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 차(茶)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말까지 거슬러 간다. 당나라 황제로부터 차의 종자를 받아왔고, 선덕여왕 때부터 차 문화 풍습이 생겨났다. 차를 마시고 나면 자신의 존재를 잊고 우주와 하나가 되어 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다도일미’라는 표현처럼 조상들에게 차는 고급문화로 애용됐다.
우리 차 문화를 부흥시켜 ‘다성’으로 불리기도 했던 조선시대의 승려 초의선사는 <다신 전>에 “차의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이 좋으며, 쓴맛이 있는 것은 나쁘다”고 기록했다. 차의 맛은 차나무의 품종, 찻잎 따는 시기, 성장 온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찻잎을 제조하는 과정, 사용하는 물의 질, 차를 우리는 온도와 시간 등 맛을 좌우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1,000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조상들도 몰랐던 차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밝혀졌다. 중국 푸젠대 등 공동연구진은 차의 맛을 좌우하는 핵심은 품종이 아닌 차 뿌리에 있는 미생물의 조합이라는 연구결과를 지난 16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토양 미생물과 뿌리의 공생 관계

차는 단맛과 떫은맛을 기본으로 여러 가지 감칠맛을 낸다.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감칠맛과 단맛이 많은 차를 좋은 차로 평가한다. 단맛은 찻잎의 ‘폴리페놀’ 함량이, 감칠맛은 ‘테아닌’이나 ‘글루탐산’과 같은 아미노산 함량이 결정한다.
‘차의 나라’로도 불리는 중국은 차나무를 재배하기 위한 유전적 자원이 풍부한 국가다.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우수한 차나무를 재배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다. 하지만 분자 유전학적 육종 방식으로는 차의 풍미를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공동연구진은 미생물로 관점을 돌려 차의 맛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소화기관에 있는 장내 미생물이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차나무의 미생물도 차 맛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에서 식물 뿌리에 사는 토양 미생물이 식물의 영양소 흡수와 활용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까지는 알려져 있었다. 연구진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뿌리 미생물이 구체적으로 차의 맛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선, 연구진은 중국 푸젠성에서 자라는 차나무 품종 17가지를 분석해 뿌리 미생물의 조성 차이를 확인했다. 차나무의 종류에 따라 서식하는 미생물의 군집이나 종류가 달랐다. 연구진은 테아닌 함량이 높은 차나무의 미생물 특성을 조사한 결과, 테아닌 생성에 도움을 주는 미생물 21종을 찾아냈다. 이들 미생물 군집은 식물이 질소가 함유된 암모늄 이온을 더 많이 흡수하도록 돕고, 그 덕분에 테아닌이 더 많이 생성된다. 17가지 품종 중 ‘루구이(Rougui)’라는 차나무 품종에서 유독 테아닌 수치가 높았다.
통다 수 중국 푸젠대 교수는 “미생물학을 질소 대사 관련 미생물과 차 품질의 상관관계를 찾아낸 연구”라며 “이번 연구에 더 주목해야 할 이유는 미생물 군집을 찾아내고, 이를 합성하여 다양한 차 품종에서 아미노산 함량을 향상시키는 것까지 성공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미생물로 맛 좋은 차 만들기

연구진은 21종의 미생물 군집을 모방한 합성 미생물 군집 ‘SynCom’을 만들었다. 합성 미생물 군집은 실제 루구이 품종의 미생물 군집과 유사하다. 이어 연구진은 SynCom을 다른 차나무 뿌리에 투여했다. 그 결과, 질소가 부족한 땅에서 자란 차나무에서도 테아닌 수치가 높아졌다.
공동저자인 웬신 탕 박사는 “연구를 시작할 당시에는 이번 연구를 통해 저품질 차나무의 품질을 향상시킬 것으로만 기대했는데, SynCom 투여로 인해 고품질 차 품종에서도 한층 더 품질을 높이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차나무 재배 과정에 쓰이는 비료 소비를 줄이는 데도 도움 될 것으로 보인다. 차나무는 다른 식물보다 질소를 더 많이 소비하는데, 비료를 많이 쓰게 되면 차 향기가 나빠진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합성 미생물 군집을 적용하면 비료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차 품질은 높일 수 있다.

또한, 차나무가 아닌 다른 작물에서도 미생물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생물학 연구에서 자주 쓰이는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에 미생물 군집을 투여했는데, 뿌리의 암모늄 흡수량이 증가함을 확인했다. 애기장대는 질소가 더 낮은 조건에서도 잘 자랐다. 질소 흡수 촉진 기능이 다양한 작물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수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미생물 군집을 쌀에 적용하면 단백질 함량을 높인 쌀을 재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뿌리 미생물이 테아닌 외 다른 대사 물질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알아보는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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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02-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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