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그래비티’는 우주 조난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린 최초의 영화다. 지난 8월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후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르면서 미국에서는 3주 연속 흥행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개봉 4일 만에 한국 영화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역대 최고의 우주 영화”라고 평한 ‘그래비티’의 배경은 지상으로부터 600㎞나 떨어진 우주 공간이다. 마치 우주에서 직접 찍은 것처럼 무중력 상태를 실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12개의 와이어로 이뤄진 특수 장치 등을 사용한 제작기법과는 달리 이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의료공학박사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은 베테랑 우주비행사인 매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의 지휘 하에 처음으로 우주에 와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한다. 환상적인 파란 별 지구를 내려다보며 작업을 진행하던 평화로운 그곳은 반대편에서 폭발한 러시아의 구식 인공위성 파편이 날아오면서 순식간에 공포의 공간으로 변해 버린다. 타고 온 우주 왕복선 익스플로러가 파괴되고, 라이언은 연결선이 끊어져 막막한 우주 너머로 떠내려가지만 결국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의 과학자 도널드 J 케슬러는 1978년에 이미 그래비티에 등장하는 우주 쓰레기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수명이 다해 파괴된 인공위성들의 파편들이 우주 쓰레기로 떠돌다가 충돌할 경우 거기서 파생된 수많은 파편들이 연쇄충돌을 일으킨다는 ‘케슬러 신드롬’이 바로 그것이다.
케슬러 신드롬은 어느 정도 실제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지난 1월 22일 러시아의 과학실험용 인공위성 ‘블리츠’가 어떤 물체에 부딪친 후 고장이 나서 궤도를 이탈했다. 모스크바의 우주센터 연구진은 그 같은 사실을 확인한 후 충돌 물체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조사에 들어갔다.
미군 전략사병부에서 발간한 우주 잔해 목록을 꼼꼼히 체크한 결과, 블리츠가 충돌할 당시 주변을 떠돌던 물체는 2007년 중국이 미사일을 발사해 파괴한 기상위성 ‘펑윈 1호’의 잔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주 쓰레기 발견되면 궤도 수정해야
펑윈 1호는 1999년에 발사됐는데, 중국은 미국 등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7년 이 위성을 목표물로 삼아 중거리 지대공 유도미사일 발사실험을 했다. 그 폭발로 인해 엄청난 우주 쓰레기가 만들어졌으며 지금까지 떠돌고 있던 잔해물이 유리로 된 작은 반구형의 위성 블리츠를 못 쓰게 만든 것이다.
지난해 11월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우주 쓰레기가 접근하고 있다는 NASA의 연락을 받고 러시아 비행관제센터가 국제우주정거장의 궤도를 1㎞ 상공으로 긴급히 이동시켰다. 그런데 그날 국제우주정거장에 접근한 우주 쓰레기는 지난 2009년 2월 러시아 통신위성 코스모스 2251과 미국의 인공위성 이리듐 33호와의 충돌로 발생한 잔해물 중 하나였다. 사고 당시 이리듐 33호는 5㎝ 크기의 파편 600여 개와 수천 개의 작은 파편으로 산산조각 난 후 지금도 초속 3~11㎞의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구 주위를 빙빙 돌고 있다.
실제로 국제우주정거장은 이 같은 위험으로 인해 궤도 수정을 한 것만 해도 10여 차례나 된다. 만약 충돌 위험을 분석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우주 쓰레기가 발생하거나 충돌 가능성이 불확실할 때는 궤도 수정 대신 ISS에 머무르는 우주인이 긴급 대피용 캡슐로 대피하기도 한다.
NASA 궤도잔해물국에 의하면 2007년 중국의 펑윈 1호에 대한 미사일 발사 폭파 및 2009년 미국 이리듐 33호의 충돌 사고 이후 우주 쓰레기가 50% 이상 갑자기 늘었다고 한다. 케슬러의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957년 구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한 이후 지금까지 7천 개가 넘는 인공위성이 지구 상공으로 발사됐다.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의 경우 중력 때문에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하면서 불타 버리거나 아니면 200㎞ 이상 고도를 높여 우주 무덤으로 불리는 바깥 궤도에 남게 된다.
하지만 인공위성끼리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거나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의 처리에 실패할 경우 그대로 우주 쓰레기가 된다. 또한 인공위성 발사 과정에서 분리되는 로켓이나 빈 연료탱크 등도 우주 쓰레기로 남는다.
우주 쓰레기는 파편 지름이 10㎝ 이상 되어야 충돌 예측이 가능한데, 그 같은 크기의 우주 쓰레기만 해도 현재 2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보다 작은 우주 쓰레기까지 모두 합할 경우 총 5천500톤 이상의 수십만 개에 이르는 파편들이 지구 둘레를 따라 돌고 있다. 파편이 작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다. 우주왕복선인 챌린저호의 경우 불과 0.2㎜의 페인트 조각에 부딪쳐 유리창이 손상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살 방식의 우주 쓰레기 청소 위성 발사 계획
이 같은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기 위해 영국 서리대학 연구팀은 유럽우주국(ESA)의 후원을 받아 올 연말에 ‘큐브세일’이라는 청소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다. 가로세로 10㎝, 높이 30㎝, 무게 3㎏의 큐브세일은 목표한 우주 쓰레기에 다가가서 달라붙은 후 5㎡ 크기의 돛을 펼쳐 지구로 낙하하면서 대기권에서 불태워 없애는 방식으로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게 된다.
스위스 연방기술연구소에서도 2017년경 우주 쓰레기 청소용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클린스페이스 원’이라고 명명된 이 인공위성은 장착되어 있는 갈고리 형태의 장치로 이미 폐기된 스위스 소형 위성을 궤도 밖으로 끌어내 대기권으로 추락하면서 불타 없어지도록 설계된다. 즉, 영국과 스위스의 청소 위성 모두 우주 쓰레기와 함께 자살하는 방식이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주인공인 라이온 역시 잠시나마 자살을 기도한다. 매트의 희생 덕분에 ISS의 소유즈호로 겨우 옮겨 타 중국의 우주정거장으로 이동하려 하지만 이미 소유즈호의 연료가 바닥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실 라이언은 딸을 사고로 잃은 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철저히 단절한 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 캐릭터다. 그런데 라이언은 아무도 없는 우주 속의 작은 공간 소유즈 호 안에서 모체 속의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외부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우연히 잡힌 무선 주파수에서 흘러나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감격하고, 강아지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도 하는 것.
이미 삶의 중력에서 벗어나 있던 그녀가 중력이 전혀 없는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겨지고 나서야 비로소 삶으로의 강한 끌어당김(중력)을 받은 것이다. 우리를 삶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는 중력의 정체도 과연 이처럼 고귀하거나 위대한 그 무엇이 아닌 일상 속의 평범함이 아닐까.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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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3-10-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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