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라이프(Deep Life)’란 용어가 있다. 지하 세계에 존재하는 생태계를 말한다.
빛도 없고, 공기도와 영양분이 희박한 데다 강한 압력을 받고 있어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DCO(Deep Carbon Observatory) 과학자들에 따르면 땅 밑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무게가 150~230억 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를 부피로 환산하면 바다 생태계를 모두 합친 것과 비교해 약 두 배에 달하는 것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수천 년간 생존
생물의 몸을 구성하고 탄소는 자연계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순환되며 생태계를 움직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원소다.
이를 인식한 과학자들은 지난 2007년 생물학‧물리학‧지구과학‧화학자 등으로 구성된 과학자 그룹을 결성했다. 그리고 특히 지하세계 ‘딥 카본(Deep Carbon)’을 연구를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해왔다.
DCO 과학자들은 지하 세계에 존재하는 ‘종(種)의 다양성’이 아마존이나 갈라파고스 섬과 비견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 과정에서 지상이나 해역 생태계를 중시하면서 지하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는 것.
DCO에 참여하고 있는 미 테네시 대학의 카렌 로이드(Karen Lloyd) 교수는 “지하에서 새로운 삶의 유형(types of life)들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다”며 ‘딥 카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동안 DCO에 참여하고 있는 52개국 1200여 명의 과학자들은 지질학‧미생물학에서 화학‧물리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최근 지난 10년 간의 연구 결과를 취합했다.
그리고 이번 주 워싱톤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지구물리학회(American Geophysical Union) 연례총회에서 그 내용을 발표했다.
11일 ‘가디언’ 지 분석에 따르면 보고서의 70%는 지하에 서식하고 있는 세균(bacteria)과 고세균(archaea)에 대한 것이다.
고세균이란 고온과 고염도의 거친 환경 속에 잘 적응하는 단세포 미생물을 말한다. 유황 샘물 속에서 살고 있는 가시가 돋친 ‘알티아르케알레스(Altiarchaeales)’, 바다 밑 122℃ 열수분출공에 살고 있는 ‘제오젬마 바로시(Geogemma barossii)’도 고세균이다.
보고서는 2.5km 지하에 서식하고 있는 유기체 메탄생성균(methanogen)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백만 년 동안 태양으로부터 오는 어떤 에너지의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이 척박한 환경에서 메탄을 생성하며 생존하고 있는 중이다.
깊이 들어갈수록 미생물의 수 더 많아져
‘딥 카본’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그동안 메탄생성균을 생존케 하는 이 메탄의 역할을 규명하는데 집중해 왔다.
이들은 지금까지 연구 결과에 비추어 메탄이 메탄생성균의 번식 활동을 돕는 것이 아니라, 본체에서 떨어져나간 부분들을 대신해 그 기능을 바로잡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흥미로운 일도 발견되고 있다. 로이드 교수는 “어떤 유기체들은 생존이 거의 불가능한 에너지 환경에서 1000년에 달하는 긴 기간동안 대사 작용을 하면서 생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외부적으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미 오레곤 대학의 생태학자 릭 콜웰(Rice Colwell) 교수는 “지하세계 시‧공간은 지상과 매우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미생물의 경우 수천 년 동안 살아 있으면서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에 의해 움직이는 것 외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
콜웰 교수는 “태양과 달의 영향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지구 위 생태계와 달리, 지하 생태계는 극소의 에너지 환경 속에서 매우 느리고, 지속적으로 타임 스케줄이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지하 생태계가 지질학, 지리학 등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고 보고 있다. 바다와 지상 환경에 따라 생태계 구조가 바뀌는 것처럼 지각 변동, 화산 폭발 등 지하 구조 변화에 따라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생물체들이 자생해왔으며, 그 사이즈가 200억 입방 킬로미터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바다 속에 서식하는 생물체의 총 부피와 비교해 약 2배,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 부피와 비교해 수백 배에 달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향후 지하에 서식하는 생물들이 환경 변화에 따라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지상과 바다 생태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지하 생태계 연구를 위해 고성능 드릴(drill)을 사용해 왔다. 드릴로 지하 깊은 곳을 뚫고 들어가 그 안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활동을 연구하는 방식이다.
DCO 과학자들은 보고서를 통해 “연구 초기 지하에 이처럼 많은 양의 미생물이 생존하고 있는지 예상하기는 힘들었다”고 밝히며 “그러나 깊이 파고들어갈수록 온도가 더욱 높아졌고, 그 안에서 더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그동안의 연구 상황을 공개했다.
미생물이 살고 있는 서식 환경 중 최고 온도를 기록한 곳은 열수분출공으로 122℃를 기록했다. 그러나 향후 더 뛰어난 첨단 장비로 더 깊은 곳을 탐사하게 되면 더 깊은 곳에서 더 높은 온도 속에서 서식하는 생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DCO 과학자들은 향후 지하 생태계가 지상 생태계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밝혀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상으로부터의 깊이에 따라 지하 미생물 집단이 어떤 반응을 하고 있는지 미세한 생태계 변화를 데이터화하고 있는 중이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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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12-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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