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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술
김현정 리포터
2025-12-30

사자의 ‘중간 포효’를 찾았다 AI가 재발견한 동물의 음성세계, 보전기술 새 시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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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포효는 아프리카 초원을 울리는 ‘야생의 상징’이다. 최대 8km 떨어진 곳에서도 글리는 이 웅장한 소리는 생태계의 정점에서 경쟁자를 향한 영역 선포의 경고음이며, 멀리 떨어진 동료에게 보내는 위치 정보다. 또한 대부분 사람에게 하나의 고정된 형태, 즉 같은 구조와 리듬을 가진 울음소리로 들리지만 개체 고유의 신원 정보를 담고 있기도 하다. 

최근 영국-탄자니아 국제 연구팀이 머신러닝을 활용해 사자의 포효를 재정의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사자가 한 번의 포효 세션에서 내는 소리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영국 엑서터대학교 생태보전센터의 조나단 그로우콧(Jonathan Growcott) 박사 연구팀은 탄자니아 니에레레 국립공원과 짐바브웨 부비에 밸리 보호구역에서 수집한 사자 음성 데이터를 분석해 이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이 연구는 생태학 분야 국제 학술지 '생태와 진화(Ecology and Evolution)' 2025년 호에 게재됐다.

생물음향학을 통해 사자의 포효가 재정의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Neuroscience News
생물음향학을 통해 사자의 포효가 재정의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Neuroscience News


포효 시퀀스의 숨겨진 구조…네 가지 울음 타입 규명

사자가 포효할 때 단 한 번의 ‘으르렁’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사자는 일련의 발성을 연속적으로 내는데, 이를 포효 세션(roaring bout)이라고 부른다. 한 번의 포효 세션은 보통 10~30초 동안 지속되며, 신음, 포효, 그르렁 등 여러 종류의 소리가 특정한 순서로 배열된다. 이 포효 세션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사자의 커뮤니케이션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개체 식별을 통한 개체군 모니터링에 필수적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사자의 포효 세션이 세 가지 발성 유형으로 구성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먼저 신음소리(moan)로 시작해 완전 포효(full-throated roar)를 여러 차례 반복한 뒤 으르렁거림(grunt)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1988년 스탠더(Stander) 연구 이후 이 분류 체계는 약 40년간 표준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번 연구팀이 포효 세션을 분석한 결과 네 가지 뚜렷한 발성 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음소리, 완전 포효, 새롭게 명명된 중간 포효(intermediary roar), 그리고 으르렁거림이다. 이 중 중간 포효는 지금까지 학계에서 한 번도 분류된 적이 없는 발성 유형이다.

그로우컷 박사는 “지금까지 사자 포효 세션 내에는 한 가지 형태의 포효만 존자한다고 가정했지만, 데이터 기반의 이번 연구를 통해 완전 포효와 중간 포효를 분리해 발견했다.”고 말했다. 

사자 한 번의 포효 세션을 보여주는 스펙트로그램. 신음소리(A) → 완전 포효(B) → 중간 포효(C) → 으르렁거림(D) 순서로 진행되며, 이번 연구에서 새롭게 발견된 중간 포효는 완전 포효와 으르렁거림 사이에만 나타난다. ⒸEcology and Evolution
사자 한 번의 포효 세션을 보여주는 스펙트로그램. 신음소리(A) → 완전 포효(B) → 중간 포효(C) → 으르렁거림(D) 순서로 진행되며, 이번 연구에서 새롭게 발견된 중간 포효는 완전 포효와 으르렁거림 사이에만 나타난다. ⒸEcology and Evolution


숨겨 있던 ‘중간포효’의 정체?

