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억 년 전 지구와 충돌한 '테이아', 지구의 이웃이었다
45억 년 전, 아직 뜨거운 용융 상태였던 원시 지구에 화성 크기의 천체가 충돌했다. 이 격렬한 충돌은 두 행성을 산산조각 냈고, 우주 공간으로 튕겨 나간 파편들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달을 만들었다. SF 영화 같은 이 시나리오는 현대 행성과학에서 달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하지만 지구와 충돌한 이 원시행성 '테이아(Theia)'가 태양계 어디에서 왔는지는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독일 막스플랑크 태양계연구소(MPS) 연구진은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테이아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지구와 태양 사이 어딘가에서 형성된 가까운 '이웃'이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지구, 달, 그리고 근지구 운석의 원소 조성을 정밀 분석한 결과, 테이아가 지구와 거의 동일한 화학적 '재료'로 만들어졌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번 연구는 달의 탄생 과정뿐 아니라 초기 태양계의 역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거대충돌 가설: 달 탄생의 비밀
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오랜 시간 말그대로 과학적으로 '진화'해 왔다. 초기에는 달이 지구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는 '분리설'이 유력했지만, 곧 지구 중력에 포획되었다는 '포획설' 그리고 달이 지구와 함께 형성되었다는 '동시생성설' 등이 제안되었다. 하지만 이들 가설은 달의 궤도 특성, 화학 조성, 각운동량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현재 과학계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1970년대에 제안된 '거대충돌 가설(Giant Impact Hypothesis)'이다. 해당 가설에 따르면, 약 45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되던 초기에 화성 크기의 원시행성이 젊은 지구와 충돌했을것으로 예상되는데, 당시 지구는 아직 완전히 굳어지지 않은 뜨거운 용융철과 규산염 덩어리였다. 이 격렬한 충돌로 두 천체의 맨틀 물질이 우주 공간으로 튕겨 나갔고, 이 파편들이 지구 궤도를 돌면서 중력에 의해 뭉쳐 달을 형성했을것으로 추측된다.
충돌의 주인공인 이 가상의 원시행성은 그리스 신화에서 달의 여신 셀레네의 어머니이자 티탄족인 테이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테이아는 충돌로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그 파편 일부는 초기 지구와 융합되어 우리 발밑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대충돌 가설은 달의 낮은 밀도, 작은 철핵, 지구와 유사한 산소 동위원소 비율 등을 잘 설명한다. 하지만 테이아가 태양계 어디에서 형성되었는지, 정확히 어떤 충돌 시나리오가 현재의 지구-달 시스템을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동위원소라는 '지문': 행성의 출생 증명서
여느 과학자들도 많이 이용하는 동위원소(같은 원소이지만 중성자 수가 달라 질량이 다른 원자들) 분석이라는 방법은 행성과학자들에 의해 천체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도 쓰인다. 예를 들어 수소는 양성자 1개만 가진 기본형 외에도, 중성자 1개가 추가된 중수소(deuterium), 중성자 2개가 추가된 삼중수소(tritium)가 존재한다. 이러한 동위원소들의 상대적 비율은 천체가 형성될 당시의 물리·화학적 환경을 반영하는 독특한 '화학 지문'이 된다.
태양계 초기, 원시행성들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서로 다른 온도와 화학 조성을 가진 먼지와 가스 구름에서 형성되었다. 따라서 형성 위치가 다르면 동위원소 구성도 달라진다. 2016년 한 연구(Young et al. 2016)에서 지구와 달의 산소 동위원소 비율이 사실상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는 예상 밖의 결과였다. 만약 테이아가 태양계의 먼 곳에서 형성되어 지구와 충돌했다면, 달에는 테이아 물질이 섞여 지구와 다른 동위원소 신호가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MPS의 지구화학자 티모 호프(Timo Hopp)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구와 달의 철 동위원소 조성이 유사하다는 것은 이전 연구에서도 보고된 바 있어 크게 놀랍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 의문을 더 확실하게 해결하기 위해 더 정밀한 분석을 수행했다. 그들은 지구, 달 샘플, 그리고 근지구 궤도의 운석들에 포함된 철과 기타 금속 원소의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했다. 연구팀이 놀란 것은 근지구 운석들의 동위원소 조성이었다. 이들 운석은 "지구 및 달과 비교해 뚜렷하게 다른 철 동위원소 조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지구와 달이 하나의 동위원소 세트로 만들어진 반면, 가까운 우주 공간의 운석들은 다른 세트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결과였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은 테이아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테이아는 지구의 화학적 쌍둥이였다
호프 연구팀의 분석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만약 테이아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형성되었다면, 다른 '원료 저장고'에서 물질을 끌어와 독특한 화학 조성을 가졌을 것이고, 이 신호가 달 샘플에도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구와 달이 화학적으로 거의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은, 테이아가 지구와 동일한 동위원소 '빌딩 블록'으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테이아는 최소한 지구와 바로 근접한 위치에서, 아마도 지구와 태양 사이 어딘가에서 형성된 화학적 쌍둥이였던 셈이다.
