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라면 항상 10월쯤 되면 올해의 물리학상은 누가 타게 될까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는 과연 언제쯤 노벨 물리학상을 타게 될까 하며 약간의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 얽힘에 관한 실험적 성과 및 양자 정보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프랑스의 알랭 아스페, 미국의 존 클라우저, 오스트리아의 안톤 차일렁거 세 사람에게 수여되었다. 이들 세사람의 연구는 양자컴퓨터, 양자암호학, 양자 순간 이동 등의 양자 기술의 발판을 놓았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양자역학이 고전역학과 뚜렷이 구별되는 큰 특징이 “중첩”과 “얽힘” 이라는 현상 때문인데, 바로 이 두 특징이 양자 기술의 핵심이 된다.
중첩(superposition)이란 계의 물리적인 상태가 0 또는 1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0 또는 1이 측정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측정”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파동함수가 0또는 1의 상태로 “붕괴”하게 된다. 이를 물질의 상태를 기술하는 파동함수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이라 한다. 오늘날까지 이러한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은 실험 결과와 매우 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If A, then B 라는 결정론적인 사고방식과는 배치되기 때문에 때로는 물리학의 대가들에게도 불편함을 안겨준다.
양자역학의 핵심인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든 슈뢰딩거 조차도 자신이 도입한 파동함수가 확률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못마땅히 여겨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실험을 고안해 내었다. 상자 안의 고양이는 상자 안의 원자핵이 붕괴되면 방사능 검출기가 이를 감지하고 독극물을 방출시켜 고양이를 죽게 만드는 특별한 장치에 관한 것이다. 이 경우 미시 상태의 원자핵의 붕괴(0) 또는 붕괴되지 않음(1)의 중첩된 상태가 거시 상태의 고양의의 죽은 상태(0)와 살아 있는 상태(1)의 중첩된 상태로 진화하게 되는데 상자를 여는 순간 고양이의 상태가 결정된다면 이는 고전물리를 따르는 거시 세계의 물리법칙과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답변은 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해석에 관한 것이고 고양이가 0또는 1의 상태 중의 하나로 관측되는 현상은 변하지 않는다.
얽힘(entanglement)이란 A,B 두 입자의 상태가 01 또는 10의 상태로 중첩되어 있어 A입자의 상태를 측정하여 0이 관측되면 계의 상태는 01 상태로 붕괴되어 B입자는 반드시 1의 상태로 관측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B입자의 상태가 A입자의 측정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에 핵심이 있다.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인 포돌스키, 로젠은 1935년 코펜하겐 해석을 공격하기 위해 EPR 역설이라 부르는 사고실험을 고안하게 된다. 그들의 논문 제목은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이 완전하다고 여길 수 있는가?” 이다. 물론 그들의 대답은 No 이다.
얽힘상태의 두 입자를 매우 멀리 (예를 들어 수십광년) 떨어뜨려 놓는다고 하자. 이때 A입자의 상태를 측정하는 순간 B입자의 상태가 결정된다면 정보는 빛의 속력보다 빠를 수 없다는 국소성(locality)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더 나아가 A,B는 처음부터 서로 상반된 상태로 생성되었기 때문에 A,B를 멀리 떨어뜨려도 A,B가 각각 어느 상태인지 알 수 없었을 뿐, A가 0이면 B가 1로 관측이 되는 것은 (그 반대도 마찬가지) 고전적 해석으로 충분하고 양자역학적 해석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은 완전하지 않으며 아직 발견하지 못한 국소적 숨은 변수(LHV, local hidden variable)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만 이들과 코펜하겐 학파 사이의 논쟁은 오랫동안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약 30년이 지난 뒤 북아일랜드의 존 스튜어트 벨은 놀랍게도 아인슈타인의 LHV에 의한 고전적 해석과 양자 얽힘 해석을 구분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해 내었다. 그 핵심은 정해져 있는 두 입자의 상태를 모르는 것과 두 입자의 상태가 중첩상태에 있는 것은 여러 측정 사이의 상관관계에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관관계가 고전적 해석을 따르면 반드시 어떠한 부등식을 만족하게 되는데 이를 “벨 부등식” 이라 한다. 이는 고등학생 정도의 확률 통계의 지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반면 중첩과 얽힘의 양자역학의 결과는 그러한 벨 부등식을 벗어나게 된다. 즉 반복 측정을 수행하여 얻은 측정값 사이의 상관관계가 벨 부등식을 벗어나게 된다면 아인슈타인의 LHV 이론은 틀린것이고 양자역학이 맞게 되는 매우 명쾌한 실험적 제안이었다.
