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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박미용 기자
2008-10-14

아낌없는 기초과학 투자가 비결 노벨상 4관왕 기록한 일본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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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노벨상 올 노벨상의 화두는 단연코 일본이었다. 일본은 이번을 포함해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 16명을 배출했는데, 과학 분야가 그 가운데에서 12명이다. 2000년 이후 노벨 과학상 수상자만도 8명이나 된다.

특히 올해는 더욱 빛난다. 노벨 과학상 9명 중 4명이 일본인이니 말이다. 최근, 2050년까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30명 이상 배출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던 일본의 야심이 결코 허황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모두 국내에서 고등교육 받아

흥미로운 건 숫자만이 아니다. 올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과학대국으로서의 일본의 저력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올 노벨상 수상자 4명 모두 일본 국내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놀랍다. 이들은 모두 일본에서 태어나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토종 과학자이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 난부 요이치로(1921~) 명예교수는 미국 국적이긴 하지만 일본 명문인 도쿄대 출신이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일본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29세 때 오사카대에서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또 다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KEK) 고바야시 마코토(1944~) 명예교수와 교토대 유가와 이론물리연구소의 마스카와 도시히데(1940~) 명예교수는 모두 일본 지방대인 나고야대를 졸업했다. 이 둘은 같은 대학 선후배 사이로 이번 노벨상을 그들에게 안겨준 이론을 공동으로 세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올 노벨 과학상 수상자 중 나고야대 출신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이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미 보스턴 대학 해양생물연구소 시모무라 오사무(1928~) 명예교수 역시 나고야대 출신이다. 그는 1960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직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배출순위에서 한번에 2위로 등극한 나고야대

올해의 성적을 제외하고 그동안 일본 대학의 노벨 과학상 배출 전적을 보면 교토대 5명, 도쿄대 2명, 도호쿠대 1명이었다.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도호쿠대 출신의 다나카 고이치를 제외하고는 모두 명문대 출신이었다.

하지만 올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 덕분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교토대가 일본 최고의 이공계대학으로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갑자기 출현한 나고야대가 도쿄대와 함께 2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일본은 우리로 치자면 서울대인 도쿄대가 아니라 지방대학들이 더 좋은 성적을 낸 셈이다. 아직 우리는 서울대조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저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한편 올 노벨상 가운데에는 해외 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 토종 학자들도 있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고바야시 교수와 마스카와 교수는 나고야대를 졸업한 뒤에도 해외에서 유학한 경험이 없다. 특히 마스카와 교수는 이제까지 해외에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올 12월에 있을 노벨상 수상식 참석을 위해 처음으로 여권을 만든다는 소식이다.

마스카와 교수는 이른바 괴짜 천재이다. 그는 학창 시절 문과 과목은 아예 포기하고 물리학에만 광적으로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고야대 입학 때 특별전형으로 들어갔다. 또한 그는 물리학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영어가 서툰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다. 그래서 올 노벨상 시상식에서 일본어로 연설을 하겠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교수임용이나 연구원 모집에서 해외에서의 경험과 영어 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었다. 해외 경험과 유창한 영어실력이 꼭 과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님을 이번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통해 알 수 있다.

기초과학에 아낌없는 지원

이렇게 해외 유학을 하지 않아도, 최고의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일본. 그 비결은 아마도 근대 이래 서구 과학기술문명을 꾸준히 따라잡아온 일본의 오랜 노력 덕분일 것이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에 부국강병을 위해 7개의 제국대학을 설립했다. 노벨 과학상을 배출한 4개의 대학은 모두 이 7개의 제국대학에 속한다. 이들은 지방교육의 거점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지원도 아낌없다.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992년 이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는 2퍼센트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1995년에는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해 과학연구 예산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다. 또한 2001년에는 50년 안에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30명 정도 배출한다는 목표를 세워 이를 위한 계획을 진행 중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기반은 그야말로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해 정부의 R&D는 9조5천745억 원으로 전년대비 9.2퍼센트 증가했지만 기초연구 비율은 25.5퍼센트에 불과하다.

더욱이 정부 출연 기초과학 연구기관 종사자는 47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이 가운데 74퍼센트가 연구원이라고 한다. 즉 우리나라의 많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다른 염려 없이 연구에 전념해야 하는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원들이 암울한 현실에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앞날을 걱정했을 때

과학자들의 앞날이 불투명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올 노벨 화학상 수상 뒷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노벨 화학상은 녹색 형광 단백질(green fluorescence protein)의 발견과 발전에 돌아갔다. 하지만 수상자 3명 중에는 더글러스 프래셔 박사가 빠져 있었다. 그는 1980년대 말 녹색 형광 단백질을 생명과학 분야에서 표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고 최초로 이에 대한 성과를 낸, 녹색 형광 단백질 연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당시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미 정부는 연구비를 끊어버렸다. 그 후 프래셔 박사는 과학자로서 삶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곳저곳의 연구소를 전전해나가다 결국에는 과학자로서의 삶을 포기해버렸다.

만약 그에게 연구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노벨상 수상자로서 세계 최고의 과학자로 인정받으며 여생을 살 것이리라. 우리에게 프래셔 박사 같은 과학자는 얼마나 많을까? 지금이라도 그런 과학자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기초과학의 꿈을 키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

박미용 기자
pmiyong@gmail.com
저작권자 2008-10-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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