중간 포효는 완전 포효와 비교해 뚜렷한 음향적 차이를 보인다. 지속 시간이 평균 0.51초에서 11.5초 가량 이어지는 완전 포효보다 짧고, 최대 주파수는 200250Hz로 완전 포효(250300Hz)보다 낮다. 스펙트로그램 분석 결과 중간 포효는 시간적 패턴도 뚜렷하다. 일반적으로 신음소리로 시작된 포효 세션에서 완전 포효가 3~5회 반복된 이후 나타나며, 으르렁거림 직전에 위치한다. 즉, 포효 세션의 구조는 '신음소리 → 완전 포효(여러 차례) → 중간 포효(여러 차례) → 으르렁거림' 순서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점박이하이에나 연구에서도 유사한 재분류가 이뤄진 바 있다. 1991년 이스트와 호퍼는 하이에나의 울음소리를 세 가지로 분류했지만, 2022년에 레만 박사 연구팀은 예비 울음, 대칭 울음, 비대칭 울음, 종료 울음의 네 가지로 재분류하고, 비대칭 울음이 예비 울음보다 개체 고유성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처럼 발성의 시간적 위치를 고려한 세밀한 분류는 개체 식별 성능을 향상시키는 핵심 요소라고 알려진다. 

사자 포효의 네 가지 발성 유형별 주파수 패턴(A)과 분류 정확도(B). 완전 포효가 가장 높은 주파수를 보이며, 중간 포효는 그보다 낮은 패턴을 나타낸다. 연구팀은 84.7%의 정확도로 네 가지 발성을 구분했다. ⒸEcology and Evolution
사자 포효의 네 가지 발성 유형별 주파수 패턴(A)과 분류 정확도(B). 완전 포효가 가장 높은 주파수를 보이며, 중간 포효는 그보다 낮은 패턴을 나타낸다. 연구팀은 84.7%의 정확도로 네 가지 발성을 구분했다. ⒸEcology and Evolution

 

지역별 '사자 억양' 발견

한편 연구팀은 지역에 따라 사자 포효의 음향 특성이 뚜렷하게 다르다는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마치 사람의 언어에 지역 사투리가 있듯이, 사자에게도 일종의 '지역 억양'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포착한 것이다.

탄자니아 니에레레 국립공원 사자들의 완전 포효는 평균 지속 시간 1.2초, 최대 주파수 280Hz였다. 반면 짐바브웨 부비에 밸리 사자들은 평균 지속 시간 0.9초, 최대 주파수 240Hz를 보였다. 두 지역 간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탄자니아 사자들이 더 길고 높은 소리로 포효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1988년 스탠더의 연구를 인용하여 사자에게 일종의 '지역 억양'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역 억양이 생기는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세 가지 가설이 거론된다. 첫째는 유전적 차이다. 지리적으로 격리된 개체군은 유전적 분화를 겪고, 이것이 발성 기관의 해부학적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는 학습과 문화 전달이다. 사자는 사회적 동물이며, 새끼들이 성체의 포효를 듣고 학습하면서 지역 특유의 발성 패턴이 전승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는 환경적 요인이다. 서식지의 식생 구조나 기후가 다르면 음향 전달 특성이 달라지고, 이에 최적화된 발성 전략이 진화했을 수 있다.

그로우콧 박사는 이를 보다 정확하게 연구하고 개체군을 추정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전역 주요 사자 개체군의 음향 특성을 비교해 '사자 억양 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아프리카 전역 사자 개체군의 약 20%를 차지하는 떠돌이 수사자들은 출생 무리로부터 200km 이상 이동하며 관리되지 않는 개방 시스템에서 서식한다. 만약 이들의 포효가 정착 개체군과 음향적으로 다르다면, 자동 분류 시스템에서 완전 포효가 중간 포효로 오분류되어 개체군 추정에서 누락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연구는 40년간 표준으로 받아들여진 사자 포효 분류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인프라 접근이 어려운 아프리카 지역의 개체 연구에 효과적인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음향 모니터링을 실질적인 보전 도구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연구진은 음향 모니터링을 사자 보전의 표준 도구로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고 말했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12-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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