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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심재율 객원기자
2017-02-09

4조원짜리 인류 최대 현미경 과학서평 / 젭토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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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극작가이면서 쾌락을 쫓다 말년에 뇌수막염으로 사망한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 속에 있지만, 더러 몇몇은 별을 바라본다.”

오스카 와일드는  미성년자와 동성연애를 하다가 발각돼 2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영국에서 추방됐다. 파리에서 병에 들어 사망한 이 쾌락주의자가 한 말은 ‘젭토스페이스’라는 과학서적에 수록된 수많은 유명인들의 여러 가지 격언 중 하나이다.

힉스 입자를 발견한 LHC 물리학의 세계  

세계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는 2008년 9월 10일 대형강입자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를 가동했다. 스위스 제네바 근처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에 걸친 곳이다. LHC는 한마디로 정의하면 매우 거대한 현미경이다. 우주를 탐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망원경을 만들었고, 아주 작은 미시의 세계를 보기 위해 현미경을 만들었다.

과학자들이 들여다 보기를 원하는 미시의 세계는 원자의 내부이다. 입자의 내부를 보려니, LHC라는 현대적인 현미경이 필요했다. 이 현미경은 둘레가 무려 27km에 이르는 지하터널이고 제작비는 30억유로(약4조원)이 들어갔다.

잔 프란체스코 주디체 지음, 김명남 옮김 / Humanist 값 20,000원 ⓒ ScienceTimes
잔 프란체스코 주디체 지음, 김명남 옮김 / Humanist 값 20,000원

사람이 사물을 볼 때 빛이 있어야 하지만, 빛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초음파나 감각, 전파 등을 사용한다. 원자 단위 이하를 관측하려다 보니, LHC는 빛 대신 주로 원자핵을 이루는 입자인 양성자를 사용한다. LHC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현미경 중 가장 거대한 현미경이며, 양성자로 원자를 들여다 보는 현미경인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LHC는 2012년 '신의 입자' 힉스 보손을 발견했다. (저자는 신의 입자라는 비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려는 것일까? 우리나라 말로 ‘젭토스페이스’로 번역된 책의 원 제목은 ‘젭토스페이스 오딧세이 : LHC물리학으로의 여행’이다.(A Zeptospace Odyssey : A Journey into the Physics of the LHC).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이 책은 젭토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을 그렸다. 젭토는 10의 마이너스 21승 그러니까 0.000,000,000,000,000,000,001을 말한다. 사람의 키를 2m라고 한다면 젭토스페이스, 그러니까 젭토가 추구하는 공간은 10의 마이너스 18에서 10의 마이너스 21이라는 아주 극미한 세계를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좁디 좁은 공간을 들여다보려고 과학자들은 여러나라에서 돈을 모아 4조원짜리 현미경을 만들었다.

책 제목을 설명하는 것 만큼, 젭토스페이스에 대한 설명은 길고 복잡하고 그래서 이 책은 오히려 현대물리학 역사를 개관하는 입문서처럼 들린다. 젭토의 세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물리학자들이 무엇을 고민했으며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장황하게 때로는 어렵게 때로는 재미있게 설명했다.

젭토 공간의 탐구에 ‘오딧세이’라고 부른 것은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수많은 천문학자들이 우주를 뒤지고 뒤져도 결국은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이 나오는 것처럼, 미시의 세계도 뒤질수록 아는 것 못지 않게 모르는 것이 많다.

현대물리학은 게다가 설명이 안되는 모순과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의 영역이 더 자주 나온다.

저자는 자연스러움은 미세조정의 문제라고 본다. 힉스물질 밀도에 대한 자연스러움이 있으려면 10의 34승의 정확도로 미세조정을 해야 한다. 아마도 이 숫자가 얼마나 미세한지 짐작이 안 될 것이다. 길이가 태양계 만큼 엄청나게 큰 연필의 뾰족한 연필심을 0.1㎜의 끝에 대고 세우는 것과 같은 정도의 정확도가 필요하다!

어질어질할 것이다. 과연 이런 정도의 우연과 정확도가 존재할까? 저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연필을 선 채로 잡아준다면, 불가능한 우연의 일치로 보이는 것을 완벽하게 논리적인 설명으로 바꿔준다’고 비유한다.

젭토스페이스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완전함을 이 보다 더 알기쉽게 설명한 비유는 없는 것 같다. 물론 물리학자들은 그래도 계속 보이지 않는 손을 보려고 노력하겠지만 말이다.

저자 잔 프란체스코 주디체(Gian Francesco Giudice)는 이론물리학자로 1993년부터 현재까지 CERN 이론물리학부에서 연구하고 있다.

논리를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물리학

너무나 어려운 물리학의 세계를 설명하려다 보니 저자는 곳곳에 유명한 사람들의 격언을 늘어놓았다. ‘내 말이 심하게 명료하게 들렸다면, 여러분이 잘 못 이해한 겁니다’ (앨런 그런스펀)의 말처럼, 물리학의 세계를 아주 깔끔하게 완전히 이해했다면 거의 거짓말이라고 보면 된다.

‘물리학의 전장에는 통일 이론가들의 시체가 나뒹군다’(프리먼 다이슨)의 말처럼, 천재적인 물리학자들도 잘 못 된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가 인생을 마감했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든 격언은 이것이다. ‘과거를 아는 것 만도 충분히 나쁜데, 미래를 아는 것은 아마도 견딜 수 없으리라.’(윌리엄 서머싯 몸)

끝에서 두 번째 격언은 덜 비관적이다. ‘세상에 아무 법칙도 없다는 법칙 외에는 세상에 아무 법칙도 없다.’(존 아치볼드 휠러)

심재율 객원기자
kosinova@hanmail.net
저작권자 2017-02-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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