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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은영 객원기자
2018-07-13

화학물질 공포가 계속 되는 이유 "근원 해결해야 반복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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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화학물질의 공포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전 국민을 경악하게 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실생활 속 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대사건이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달걀에 뿌리는 살충제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올 해는 대진침대에서 라돈이 검출되어 사회적 공분을 샀다. 최근에는 대구에서 수돗물에 발암물질로 분류된 과불화화합물 검출 논란으로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생활 속 화학물질의 공포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 ScienceTimes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생활 속 화학물질의 공포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 ScienceTimes

정진호 한림원 의약학부장(서울대 교수)은 “생활 속에 노출되어 있는 수많은 화학물질의 독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다부처 유기적 통합관리 시스템 확립 및 살생물제(Biocide)의 통합관리가 절실하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12일(목) 서울 중구 달개비컨퍼런스하우스에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주최로 열린 ‘생활화학물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앞으로 유해화학물질 관리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유사한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60년 전 일어난 사건과 유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영향으로 폐질환이 발생하거나 사망하는 등 심각한 건강 피해를 입힌 사건이다. 특히 영·유아, 임산부의 피해가 커 사회적인 파장이 더욱 컸다.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지난 12일 기준 사망자 226명을 포함 607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산부와 영·유아에게 안전하다’고 광고해 이들이 가장 큰 피해대상이었다는 점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60년 전 일어난 약물부작용 사건,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

1957년 독일제약사 그뤼넨탈은 입덧을 줄이거나 막아주는 신약 탈리도마이드를 출시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탈리도마이드를 먹은 임산부들은 팔, 다리가 없는 기형아를 출시했고 유산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피해자가 속출했다.

정진호 한림원 의약학부장(서울대 교수)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 이순재/ ScienceTimes
정진호 한림원 의약학부장(서울대 교수)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 이순재/ ScienceTimes

1960년대 초반 의학계에서는 탈리도마이드가 팔이나 다리 등의 마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며 기형아 출산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뤼넨탈 제약회사 관계자들은 독일 법정에 세워졌고 보상금도 지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 세계 46개국에는 1~2만 명의 기형아가 출생되는 등 그 피해가 막심했다.

한편 미국 식약청(FDA)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제약회사와 고위관리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약물의 시판을 불허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자국 내 수많은 기형아 출생을 막을 수 있었다.

미국 식약청의 이러한 대처는 전 세계 임상시험에 대한 과학계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효능을 가진 약품도 안전하지 않다면 절대로 승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탈리도마이드 사건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2011년이 돼서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중간보고를 발표했다. 2012년에 와서야 인체 독성 여부가 인정됐다. 오랜 시간 동안 지지부진한 수사과정과 검증 절차를 거치며 제 2의 피해자를 양산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원인을 모르고 사망했다.

생활 화학물질, 근원을 해결해야 반복되지 않아   

우리는 다양한 생활 속 화학물질 문제로 매년 불안에 떨고 있다. 언제 문제가 터질지 알 수가 없다. 생활 속 화학물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매년 또 다른 문제로 고통당할 수밖에 없다.

정 교수는 “한국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큰 고통을 당하고 나서도 흉내만 냈을 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다부처 유기적 통합관리 시스템의 필요성'을 내세웠다.

12일(목) 서울 중구 달개비컨퍼런스하우스에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주최로 열린 미래지구포럼 ‘생활화학물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개최됐다. ⓒ 이순재/ ScienceTimes
12일(목) 서울 중구 달개비컨퍼런스하우스에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주최로 열린 미래지구포럼 ‘생활화학물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개최됐다. ⓒ 이순재/ ScienceTimes

국내 현행법과 제도를 살펴보면 의약품 및 식품첨가물은 식약처에서, 농약 및 살충제는 농식품부(농진청)에서, 생활화학물질 포함 제품은 환경부에서 관할하는 등 부처별로 업무가 산재되어 있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조치 및 통합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유기적 통합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정 교수는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점으로 '살생물제의 통합관리'를 내세웠다. ‘살생물제(Biocide)’란, 해로운 생명체를 제거, 방지, 무해하도록 사용되는 화학물질 또는 생물학적 수단으로, 미국 환경청(EPA)은 인간과 동물의 건강에 해를 주거나 자연 또는 산업 생산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생명체를 제어하기 위해 만든 살충제·농약·방부제과 같은 다양한 유해물질을 살생물제로 정의하고 있다.

정 교수는 "농약을 포함한 살생제의 등록 및 허가업무를 환경부로 이관하는 등의 통합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생활 속 화학물질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은 물론 기업과 과학계에도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미국은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정부와 과학계가 주도적으로 나서며 문제를 해결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 과학계는 1961년 미국독성학회(SOT)를 설립하고 이 후 전 세계 독성평가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또 미국은 이 후 화학물질(의약품)에 대한 평가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1938~1965년 허가된 기존 의약품을 전부 재평가했고 이 중 40%를 퇴출시켰다. 화학물질 안전성평가시스템을 혁신해 현재까지 큰 사고 없이 생활 속 화학물질을 관리하고 있다.

잇따른 화학물질 노출사고에 따른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원인 중 하나는 정부와 기업, 언론을 믿지 못하는 데에도 있다. 정 교수는 “정부는 매번 사후 땜질식 처방을 내놓고 기업은 사회적 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언론은 문제점을 분석하거나 심층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치를 초과했는지’,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만 따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불신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는 위해성 평가는 과학을 기반으로 전문가에게 맡기고, 정부는 위해성 관리를 책임지고, 기업은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가지고 국민들과 소통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은영 객원기자
teashotcool@gmail.com
저작권자 2018-07-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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