이 발견은 초기 태양계의 행성 형성 과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켜주는데, 태양계 형성 초기, 원시행성계 원반에서는 먼지 입자들이 충돌하며 점점 큰 천체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같은 궤도 영역에 있던 물질들은 비슷한 화학 조성을 가지게 된다. 테이아와 지구가 인접한 위치에서 형성되었다면, 둘 다 같은 국지적 '재료 창고'에서 물질을 공급받았을 것이다.
반면 근지구 운석들이 다른 동위원소 신호를 보이는 것은, 이들이 더 먼 거리에서 형성된 소행성대나 다른 영역에서 왔음을 시사한다. 호프는 "근지구 운석들이 지구 및 달과 상대적으로 뚜렷이 다른 철 동위원소 조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연구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태양계 내에서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동위원소 조성의 '구분선'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또한 거대충돌이 두 천체의 물질을 얼마나 완전히 섞었는지에 대한 질문도 제기해주고 있다. 호프 팀은 충돌이 초기 지구와 테이아의 물질을 "완전히 균질화"시켰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완벽한 혼합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즉, 실제 메커니즘과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시뮬레이션과 모델링을 통한 추가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
이번 연구는 우리가 서 있는 이 행성과 밤하늘을 비추는 달이, 45억 년 전 태양 가까이에서 태어난 두 천체의 격렬한 만남으로 탄생했다는 장대한 이야기의 한 장을 더하며 테이아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초기 태양계와 달 형성에 관한 모든 의문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사실 과학계에서는 거대충돌의 세부 시나리오에 대해 여전히 활발한 논쟁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2025년 1월 16일, 괴팅겐대학교(University of Göttingen)와 막스플랑크 태양계연구소(MPS) 공동 연구팀이 PNAS 저널에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들은 달이 주로 지구 맨틀에서 튕겨나온 물질로 형성되었고, 테이아의 기여는 적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연구 책임자 안드레아스 팩 교수는 "한 가지 더 가능한 가설은 테이아가 이전 충돌들에서 암석 맨틀을 잃고 금속 핵만 남아 '금속 포탄처럼' 초기 지구와 충돌했다는 것"이라며, "이 경우 테이아는 현재 지구 핵의 일부가 되었고, 달은 지구 맨틀에서 튕겨나온 물질로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연구들은 서로 다른 달 샘플을 분석하여 테이아가 지구 너머에서 기원했다는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달이 충돌 직후 '거의 즉시' 형성될 수 있었음을 예측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상반된 결과들은 과학적 방법론의 차이, 분석한 샘플의 종류, 그리고 사용한 모델의 가정에서 비롯된다. 달 샘플은 아폴로 미션에서 채취한 제한된 지역의 암석에 의존하므로, 달 전체를 대표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충돌의 각도, 속도, 두 천체의 정확한 질량비 등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호프가 지적했듯이, 가장 큰 미해결 과제는 충돌이 어떻게 두 천체의 물질을 완벽하게 섞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고온·고압 충돌 조건에서 맨틀 물질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얼마나 빠르게 혼합되는지,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지구와 달이 동일한 동위원소 신호를 가질 수 있는지는 복잡한 유체역학 및 열역학 시뮬레이션을 필요로 한다. 이는 차세대 슈퍼컴퓨터와 개선된 충돌 모델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할 과제이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12-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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