 년 동안 유지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하며, 진화 속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녀는 “고립된 표본이 하나만 있을 때는 특이 개체가 있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상완골이 이전에 발견된 LB1 상완골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은 해당 상완골을 가진 이 종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고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캐나다 레이크헤드 대학의 매트 토체리도 해당 발견이 호모 에렉투스의 왜소한 후손인지, 호모 하빌리스 같은 다른 초기 호모 종의 후손인지, 아니면 단순히 작은 체구의 초기 호모 종의 후손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기원에 대한 미스터리를 언급한다. 그는 호미닌종의 역사와 기원을 알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가 너무 적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따라서 그때 당시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는 아직 섣부르게 판단하기 힘들다. 이에 더 많은 화석 표본을 발견하여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진화 과정을 더욱 명확히 밝히는 것이 향후 연구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토체리는 더 많은 표본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 호빗 인류의 역사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인류 진화의 다양성과 적응 능력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과 운이 많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당 연구 바로 가기 -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작은 몸집의 초기 진화 (Early evolution of small body size in Homo floresiensis)", Kaifu et al. 2024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4-08-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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