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개 인종의 유전적 특성을 반영한 게놈 참조 지도가 나왔다. 참조 지도는 일종의 ‘표준 유전정보’로 개인의 건강 상태나, 질병, 치료 결과 등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로 쓰인다. 한 사람의 게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첫 참조 지도가 나온 지 20년 만의 일이다. 인간 판게놈 참조 지도 컨소시엄(HPRC) 연구진은 지난 2년간 구축해온 판게놈(범유전체) 참조 지도 초안을 5월 1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를 비롯한 여러 학술지에 동시에 공개했다.
인종‧성별에 따른 ‘유전체 불평등’ 없앤다
인체는 수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이 세포는 46개의 염색체(23쌍)로 구성된다. 염색체는 생물체의 유전 물질인 DNA(디옥시리보핵산) 덩어리다. 유전정보가 담겨 있는 DNA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의 4가지 염기가 나열된 이중 나선 구조다. 사람의 경우 세포마다 약 30억 쌍의 염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 종료된 인간게놈프로젝트(HGP)는 이 30억 쌍의 염기가 어떤 순서로 배열돼 있는가를 밝혔다. 염기 배열이 중요한 이유는 각종 생리 현상에 관계되는 단백질의 생성 과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염기 배열의 어느 부분이 손가락을 만들고, 심장을 만들고, 피부색을 결정하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염기 배열을 ‘표준 배열’과 비교해 DNA의 어떤 부분에 돌연변이가 생겨 질병이 발생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결과물인 ‘단일 게놈 참조 지도(GRCh 38)’가 표준으로 쓰였다. 하지만 단일 게놈 참조 지도는 70% 이상이 한 사람의 유전정보를 사용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유럽계 서양인이 아닌 다른 인종에게는 이 참조 지도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공동저자인 아담 필리피 미국 국립게놈연구소(NHGRI) 박사는 “단일 게놈 참조 지도를 사용하면 유전체 분석에서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가령, 게놈이 참조 지도와 상대적으로 차이가 큰 사람에게는 참조 지도를 통한 유전적 질병 예측이 부정확하다”고 설명했다.
47개 인종 특성 반영한 ‘판게놈’

이러한 상황에서 HPRC 국제 연구진은 특정 인종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 전체에 걸쳐 발견되는 DNA 염기 서열을 최대한 많이 반영시킨 참조 지도 구축을 2021년 시작했다. 이번 공개된 초안에는 다양한 조상을 가진 47개 인종의 특성이 반영됐다. 이 과정에서 기존 참조 지도에 1억1900만 개의 염기 배열을 추가했다.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의미다.
판게놈 참조 지도 구축이 가능했던 것은 3세대 염기 서열 분석법인 ‘텔로미어 투 텔로미어(T2T)’ 기술이 개발된 덕분이다. DNA 양 끝단에 있는 부위인 텔로미어 사이의 DNA 염기 300만 쌍을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기술이다. DNA를 조각조각 절단해 읽은 후 이를 이어 붙여 판독하던 기존 기술에 비해 오류를 줄이고, 분석 속도는 높였다.

HPRC 연구진은 2024년까지 700 인종의 염기 배열을 한 지도 암에 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에릭 그린 NHGRI 소장은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참조 지도를 구축해 인종에 따른 건강 격차를 줄여나가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로 글로벌 다양성을 위한 NHGRI의 목표와 일치한다”며 “‘공평한 게놈 의학’은 기초연구와 임상연구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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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07-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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