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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러는 친절하고 너그러운 성품으로 매우 인간적이었지만, 수학 천재답게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뛰어난 기억력과 암산력이었다.
프랑스의 예술원 회원이며 전기 작가인 프랑수아 아라고는 오일러의 암산력에 대해 “마치 사람이 호흡하는 것처럼,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별달리 애쓰는 흔적도 없이 계산을 하였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암산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241의 4제곱이나 33의 7제곱 같은 수를 암산으로 해버리고, 아주 어려운 계산도 50자리까지 정확하게 해낼 수 있었다. 또한 처음 100개의 소수와 그것의 제곱수부터 여섯 제곱수까지 모두 외워 계산에 활용하였고, 거기에 로그표까지 몽땅 외워 계산에 활용하는 초능력에 가까운 기억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기억력은 수학에 대한 것뿐 아니라 연설문이나 시 등도 줄줄 외울 정도였다. 소년 시절에 외운 로마의 ‘아이네이스’라는 시를 반세기가 지난 노년에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암송했다는데, 이 작품은 1만2천913행의 대서사시로서 책으로 치면 4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런 기억력과 암산력으로 오일러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연구도 많이 했다. 한 예를 들면, 스무 살 때 그가 프랑스 아카데미의 논문 콘테스트에서 2등상을 받은 논문은 배의 어느 위치에 돛대를 달면 가장 좋은지를 결정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었다. 바다가 없는 스위스에서 태어난 오일러는 그때까지 돛대는커녕 바다조차 본 적이 없었으니, 그의 관심 영역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알 만하다.
그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연구로 가장 유명한 것이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 문제이다. 18세기 동프로이센의 수도였던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도시에는 7개의 다리가 놓인 프레겔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7개의 다리는 강 사이에 위치한 두 섬과 강 양쪽에 놓여져 있어서 네 지점을 교묘하게 연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같은 다리를 두 번 이상 건너지 않고 모든 다리를 산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도 정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오일러는 수학자다운 호기심으로 그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 오일러는 이 문제의 답이 불가능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오일러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을까?
이 다리 건너기 문제는 결국 연필을 떼지 않고 한 번에 모양을 그리는 한붓그리기 문제와 똑같다. 오일러는 강이나 다리 같은 복잡한 요소들을 연결 상태만 갖도록 단순화한 도형으로 그려서,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에서 갈 수 있는 네 지점이 모두 홀수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한 점에 연결된 선의 개수가 짝수이면 짝수점, 홀수이면 홀수점이라고 한다. 짝수점에서는 늘 두 선이 짝이 되어, 들어오면 나가게 된다. 하지만 홀수점에서는 들어온 후 나가지 못하는 선이 꼭 한 개 있게 된다.
따라서 홀수점이 없는 도형은 어떤 점에서 출발하더라도 선을 다 지나 그 점으로 돌아오는 한붓그리기가 가능하다. 또 홀수점이 2개인 경우에도 하나의 홀수점에서 시작하는 모든 선을 다 돌고 다른 홀수점에서 끝날 수 있어 한붓그리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 외에는 어떤 경우라도 한붓그리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홀수점의 개수가 4개인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는 한붓그리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단순히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의 호기심을 해결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 구축과 최적화에 대한 체계적 이용방법을 알려주는 그래프이론의 시초가 되었다. 그래프이론은 전기회로 이론에도 적용되며, 요즘에는 교통공학, 통신공학, 경영학, 컴퓨터프로그램 등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오일러에 관한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는 디드로와의 유신론 논쟁이다. 오일러를 다시 러시아로 불러들인 예카테리나 2세는 선진 문화 수입을 위해 유럽 각국의 학자와 문인들을 초빙했다. 그 중에는 프랑스의 철학자인 디드로도 있었는데, 해박한 지식과 말솜씨로 사교계에서 명성이 드높았던 그는 무신론자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무신론에 빠져들 것을 염려한 예카테리나 2세는 모종의 음모를 꾸몄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수학자와의 공개 토론을 디드로에게 제의한 것이다.
황제가 말한 수학자는 다름 아닌 오일러였다.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매우 깊었던 오일러는 공개 토론장에서 디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a+bn)/n=x이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여기에 대해 답해 보시오.”
디드로가 우물쭈물하자 이를 지켜보던 군중들 사이에서 갑자기 폭소가 터졌고, 디드로는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천재들의 수학노트(박부성 저)’란 책에서는 이 유명한 일화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놓고 있다. 원래 티볼트의 책에서 나온 일화를 바탕으로 드모르간이라는 수학자가 각색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쨌든 수학사가들에 의해 널리 퍼져 있는 이 일화는 당시 오일러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 이성규 편집위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07-04-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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