만일 벨이 오늘날까지 살아있었다면 그도 단연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다. 1969년 존 클라우저는 광자를 사용하여 벨의 부등식을 테스트하였고 결정적이지 않지만 양자역학적 해석이 우위에 있는 실험결과를 최초로 얻게 되었다. 이어 알랭 아스페는 클라우저의 실험을 보완하여 높은 정밀도로 양자역학적 해석이 맞다는 실험 결과를 얻게 된다. 이들 실험은 아인슈타인의 LHV 이론을 배제(rule out)하고 양자역학의 해석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2004 년 안톤 차일링거 그룹은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해 광자를 400m 떨어진 곳으로 순간 이동하는 실험에 성공하여 양자 컴퓨터, 양자 암호 기술에 초석을 놓게 된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의 중첩과 얽힘 현상을 활용한 계산기이다. 일반 컴퓨터는 0또는 1 값 만을 가지는 비트의 단위로 연산을 수행한다. 양자 컴퓨터에서 0 또는 1이 중첩상태에 있는 것을 큐빗(qubit)이라 한다. 만일 20개의 큐빗을 사용한다면 2의 20승인 1,048,576 개의 중첩상태를 만들 수 있는데 양자 컴퓨터의 계산은 교묘한 알고리즘으로 중첩과 얽힘을 제어하여 해답이 되는 상태를 찾아가는 것이다. 각 연산 회수마다 모든 중첩상태가 한꺼번에 계산되기 때문에 양자 알고리즘을 잘 설계한다면 획기적으로 연산 회수를 줄여 빠른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 “양자 초월성”이라 한다. 대표적으로 1994년 피터 쇼어는 소인수 분해 계산은 양자컴퓨터가 월등히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는 “쇼어 알고리즘”을 증명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19년에 구글은 Nature지 논문에서 54큐빗으로 작동하는 양자 시카모어 칩을 개발하여 슈퍼 컴퓨터로 10,000년 걸리는 계산을 200초에 수행하여 “양자 초월성을”을 입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양자컴퓨터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아직 양자컴퓨터의 상용화는 안정적인 큐빗의 제작, 오류정정, 양자 초월성을 나타내는 알고리즘의 개발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
필자는 입자물리학을 전공하여 유럽 입자물리연구소의 LHC 가속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밀 계산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어떠한 계산은 매우 복잡하고 많은 파인만 다이어그램 계산을 컴퓨터로 계산해야 하는데 수개월, 길게는 1년이상 소요되는 프로젝트였다. 컴퓨터와 씨름하며 이따금씩 내뱉었던 탄식은 소립자들은 양자역학에 의거하여 서로 상호작용하여 순식간에 어떤 현상을 만들어 내는데 우리 인간은 얼마나 무지하길래 그러한 현상의 예측을, 그것도 완전하다고 할 수 없는 예측값(실제로 1차 또는 2차 보정값만을 계산하기 때문이다)을 보여주는데 1년이나 걸린단 말인가? 참으로 자연은 어떠한 슈퍼컴퓨터보다 뛰어나다는 감탄도 함께 말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1982년 논문에서 양자계를 시뮬레이트 하기 위해서는 양자 컴퓨터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입자물리학의 복잡한 계산들도 양자컴퓨터에서 수행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개발되어진다면 훨씬 빠르고 쉽게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 고찰해본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양자 알고리즘 개발자들이 커피잔을 손에 들고 양자 코딩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윤여웅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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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웅
- 저작권자 2022-12-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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