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은 예외 지역이었다. 탈레반 반군과 카불 정부군 간의 전쟁이 계속 이어지면서 수도인 카불조차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수천 개의 새로운 고대 유적들이 발견됐다.
13일 ‘사이언스’ 지에 따르면 고고학자들로 구성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공동연구팀은 그동안 미국 국무성의 지원을 받아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탐사해왔다. 이 프로젝트에는 그동안 세력을 탐지해온 스파이 위성을 비롯 상업용 위성, 드론 등이 동원됐다.
그리고 최근 첨단장비를 통해 촬영한 영상들을 분석한 결과 너무 위험해 접근하지 못한 곳에서 수천 개의 고대 유적들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지난달 미국 동양학회 모임에 참석해 “4500여개의 유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동·서양 길목에서 거대한 건물잔해 발견
이는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한 고대 유적들의 수보다 3배가 넘는 것이다. 새로 발견한 유적들 중에는 고대 대상들이 머물던 숙소, 여행자들을 위해 세워진 거대한 숙소, 땅 속에 묻혀 있는 운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기원전부터 수천 년 간 동·서양의 교두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고대 제국의 유적들로 확인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실크로드를 잇는 이런 유적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세계 고고학계에 처음 알려진 것이다.
주목해야할 유적들 가운데 대상들이 쉴 수 있는 여행자 쉼터(caravanserais)가 있다. 연구팀은 그동안 119개에 이 여행자 숙소를 발견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를테면 진흙벽돌로 세워진 빌딩의 경우 미 풋볼 경기장 크기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매일 수백 명의 대상들(caravans)과 수천 마리의 낙타들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 거대한 숙소들이 1502년부터 1736년까지 지속된 이란의 이슬람 왕조인 사파비 왕조(Safavid Empire)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파비 왕조와 당시 인도 지역을 지배했던 무굴왕조(Mughal Empire) 간의 활발한 교역이 있었으며, 사파비 왕조와 무굴왕조를 연결하는 통로인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대상들을 위한 대규모 여행자 쉼터들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19개의 이 거대한 숙소들은 대부분 당시 사파비 왕조의 수도 이스파한(Isfahan)을 향해 연결돼 있으며, 낙타를 타고 하루 종일 달려도 다 통과하지 못할 만큼 광대한 지역에 걸쳐 길목마다 산재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시카고대학의 고고학자 에밀리 보크(Emily Boak) 교수는 당시 대상들이 많은 양의 비단, 보석, 향료, 목재 등을, 중국으로부터 많은 양의 도자기, 종이, 건어(dried fish) 등과 같은 이국적인 상품들을 싣고 사파비 왕조의 수도 이스파한을 향해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성으로 수천 개 유적 더 찾아낼 수 있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되는 이 같은 대상들을 위한 대규모 유적들은 교역물품을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시아파였던 당시 사파비 왕조는 터키서부터 파키스탄까지 광대한 지역을 다스릴 만큼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시카고 대학의 고고학자 캐더린 프랭클린(Kathryn Franklin) 교수는 “16세기 포르트갈인들이 동·서양을 연결하는 해로를 열기 위해 인도양에 진출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육로를 열려고 시도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육로를 열기 위해서는 거대한 인프라와 함께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 “이 프로젝트가 1세기가 지난 후 사파비 왕조에 의해 실현됐으며, 이런 사실이 오랜 전쟁으로 인해 감추어져 있다가 최근에야 밝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연구팀은 고해상도의 영상 촬영이 가능한 위성 등을 활용해 우즈베키스탄과 접해 있는 북쪽 국경 지역을 정밀 탐사하고 있는 중이다. 이 지역에서 발캅 강을 따라 수천 년에 걸쳐 건립된 수백 개의 유적이 새로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 소련의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77개 유적을 발굴했는데 시카고대 연구팀은 1000여 개의 촌락, 마을, 도시가 있었던 흔적을 발견했다. 이런 사실들은 이 지역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인구가 밀집된 지역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연구 결과들은 과거 유럽과 아시아, 특히 인도, 중국을 연결하고 있는 실크로드(Silk Road)의 역사를 밝혀낼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이 향후 동·서양을 연결할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적 발굴이 시작된 때는 1970년대다. 당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공동연구팀은 스미소니안 연구소를 중심으로 시스탄 지역과 헬만드 강 유역 4만 평방킬로미터 지역을 대상으로 종합탐사를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1979년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탐사활동이 중단됐다가 구소련 붕괴 이후 다시 탐사 활동이 재개되고 있다. 이전과 다른 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탐사가 탈레반 반군 등을 감시하는 스파이 위성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들은 최근 ‘미국 동양학회보(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지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전쟁으로 인해 이런 세계적인 유산들이 파괴되고 있다.”며, “유적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계의 기대는 매우 크다. 그동안 탐사를 원거리에서 지원해온 호주 라트로브 대학의 고고학자인 데이비드 토마스(David Thomas) 교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향후 수천 개의 유적들이 더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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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12-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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