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동의가 될 수 있을까 - 독일의 장기기증 논쟁
2026년 6월의 어느 날, 독일 연방의회 중 마라톤 회의가 한창이던 중 6년 전 닫혔던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장기기증을 옵트인에서 옵트아웃으로 바꿀 것인가 하는 문제였는데 (옵트인은 본인이 직접 동의해야 기증자가 되는 제도이고, 옵트아웃은 그 반대로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으면 일단 모두가 기증자로 간주되는 제도, 흔히 추정동의제라 불림), 앞선 설명대로 독일은 2020년에도 이 문제를 한 차례 겪은 바 있다.
당시 독일 보건부가 추진했지만 의회는 추정동의제를 부결시켰고, 대신 신분증을 갱신할 때마다 기증 의향을 묻는 절충안으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거의 그대로다. 이번에는 여러 정당이 모여서 다시 추정동의제를 들고 나왔다.
숫자가 보여주는 위기 - 유럽에서 혼자 남은 나라
이 논쟁이 자꾸 되살아나는 데는 단순한 이유가 있다. 바로 기증할 장기가 항상 부족하다는 점인데, 독일장기이식기구(DSO)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633명이 기증자를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금 독일에서 생명을 구할 장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8,200명을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은 신장 환자이고, 평균 대기 기간은 8년에 달한다.
기독민주연합(CDU) 소속 의원 기타 코네만은 기증자를 늘리려고 우리가 추진하던 정책들, 예를 들면, 병원 지원, 이식 홍보대사, 교육 캠페인, 온라인 등록제 등 모두 옳은 방향이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또한, 국민의 85% 이상이 장기기증에 긍정적이지만, 자신의 뜻을 문서로 남긴 사람은 45%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등록 비율은 약 40% 선에 머문다.
장기기증 제도에서 독일은 유럽 안에서 거의 홀로 남아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폴란드, 포르투갈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옵트아웃을 채택했다. 스위스도 2026년부터 옵트아웃으로 넘어간다.
반대 목소리도 분명하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 소속 크리스티나 바움은 신체 불가침의 권리가 "죽음 이후까지 이어진다"며 현행 능동적 동의 제도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이 바뀌면 국제 불법 장기 매매가 늘어날 거라는 우려도 함께 제기했다.
옵트아웃이 정말 기증을 늘릴까
여기서 짚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제도를 옵트아웃으로 바꾼다고 실제로 사후 기증이 늘어나는지는,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다.
막스플랑크 인간발전연구소가 2024년 내놓은 연구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는데, 연구팀은 옵트인에서 옵트아웃으로 전환한 39개국 중 충분한 자료가 남아 있는 5개국(아르헨티나, 칠레, 스웨덴, 우루과이, 웨일스)을 골라 장기간 데이터를 살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는데, 옵트아웃으로 전환한 뒤에도 사후 기증률은 통계적으로 별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를 이끈 랄프 헤르트비히는 이 이유를 가족에서 찾는다. 옵트아웃 제도라 해도 대부분 국가는 가족의 의견을 묻고, 가족이 그 추정된 동의를 뒤집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가족과 이러한 이야기기를 제대로 나누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막상 그 순간이 오면 가족들은 확신 없는 상태로 거부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제도의 기본값보다, 본인 뜻이 가족에게 얼마나 명확히 전해졌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에 헤르트비히는 대신 '의무적 선택제'를 제안한다. 운전면허나 신분증을 갱신할 때 동의든 거부든 명시적으로 등록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모호함을 처음부터 없애 가족이 추측해야 하는 상황을 줄이는 게 목표이다.
스페인의 성공 사례도 옵트아웃 자체보다 잘 짜인 법체계, 능력 있는 임상 리더십, 국가이식기구가 운영하는 정교한 물류망 등 다른 요인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즉, 기본값만 바꾼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가 될 수 있다.
거부할 권리, 신체에 새긴 마음
이번 법안을 둘러싼 또 다른 쟁점은 가족의 권리가 될 수 있다. 사회민주당 소속 한 의원은 옵트아웃 체제에서 가족이 거부할 권리를 잃고 그냥 지켜보는 처지로 밀려날 거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법안 초안에는 가족이 당사자를 대신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좌파당 소속 의원은 노숙인이나 정신질환자처럼 취약한 사람들이 거부 의사를 표명할 정보나 수단이 부족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논쟁이 이어지는 사이, 일부 시민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캠페인 그룹 '옵션잉크'는 동그라미 옆에 반원 두 개를 그려 'OD(Organ Donor: 장기기증자)'를 형상화한 문신을 새기도록 추진하는데, 지금까지 약 3만 명이 이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공동 창립자 안젤라 이파흐는 폐 기증자를 4년이나 기다리다 30세에 떠난 동생을 떠올리며 이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마지막 의회 투표 이후 6년이 지났는데 숫자는 하나도 안 바뀌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파흐는 그동안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다른 어떤 분야에서 6년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추정동의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제 진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하노버 의과대학교 이식 코디네이터 프랑크 로게만은 뇌사가 임박한 환자의 배우자나 자녀와 직접 대화를 나눠야 하는 사람인데, 현장의 또 다른 면을 강조한다. 이러한 대화에 딱 맞는 시간은 없으며, 뇌사가 확정된 다음에야 처음 이 얘기를 꺼낸다면, 그건 분명 너무 늦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 슬픔에 깊이 잠기기 전에, 충분히 일찍 다가가 그 환자가 정말 원했을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확인하는 일인데, 이 역시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7-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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